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엘리엇 메모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추진 및 엘리엇측의 반대 주장에 대해서 개인적 정리를 위해 메모를 해둔다.

진행 중인 이슈라 그냥 이 페이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형식으로 할 계획. 평이하게 쓸 생각인데 그래도 기업금융, 회사법, 재무회계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최대한 답해보겠다.

1. 합병 방식

-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형식이며, 합병시점에 삼성물산은 해체되고 삼성물산의 자산과 부채는 모두 제일모직에 승계되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는 새롭게 발행된 제일모직의 주식이 그 댓가로 교부된다.

- 이 때, 제일모직의 신주를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얼마나 교부할 것인가하는 것이 합병비율이다. 알려진 바 1:0.35라고 하는 것은 제일모직 주식 한주의 가치가 1이라면 삼성물산 한주의 가치는 0.35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합병 시점에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받게 된다.

- 덩치가 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가끔 눈에 띄는데, 법률적 의미에서 제일모직이 흡수하느냐, 삼성물산이 흡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형태로 하면, 합병시점에 제일모직이 법적으로 소멸되고 삼성물산의 신주가 제일모직 주주에게 교부되는데, 이 때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갖고 있는 주주에게 삼성물산 신주 100주가 부여된다. 최종적으로는 주주 입장에서 그게 그거다.

- 합병 대상 중 한 회사가 비상장회사이고, 다른 한 회사가 상장회사라면, 이때는 어떤 회사가 법적으로 남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통상 상장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상장회사가 법적으로 존속회사가 되어 비상장회사를 흡수하는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소멸되는 회사가 더 큰 경우 뒷문상장이라고 한다. 여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둘 다 상장된 회사이므로 이런 이슈는 없다.

- 좀 곁가지인데 회계적으로는 법적으로 누가 누구를 합병했느냐와 무관하게, 덩치나 등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인수회사와 피인수회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한다고 하더라도 회계적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인수한 것으로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도 있다.

2. 합병 비율의 산정

- 합병 비율에 따라 제일모직의 주주와 삼성물산의 주주가 합병 이후 존속회사의 지분을 얼마나 갖게되는가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이것은 핵심 이슈일 수밖에 없다.

-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합병 등의 특례) 제2항은, "주권상장법인은 합병 등을 하는 경우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합병 등의 가액 (...)에 관한 평가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그리고 <동법시행령> 제176조의5(합병의 요건ㆍ방법 등) 제1항 제1호에서, 계열사인 두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에는 기산일 전 일정기간 주식의 종가를 기준으로 1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합병비율이란 두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고, 측정의 방식은 수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상장법인의 경우 그 회사의 주가에 기반한 시가총액에서 출발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 보도에서는 주가는 기복이 심하므로 두 회사의 순자산가치(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차감한 것)에 기반하여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마치 국제적인 관행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내 판단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주가가 기본이고 순자산가치가 보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회계적으로는 자산으로 처리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 예컨데 SNS 기업의 경우 가입자 수가 회사의 가치에 결정적이겠지만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등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장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가입자수에 대한 가치평가를 별도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주가에 기반한 것보다 더 정확할까?

3. 합병 비율의 적법성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삼정KPMG)을 통하여 자본시장법(및 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니, 이 자체야 완전히 적법하다.

- 그런 이유로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법적 최소 요건은 충족했고, 다만 주주들의 정서와 이익보호에 대한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 시사인 이종태 기자도 이 합병건에 대한 기사를 예고하면서 법적으로는 문제없고, 엘리엇이 문제삼고 있는 자본시장법 만만한 법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우며 우리 언론들 착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 한겨레신문도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예컨데 황회장의 주장을 좀 더 보자.

"합병안이 발표될 때 여의도 바닥(증권가)에서도 ‘아! 그래서 주가를 낮췄던건가’라는 불만이 나왔다.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해온 것도 사실이다. 의혹을 살만한 일이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 만약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다면 그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 예컨데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닌가? 삼성물산의 경영진(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사 주주 일반이 아닌,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는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주가를 낮게 관리했다면 그게 배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달리 표현해서 이사의 의무 해태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니까 황영기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물산이 특정인을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게 관리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또는 특별히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합병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통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된다.

4. 이재용부회장의 특수한 위치

- 독립적인 두 회사 사이의 합병이라면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A사의 대주주가 김씨이고 소수주주가 이씨이며, B사의 대주주가 박씨이고 소수주주가 최씨라고 하자. 합병을 할 때 수많은 복잡한 이슈가 있겠지만, 그래도 A사의 주주 (및 그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진)는 한사코 A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B사의 주주는 한사코 B사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A사든 B사든 각사의 주주들 사이에 이해가 다르지 않다.

