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31일 목요일

[독후감]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마이클 S. 최 지음 (허석재 옮김),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 게임이론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 지식>, 2014년 7월,
후마니타스 출판사.
얼마전 국역된 Michael Chwe (최석용)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게임이론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 지식 Rational Ritual: Culture, Coordination, and Common Knowledge>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가 내용이 너무도 무거워 당황한 책이었다. 두세 시간이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다 읽는데는 며칠 걸렸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그런 매력적인 책인데, 우선 극히 주관적으로 내가 주목했거나,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 바를 간단한 메모로 남긴다.

조정 Coordination

경제학자들에게 익숙한 네트워크 외부성에서 시작해 보자.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 중 어떤 것들은 다른 이들이 얼마나 사용하는가에 따라 나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보통 많이 드는 예가 팩시밀리인데, 만약 세상에 아무도 팩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매한 팩스의 가치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 친구가 팩스를 보유하고 있다면, 나는 그 친구와 문서를 주고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약간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수 많은 사람들이 팩스를 보유하고 있다면 내가 보유한 팩스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너무 뻔한 것인데, 이것을 조정의 관점에서 보자. 충분히 팩스의 사용자 베이스가 클 때는 소비자가 기꺼이 팩스를 사겠지만, 최초의 소비자에게 어떻게 팩스를 사게 할 수 있을까? 그 최초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팩스의 가치가 전혀 없는데. 그러니까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팩스의 구입이 합리적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이들이 현재 팩스를 갖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들이 팩스를 구입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이 집단은 아무도 팩스를 사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수 많은 소비자들의 '조정'이 필요한 상황.

이에 대해서 경영학에서의 해답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컨데 팩스제조업체는 상위주체와 복수 공급계약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데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국의 수많은 관공서에 동시에 공급하는 것. 이것은 수많은 공공기관 구매부서들이라는 복수 주체의 조정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상위의 계약자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 공동구매도 유사한 메카니즘. 또는 초기의 구매자들에게 엄청난 할인을 해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초기 구입자는 부담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구매할 것이라는 믿음이 적더라도, 그러니까 조정이 덜 되더라도, 부담이 적기 때문에 구매에 나설 수 있다. 뭐 이 유사한 여러 해법들이 있다.

공유 지식 Common Knowledge

최교수는 또 다른 해법으로, 광고에 주목한다. 통상 상품들의 광고는 "이 제품은 이러저러한 효능이 있어요"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런 재화는 "다른 수많은 사람도 이 광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광고 보는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사람이 이 광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는 공지성(publicity)을 알려주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 시청자수가 높은 수퍼볼과 같은 TV 프로그램의 광고는 엄청나게 비싼 광고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이러한 네트웍 재화(최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재화)가 몰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유지식의 관점이 경제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영역의 문제 해결에 요긴하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예컨데 시위에 참여할 때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나 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내가 잡힐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한국어 제목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는 상당히 좋은 번역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공지성을 높일 수 있는 물리적 기제가 원형 구조물이다. 고대의 원형극장이나, 미국 몇몇 도시의 원형 시티홀 같은 것. 극장의 관객이나 위원회 멤버는 원형의 중앙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나 연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다른 관객 또는 위원들도 나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고....이런 것. 특히 흥미로운 것은 벤담의 판옵티콘에 대한 최교수의 해석이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원형으로 배치된 감옥의 각 셀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감시의 비용은 줄어들지만 (중앙집중성), 반대로 이 원형 구조는 원형극장과 동일한 포맷이기 때문에 많은 수감자들 사이의 조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예컨데 중앙 감시탑의 감시자가 졸았다고 해보자. 수감자는 감시자가 졸고 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셀의 수감자들도 감시자가 졸고 있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수 있다. 탈옥을 모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중앙의 감시자는 수감자를 바라볼 수 있지만, 반대로 수감자가 감시자를 바라볼 수 없도록 하는 불투명 유리의 설치가 필요하고 (비대칭성),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없도록 셀 사이의 간막이를 중앙을 향해 연장시켜야 한다 (분리성).

제사장 또는 정치가

이 책의 원제는 합리적 의례이다. 왕실의 행차, 혁명기의 페스티벌,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통한 의례적 실천 등은 모두 다수의 국민들에게 발화자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다른 국민도 그 메시지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공지성을 높이려는 시도이다. 제사장의 역할에서 이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치가도 동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가의 컨텐츠가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팩시밀리 구매와 투표를 비교해보자. 나는 정치가 A후보가 좋아 보이는데, 만약 모든 유권자 중에서 나 혼자 A를 지지한다면 거의 어떤 의미도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투표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또 그렇다면 정치가 A는 자신의 매력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다른 유권자들도 자신의 매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들. 그런 점에서 정치가는 제사장.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매우 아쉽게도 이 책에는 경제와 문화에 대한 폭 넓은 사례들이 나오는데, 정치에 대해서는, 저자가 UCLA 정치학과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례가 많지 않다.

그리고 기타......

내가 마이클 최를 저음 알게 된 것은, 작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게임 이론가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Game Theorist>에 대한 서평을 보고서였다. 약간 끌리긴 했지만, 책을 구해서 읽지는 않았다. 이론의 사례를 문학이나 서사에서 찾는 것이 그 흥미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너무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 있어서였다. 예컨데  스티븐 브람스(Steven Brams)는 공정분할(Fair Division)에 대해 멋진 저작을 남긴 게임이론가이지만, 성경을 게임이론으로 해석하겠다는 시도였던 <성경의 게임: 게임이론과 히브리 성경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은 별로였고, 또 제인 오스틴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설명, 이런 논문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썩 와 닿지 않았었다. 이런저런 기억들 때문에 미뤄두었던 것인데, 마이클 최의 책이라면 읽고싶다는 생각이 확 든다. (누군가 번역하고 있겠지? 아마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이 책 번역 매우 훌륭하다. 아주 사소한 오탈자 외에는 심각한 오역처럼 느껴지는 부분 없었고, 아주 어려운 내용임에도 그래도 잘 읽힌다. 역자후기에 의하면 마이클 최의 아내 이남희씨가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데, 시카고 대학 사회학 박사이고, 또 그때그때 필요하면 저자와 바로 대화했을테니, 그녀의 역할이 상당했을 것 같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역자의 실력과 성의가 기본이고.

그리고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울까 생각해보니, 이 책은 게임이론에 대한 사전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쉽지 않은 그런 책이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미쉘 푸코, 레비 스트로스, 하버마스, 루소 등등은 무척 당황스럽더라는.

어쨋든 개인적으로는 내 현장인 정치의 영역에서 이 책의 내용을 더 곱씹어 보고 싶다. 그리고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