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금융위기의 정치적 귀결 (차트 읽기)

금융위기는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독일 학자들의 최근 연구 결과를 살펴봤다. 흥미롭고 또 불안하고...

1. 데이터

1870~2014년까지 20개 선진민주국가에서의 800여건의 선거를 분석, 이 기간동안 100건 이상의 금융위기가 발생.

2. 극우파의 부상

이 차트는 금융위기 직전 5년간의 극좌파와 극우파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인데, 검은색의 극우파는 위기전에 비해 위기후 두배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흰색의 극좌파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두번째 차트는 2004, 2009, 2014년 세차례에 걸쳐 유럽 주요국가의 극우파와 우파파퓰리스트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으로 2007~8년 위기 전후를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크게 상승해서 2004년에 비해 2014년에는 평균 세배가 되었다.





이번 차트는 금융위기 이후 5년간에 걸친 극우파의 득표율의 추이 (붉은선은 평균치, 회색은 90%신뢰구간).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차대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봐도 대차 없음.








3. 정치의 파편화 또는 정부활동의 난관 심화

금융위기는 전반적으로 정치를 파편화시키고, 정부활동(governing)을 어렵게 만들었다. 위기 이후 특성을 보면 집권당의 득표율은 낮아지고(차트 1행), 집권하지 않은 정당의 득표율은 상승하고(2행),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3행), 의회에 진출한 정당의 개수는 늘어난다(4행).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2차대전 이전보다는 2차대전 이후 기간에 더 뚜렷하였다.

(참고로 3행의 정칙적 양극화(fractionalization)은 다른 당에 속한 의원이 다른 방향으로 투표하는 것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현대정치학에서 많이 분석하는 것)



정부활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또 하나의 증거는 당연하게도 위기 전에 비해 위기 이후에, 총파업(하늘색), 폭동(흑색), 시위(흰색)가 모두 크게 늘어났다는 것, 전체적으로 장외 저항활동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다음 자료는 이상의 장외 저항활동을 위기후 5년간에 걸쳐 추이를 본 것인데, 4년차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특히 2차대전 이후 기간동안에는 이러한 증가가 뚜렸했다.




마지막 차트는 이러한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본 것인데, 대략 10년이 경과하면 금융위기의 정치적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4. 금융위기의 특성

또 금융위기를 수반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수반하지 않은 경기침체의 경우 전자가 후자에 비해 뚜렷하게 더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들은 그 이유로 두가지를 제시.


  1. 대중들은 금융위기는 정책실패, 도덕적 해이, 정실주의 등 내생적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비금융위기는 유가나 전쟁처럼 외생적이고 회피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2. 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이 비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에 비해 사회적 파장이 더 크다는 것, 예컨데 채권자와 채무자의 분쟁격화,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금융부문의 구제금융 등.


5. 함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사후적 극복의 정치적 과정도 매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보면, 예컨데 보수정당 하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위기 발생시점의 집권당에게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동하겠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거리의 소요가 심화되어 위기극복과 관리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라는 .......

* 원 논문은 유료자료로, Funke, M, M Schularick and C Trebesch (2015) “Going to extremes: Politics after financial crises, 1870-2014”, CEPR, Discussion Paper No. 10884. 대중적인 소개는 같은 저자들이 VoxEu에 올린 것 : The political aftermath of financial crises: Going to extremes 참조.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 최저임금과 알란 크루거

며칠 전 미국 CBS에서 개최한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예상대로 최저임금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특이한 것은 사회자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 알란 크루거의 주장에 대해 후보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이었다. 크루거는 두달전 뉴욕타임즈의 기고문 <최저임금: 얼마나 높으면 지나치게 높은 것인가?>라는 글에서 시급 12달러는 저소득노동자들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이 더 크지만, 15달러는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일로서, 일부 소득이 높은 도시나 주에서는 고용감소없이 흡수할 수 있겠지만, 전 미국에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바람직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샌더스와 오맬리는 크루거에 대한 언급없이 15달러 생활임금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쭉 얘기했고, 클린튼은 크루거를 인용하면서 정확히 그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맬리가 갑자기 클린튼의 말을 가로채면서 발생했다.

오맬리: 더 이상 월스트리트 경제학자의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클린튼: 월스트리 경제학자가 아니...
오맬리: 우리가 경청해야 할 것은 ...
클린튼: 옳지 않아요. 크루거는 진보적 경제학자예요.
O’Malley: I think we need to stop taking our advice from economists on Wall Street …
Clinton: He’s not Wall Street.
O’Malley: … And start taking advice …
Clinton: That’s not fair. He’s a progressive economist.

내가 노동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저임금에 관해서 미국 또는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업적을 꼽으라면 크루거가 데이빗 카드와 함께 발표한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바니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사례 연구 (1994, A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이듬해 확장되어 <신화와 측정: 최저임금의 새로운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프린스턴대에서 단행본 출판되었다)


며칠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알란 매닝은 최저임금과 실업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관념이 90년대에 변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를 들 정도였다.


나야 전문가가 아니니 이 연구와 그 후 촉발된 수많은 논쟁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더 엄청난 전환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마일드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서 괜히 쭈뼜쭈뼜해지는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랄까.

그리고 크루거는 쭉 학교에 있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경제정책실장 (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for economic policy)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chairman of the White Hous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바도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말실수였겠지만) 오맬리는 크루거를 '월스트리트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우리식 용법이라면, '재벌하수인' 정도의 표현이겠지). 클린트의 표현대로 이것 정말 '옳지 않다'.

아참, 그리고 토론회 직후 최저임금에 대해 가장 민감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2백만 조합원의 서비스산업노조(Service Employment International Union)의 공식 지지선언을 끌어냈다. SEIU는 집행부 투표 후 성명서에서,

“힐러리 클린튼은 노동자 가족을 위해 싸우고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입증된 후보이다. 전미국의 SEIU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은 노동자 가족의 보다 낳은 미래를 건설하는 운동의 주체이며, 힐러리 클린튼은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할 것이다." (Hillary Clinton has proven she will fight, deliver and win for working families,” said SEIU President Mary Kay Henry in a statement. “SEIU members and working families across America are part of a growing movement to build a better future for their families, and Hillary Clinton will support and stand with them.)"

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