-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많은 보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동의 한복판에 특정인이 관련되어 있다. 이재용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이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전혀 없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삼성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지배구조 때문에 이재용부회장은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한다.

- 이 상황에서 제일모직 주주로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고,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두 회사 모두에 대해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재용부회장의 이익을 위해서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손상시키면서 합병을 추진했다고 충분히 의심을 할 만하다.

-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합병과 관련되어 불법적 요소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라고도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고, 삼성의 지배구조와 이부회장 승계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 재판부라면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현실의 재판에서 불법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다)

5. ISDS

- 며칠전에는 갑자기 엘리엇이 ISDS를 통해서 합병비율의 불합리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익명의 M&A 전문가의 발언을 빌린 것.

-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엘리엇 대 삼성물산 경영진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엘리엇 대 (불합리한 법규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다툼이 된다.

- 나는 위의 2에서도 상장사 합병시 가치평가에서 주가가 기본이 된다는 법규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는 엉터리 법이라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엘리엇이 이런 바보같은 주장을 할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 오히려 ISDS를 활용한 일종의 애국주의 심리 캠페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며, 그렇든 저렇든 이런 중요한 주장을 익명의 전문가 발언으로 보도하는 것은, 그리고 크로스 체크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보도 태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6. 백기사 KCC

- 이 와중에 난데없이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 899만557주(5.79%)를 KCC에 매각한다고 발표하였다.

- 자기주식에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주주인 KCC는 의결도 할 수 있고, 배당도 받게 된다.

- 그리고 여러 언론에서 KCC가 삼성물산의 특정주주의 이익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백기사를 확보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과연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할까? 백기사를 확보했다고 할까?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주주일반의 이해가 아닌 특정인을 위해 매각했다면 그 의사결정은 합법적인 것일까?

- 앞의 '의도적으로 낮게 관리된 삼성물산 주가'의 배임혐의보다 이것은 훨씬 더 입증하기 쉬울 것 같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몹시 궁금하다.

- 나아가 삼성물산의 주주 KCC는 삼성물산 경영진의 주장대로 의결권을 행사할텐데, 이것은 KCC 주주의 이해에 맞는 것일까? 이러한 의결권 행사가 이번에는 KCC내에서 배임으로 불거질 가능성은 없을까?

- 위험이 관리되기는 커녕, 일파만파로 확대재생산되는 느낌이다.

7. 자기주식

-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주식은 말 그대로 회사가 자신이 발행하여 유통되고 있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법률적의 의미야 좀 다르지만, 경제적 실질에 있어서 자기주식의 취득은 유상감자에 다름아니다. 감자가 별것인가. 회사가 주주에게 돈을 주고 주식을 회수해서 불태우는 것. 자기주식의 취득은 다만 회수한 주식을 불태우지 않고 회사 금고에 넣어두는 것 (그래서 일본어로 자기주식은 금고주라고 하고 영어로는 treasury stock이라고 한다)

- 그래서 회계적으로는 자기주식은 자산계정이 아닌 자본의 차감으로 분개처리한다. 또 자기주식을 외부에 매각하는 것의 실질은 유상증자이다. 신주를 발행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대신에 금고속의 자기주식을 매각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것.

- 굳이 유상 감자, 증자와 구분되는 자기주식의 취득, 매각을 허용하는 것은 유상감자와 증자가 절차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조금 용이하게 회사의 주가관리 등에 활용하라는 취지인데,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입, 매각하지 않고 특정인을 지명해서 매입하거나 매각하게 되면 거래대금의 정당성이라든지 거래 목적이 주주이익에 반하는지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

- 그래서 자기주식에 대해서 우리의 회사법이 너무 느슨하게 관리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는데, 이번 삼성물산 건을 계기로 이 이슈도 더 불거질 것 같다.

7. 결론 (임시)

-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보완하기로 하고....

- 오늘 상법개정에 관한 한 토론회에 갔다 왔는데, 감사의 분리선출에 대한 논의에서 한 토론자가 "적들을 회사의 심장에 심는 것 (운운)"하는 얘기를 들었다. 섬뜻하더라.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한 논객은 "부당한 부를 축적한 고관대작의 집에 날강도가 들어왔는데 날강도부터 먼저 잡고 그 다음에 고관대작의 ‘상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 나도 소시민의 한 사람인지라, 외국에 나가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도 제도도 없이 성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리고 이 분들은 엘리엇이 만약 외국계 펀드가 아니고, 국내 펀드라면 판단이 달라졌을까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