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Piketty's Book Is NOT Hot in France.

미국에서 Piketty의  붐이 과열 수준까지 가고 있고, 온갖 분석이 다 나오더니, 이제 "도대체 왜 프랑스인들은 미국인들만큼 열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까지. NY Times와 Foreign Affairs에서 경쟁적으로 기사를 냈는데, 유익한 편. 그리고 한국어판의 운명에 대한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할 듯.

  1. 덜 신선한 피케티: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피케티가 사회당의 주요 인물이었고, 2007년 대선에서 Ségolène Royale의 경제자문역부터 지금까지 핵심인사들과 긴밀하게 연결. 프랑스인들에게 피케티는 좀 지루해진 인물.
  2. 덜 충격적인 불평등미국인들과는 달리 프랑스인들은 대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심각하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어서, 책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3. 프랑스의 경제침체최근 경기가 나빠서, 사회당 대통령부터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감세, 정부지출 삭감 등이 영향력 확대 중. 증세에 대한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
  4. 이론적 문제피케티가 지나치게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을 활용한다는 비판. 좌파들의 태도로 이러한 비판은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거세.
  5. 학자에 대한 존중 부족프랑스 엘리트들은 Grandes Écoles 중심으로 양성되고, 이들은 대학의 학자들에 대한 존중 별로 없다
  6. 경제학에 대한 존중 부족프랑스에서는 1968년이 되어서야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받게 되. 그전에는 법학의 하위 분과로 취급.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철학자나 역사가 등이 누리는 존경을 받지 못해.
  7. 실증작업에 대한 인정영미권에서는 피케티에 대한 반대자들까지도, 피케티의 엄격하고 방대한 실증작업에 대한 높은 평가 존재. 프랑스에서는 그냥 높은 과세를 요구하는 좌파 중의 좌파 이미지가 더 지배.


일부는 서로 상반되는 항목도 있지만, 뭐 그런 저런 이유가 다 작동했을 듯. 한국에서는 어떨지 궁금한데,

  1. 일단 이 책에 한국 실증이 전혀 없다는 것은 흥행에 치명적일듯. 이 점은, 이 책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피케티 등이 주도하는 The World Top Income Database는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분배통계가 정리되어 있거나 정리 중인데, 한국은 아예 빠져있다. 
  2. 프랑스 경제학(자)에 대한 무시, 뭐 이런 것이 좀 있어서 이것도 흥행에 불리할 듯. 샌델의 정의론이 대박을 친 이유중의 하나는 "하버드 교수가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의를 책으로 정리"했다는 것.
  3. 미국에서의 열풍은 상당한 플러스 요인일 듯. 미국학계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주 강해서, 노벨상을 받은 크루그만이 솔로우가 또 누가 극찬을 했다는 것, 아마존 베스트 셀러 1등을 했다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일 듯.
  4. 또 뭐 항상 그렇듯 지나치게 좌파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 분배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계급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

Links
  1. Tyler Cowen and Veronique de Rugy, Why Piketty’s Book Is a Bigger Deal in America Than in France, April 29, 2014, New York Times.
  2. Clea Caulcutt, France Is Not Impressed with Thomas Piketty, April 28, 2014, Foreign Affairs.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공정하니...

우리말에 꼴값이란 게 있다.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데, "아주 꼴값을 해요"라는 말은 "생긴대로 논다" 아닐까 싶고, 조금 오바하자면 "외모로 그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그런 뜻 정도로 이해한다. 그런데 스탠포드 경영대학의  Peter Belmi와 Margaret Neale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꼴값과 불평등에 대한 태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석을 시도하였다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airest of them all? Thinking that one is attractive increases the tendency to support inequality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24 (2014) 133–149.)

