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정치와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논의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자유로운 시민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의사를 투표로 표출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합리적인 경제인 (Homo Economicus) 가정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치학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밴더빌트의 정치학자 Larry Bartels는, 며칠전 WaPo의 Monkey Cage 블로그에서 스토니브룩 대학의 Cengiz Erisen 등이 수행한 sumbliminal prime 실험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이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실험은 여럿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피실험자들은 자신에게 제시된 메시지를 읽고 의견을 밝힌다. 예컨데, 이런 메시지: “미국에 들어오고 있는 불법이민자의 수가 지난 6년간 급증하였다." 그리고 독립적인 실험조수가 이 반응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를 평가해서 기록한다. 당연히 피실험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 이민찬성론자들은 이민반대론자들에 비해서 긍정적인 반응이 38% 더 높았고, 부정적 반응이 34% 더 낮았다.

여기까지야 뭐 당연한 것인데, 이 실험은 숨겨진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메시지를 읽기 전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화면에 다음과 같은 아이콘 중 하나를 '주제와 무관한 자극 (irrelevant stimuli)'으로 노출시켰다. 미소짖는, 찌푸린, 무표정한 얼굴. 효과는 매우 커서, 웃는 얼굴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은 찌푸린 얼굴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에 비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42% 낮았고, 긍정적인 반응이 160% 높았다.


Ersen 등은 노출시간이 0.039초로 극히 짧았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이런 화면에 노출되었는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자극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은 정치학보다는 마케팅이론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으로 subliminal advertising이라고 부르는 광고기법이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음향이나, 영상을 삽입하여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는 것.

이 포스팅 이후에 컬럼비아의 정치학자 (아마도 황승식 교수 등은 통계학자로 분류하겠지만) Andrew Gelman은 이 효과가 너무 커서, 신뢰도에 의문을 표시했고, Bartels는 다시 추가로 답변하는 등 몇가지 설왕설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좀 더 진행될 듯하다. 아마도 원저자들이 나서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개인적으로 subliminal effect가 이렇게까지 클까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내가 마케팅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조금 그렇지만, 상품 광고에서도 이렇게 효과가 분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하지만 충분히 관심을 갖을 만한 주제로 생각하고, 좀 더 챙겨볼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5조(잠재의식광고의 제한)는 "방송광고는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subliminal advertising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방송광고는 <방송법> 제2조 제21호에서 '"방송광고"라 함은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내용물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방송을 통한 정치광고에 subliminal effect를 첨가하는 것이 불법인지는 조금 애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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