2014년 4월 9일 수요일

사실과 논리로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오늘 오래간만에 전철로 퇴근. 전철 안에서만 한시간이라 이런 저런 웹서핑을 하면서 집에 오는데 (아, 나도 안다. 이런 귀한 시간을 얻었을 때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게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허나 어쩌랴 전철을 타고 보니, 손에 책 한권 없고 있는 것은 딸랑 스마트 폰 뿐), 특별히 눈에 띄는 두편의 글이 있어서 같이 정리해 둔다 (사실 두 편이 잘 엮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뭐 일기장 비슷한 블로그니 내 맘대로).

1. Information Matters

세명의 정치학자가, Kyle Dropp (Dartmouth), Joshua D. Kertzer (Harvard) and Thomas Zeitzoff (Princeton), 3월말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미국인 2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했는데, 그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설문의 가장 핵심은 "당신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는가'라는 것인데, 이러한 견해를 형성하는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해 통상적인 인구학적 항목들을 조사했다: 나이, 성별, 학력, 민주당/공화당 성향 등등.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하나의 특이한 항목을 추가했는데, 화면상에 고해상도 세계지도를 보여주면서,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마크를 하게했다. 그 결과가 아래의 지도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Dropp-Kertzer-Zeitzoff (2014)

동구의 정확한 지점에 마크한 경우는 대략 16%였고, 전반적으로는 정확도가 매우 낮아서, 실제 위치와 마크와의 차이의 (이를 편의상 오차거리라고 하자) 중위값은 대략 1,800 마일이었다. 소그룹별로는 보면 예상대로 젊은이가 노인보다 정확했고 (27% v. 14%), 남성이 여성보다 정확했고 (20% vs. 13%) 대졸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정확했다 (21% v. 13%). 반면에 약간 특이한 것은 군인가족과 비군인가족이 정확도에 차이가 없었으며, 정치적 성향으로는 무당파(29%)가 민주당파(14%)와 공화당파(15%)를 압도했다.

이들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오차거리와 군사적 개입의 지지도 사이에 뚜렷한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부정확하게 알수록,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였다. 이것은 일반적인 외교관점이나 인구적 특성을 다 콘트롤해도 95% 신뢰구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군사적 개입이 미국의 국익에서 반드시 바람직한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정보가 확대될수록 의사결정이 군사적 비개입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See. Kyle Dropp, Joshua D. Kertzer and Thomas Zeitzoff (2014), The less Americans know about Ukraine’s location, the more they want U.S. to intervene, in The Monkey Cage Blog.

2. Identity-Protective Cognition

내가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꼽는 Ezra Klein이 Yale의 법학/심리학 교수인 Dan Kahan이 이끄는 팀의 정보와 당파성에 관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사실 이 실험은 나도 작년 가을에 짧게 페이스북에 소개한 바 있는데, 이 기사는 무엇보다 Kahan과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폭넓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