1. 방법

이들은 다섯 가지 유사한 방식으로 인터넷 설문 조사를 했는데, 조사한 항목은 본인의 육체적 매력도(self-perceived attractiveness),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계층(subjective social class), 그룹차별성향 (group-based dominance 어떤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향 열등하다등의 항목에 대한 지지정도), 정당화 이데올로기 (legitimizing ideologies 여성과 소수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숙련이나 교육수준이 낮아서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기회를 동등하게 갖고 있다 등에 대한 지지정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평가 (개인성향론dispositional - 능력/재능/근면/자산관리 등등 v. 사회적요인론contextual - 차별/편견/상속/정책 등등), Occupy 운동에 기부금을 낼 의향 등이었다.

그리고 인구학적 요인들, 인종/연령/성별/교육수준 등은 통제하였다.

2. 발견

자신이 매력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할 수록, 스스로를 상위계층으로  생각하였고, 그룹차별성향이 강했으며, 정당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 개인성향론으로 설명하려는 성향이 강했고, 기부금을 낼 의향은 낮았다.

Click the image for higher resolution. Source: Belmi and Neale (2014).

또한 스스로의 매력도 평가에 앞서, 세 그룹으로 나누어 1그룹(매력조건그룹)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었던 순간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2그룹(비매력조건그룹)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했던 순간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3그룹(통제그룹)은 "가게에 갔던 경험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매력조건그룹은 통제그룹에 비해 자신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강해졌고, 비매력그룹은 통제그룹에 비해 자신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약해졌다. 그리고 그 뒤의 얘기는 동일하고. 

그러니까, 잘 생겼던 시절을 상기시키는 것 만으로도 그 인간을 평등에 반대하는 성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

끝으로 스스로의 육체적 매력도 외에, 스스로의 사회적공감도(emphathy)나 진실성(integrity)에 대해서도 평가하게 했는데, 이것은 불평등에 대한 위의 온갖 내용들과 유의하게 상관이 있는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3. 소감

뭔가 치밀한 분석은 아닌 느낌........이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그리고 나의 이 높은 self-perceived attractiveness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에 대한 tolerance가 매우 낮은 성향은 exceptionally noble한 것인가 하는.......쿨럭, 쿨럭...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United States of $$$

얼마전 타계한 Robert Dahl은 1961년 저서 Who Governs의 첫 문장에서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식, 재산, 사회적신분, 관료와외 관계 등 모든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 과연 이런 나라는 누가 지배하는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 소득과 재산 분배가 극심하게 양극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주의 이론도 다시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두 정치학자 Martin Gilens (Princeton)와 Benjamin I. Page(Northwestern)가 다소 이례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물 "Testing Theories of American Politics: Elites, Interest Groups, and Average Citizens"이 조만간 Perspectives on Politics에 게재된다고 한다. (Link for the public access PDF version) 미국의 여러 매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한테도 시사점이 있는 듯.

1. Four Theories

이들에 의하면 이 주제에 대해서는 네가지 이론적 대안이 존재한다고 한다.

  • Majoritarian Electoral Democracy 평균적인 시민이 지배한다.
  • Economic Elite Domination 부자가 지배한다.
  • Majoritarian Pluralism 이익단체가 지배한다.
  • Biased Pluralism 이익단체 일반이 아닌, 재계 이익단체가 지배한다.

2. Data

이런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지지하고 반박하는 수많은 실증연구가 있는데, 이들은 과감하게 통합 테스트를 시도했다. 이들은 우선 정책에 대한 계층별 선호를 조사하기 위해 1981~2002년간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시행된 정책에 대한 태도를 묻는 서베이 중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 연방정부 정책 대상 (주정부사항,  헌법개정사항, 대법원판결사항 제외)
  •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들 (집계가 쉬어야)
  • 응답자의 소득에 관한 항목을 포함할 것 (계층별 분석을 목표로)
  • 정책의 채택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것들 (이게 결과니까)

이렇게 집계된 것이 총 1,779 건으로, 이 건들의 설문결과를 하나하나 코딩해서(오, 불쌍한 조교들!), 기초 도구로 삼았다. 그래서 저소득층 (소득 하위 10%), 중간층 (중위소득자), 고소득층 (소득 상위 10%) 각각이 각 정책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를 알아냈다.