Kahan은 Erica Cantrell Dawson (Cornell), Ellen Peters (Ohio State), Paul Slovic (U. Oregon)과 함께 미국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본적인 문제들을 풀게 해서 각 대상자들의 수리능력을 0~9점까지 부여하였고,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서 강진보, 약진보, 중도, 약보수, 강보수의 5단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가상의 실험 결과를 해석하게 하였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새로운 연고를 사용한 사람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확률적으로 피부가 더 좋아진다/나빠진다" 중에서 답해야 하는데, 좋아진 사람 중에서 새 연고를 사용한 사람이 223명이고,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107명이니 연고를 사용한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라고 답하면 함정에 빠진 것이고, 연고 사용자의 74.8% (=223/(223+75))가 좋아지고, 사용하지 않은 사람 중의 83.6% (=107/(107+21))가 좋아지니, 사용하는 것이 사용하지 않는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쁘다라고 해석하는 게 정확한 답이다.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위의 표의 Rash Got Better와 Worse를 바꿔서 동일하게 조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아서 대체로 수리능력 점수가 높을수록 여드름 실험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비율이 높았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여기까지만 보면, "이토록 단순한 문제도 못풀다니, 우리 나라의 교육은 큰 문제, 운운"하는 비분강개에 쓰이고 말텐데, 이들은 약간의 변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위의 가상의 여드름 실험은 특별히 당파적인 이슈는 아닌데, 이번엔 똑 같은 숫자를 주고, "새로운 연고를 썼더니 여드름이 개선/악화되었다"가 아니라, "새로운 총기규제를 했더니 범죄가 줄었다/늘었다"로 문항을 빠꾸어서 일군의 집단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 전체적 결과는 여드름 치료와 별로 다르지 않아서,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수리능력 점수가 높을수록 정확하게 해석을 했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그런데 이 정답/오답율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해서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되었다. 우선 여드름 연고에 대해서는 각 정파별로 특별한 패턴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총기규제에 대해서는 범죄가 줄어드는 사례에서는 수리능력이 높아질 수록 진보파는 급격히 정확도가 높아졌지만, 보수파는 거의 정확도 개선이 없었다. 반대로 범죄가 오히려 늘어나는 사례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패턴이 발생했다.  더 아픈 발견은 수리능력이 낮은 집단에서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해석차이가 조금 발생하는데, 수리능력이 높은 집단에서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해석차이가 오히려 더 심각해 진다는 것이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이들은 충분한 증거가 있음에도 대중적 논쟁이 해결이 되지않는 것을 설명하는 두가지 설명틀을 제시하는데, 첫째는 Science Comprehension Thesis로 대중의 지식이나 논리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Identity-protective Cognition Thesis로 문화적 갈등이 정상적이 사고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Kahan 등의 이 실험은 그 자체로서 SCT에 대한 강력한 반증을 제공한다. 당파성을 강하게 갖는 주장은  사회의 논리력이 더 높아질수록 오히려 논쟁의 간극이 더 커진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ICT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이 속한 정치적 집단의 생각과 다른 것을 주장할 때 정체성의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데, 현대 미국 정치에서 이 위기감이 점차 커지고 있고, 적어도 이 실험은 이 ICT에 더 부합한다.

See. Dan Kahan et al.  (2013) Motivated Numeracy and Enlightened Self-Government (PDF), Yale Law School Working Paper, and Ezra Klein (2014) How politics makes us stupid, in Vox.

3. 몇가지 소감

미국 정당정치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더 양극화되고, 언론도 (Fox와 MSNBC), 유권자도 다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예전에도 페이스북에 한번 포스팅한 바 있지만, The National Journal2012년 미국 상원의 양극화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The National Journal. (2013)

윗줄의 왼쪽부터 순서대로 보수지수가 높은 것이고, 테두리가 빨간 인물은 공화당, 파란 인물은 민주당 소속이다. 정확히 공화당이 끝나는 지점에서 민주당이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 어떤 진보적인 공화당 상원의원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보다 더 보수적이다. (에구, 그런데 이것이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데, 내 주변에서는 오히려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 "아니 새누리당 의원보다 더 보수적인 꼴통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다는 게 말이 되!" 또는 "새정치 민주연합 의원보다 더 빨갱이같은 새누리당 의원은 솎아내야")

다음으로 이러한 ICT가 보편적인 것이냐, 아니면 예외적인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Kahan은 자신의 실험발견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나도 그런 축인데, 여기서 맥락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스스로를 근대적인 인간인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풍파가 있고, 아노말리가 있고 하겠으나,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것, 논리, 과학, 증거가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 인간의 사고능력은 결함투성이이지만 궁극에는 합리적인 측면이 더 우월하다는 것, 뭐 그런 것을 믿는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정치를 뭐하러 하겠는가.

그리고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 설명에서 중요한 것이 소위 문화전쟁(Cultural War)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계기가 되는 측면은 역사전쟁이 아닐까 싶다. 내 아버지 세대는, 전쟁의 비참함과 빈곤에서 탈출한 자랑스런 역사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우리 세대는 개인적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군사독재와 싸워서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둘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고. 나도 아버지와 이 주제는 서로 피하니까, 이 영역에서는 적어도 상당기간은 ICT가 압도할 듯. 좌우간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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