다음으로 이익집단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주요 이익집단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했는데, Fortune 지 선정 주요 이익집단 (Power 25) 리스트를 기반으로 해서, 지출액이 큰 10대 산업단체를 포함했다. 그리고 분석 대상인 1,779건의 정책 각각에 대해 이들 집단이 어떤 태도를 갖는지 각종 자료를 뒤져서 "강한지지", "다소지지", "다소반대", "강한반대"를 부여하였다 (오, 다시 한번 불쌍한 조교들). 그래서 이익집단의 각 정책에 대한 선호도(Net Interest Group Alignment)를 다음과 같이 계산하였다.

NIGA = ln(강한지지수 + [0.5 * 다소지지수] + 1) - ln(강한반대수 + [0.5 * 다소반대수] + 1) 

마지막으로 이들 정책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신문, 정부자료, 의회관보, 학술지 등을 다 뒤졌다 (아, 정말로 불쌍한 조교들!!)

3. 결과

우선 중위소득자의 선호, 고소득자의 선호, 이익집단의 선호 세가지를 독립변수로 해서 정책 채택율을 봤더니, 중위소득자의 선호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들이 선호한 정책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많이 채택되긴 했는데, 고소득자나 이익집단의 선호와 연동이 될 때만 채택). 반면에 고소득층의 선호와 이익집단의 찬성/반대 여부 (NIGA)는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Gilens and Page (2014)

그러니까 위의 설명대안 중에서, 적어도 이 자료는 Majortarian Electoral Democracy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Business Elite Dominance와 Interest Group Dominace는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익단체의 영향은 대중단체(AFL-CIO 등)와 재계이익단체(NRA 등)의 영향은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문제에 도전했는데, 두가지 범주로 이익단체를 구분해서 NIGA를 계산해서 분석했더니 대중단체보다 재계이익단체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컸다. 그래서 단순한 Majoritarian Pluralism보다는 Biased Pluralism이 작동한다는 것.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Gilens and Page (2014)

4. 소감

요즈음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경제학자들의 고립적인 연구에서 점차 벗어나, 경제학-심리학-정치학-교육학-보건학 등 여러 분야의 융합으로, 이론-실증-역사의 다 층위로 확장되는 경향이 뚜렸하다. 그리고 단순히 아카데미아의 논의가 아닌 현실의 정책/정치의 영역과 그대로 연결되는.

Gilens and Page의 이번 연구는 진짜 단순무식하다할 정도로 "노동집약적"인 연구인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일부 억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발견에 의해 기각되거나 수정되는 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돌파구를 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이것이 각고의 노력으로 입증되는 것의 차이랄까. 요즘 젊은 한국의 사회과학자들도 분배에 관한 여러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흥미로운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다는데, 좀 더 관심갖고 찾아봐야할 듯.

참 Robert Dahl의 현대 정치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난 듯. 내가 무식하여 작년 최장집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고 설명해주시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요즘의 정치학 논문도 시도 때도 없이 달의 연구성과를 인용하고 있으니. 그리고 Martin Gilens의 역작 두 편 중 Why Americans Hate Welfare (1999)는 <왜 미국인들은 복지를 싫어하는가>로 번역되어 있지만, Affluence and Influence (2012)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 책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 책인 듯. 뜻있는 출판인이 나서주길 기원.

PS (April 27, 2014) > 중앙SUNDAY에 압축적인 만평이 실려서 소개


PPS (May 22, 2014) > Economist Magazine에 Gilens and Page의 논문 소개가 실렸는데, 이 기사에서 의외인 것은 Economist지도 부자들이 지나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Economist지 다운 것은 지나친 영향력의 문제를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풍이 불어 금융부분 뿐만 아니라 경제전체에 해로운 포퓰리즘 정책이 도입될까하는 데서 찾는 것.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Maximum Wage

소득분배 불평등이 커지는 것에 대한 여러 해법 중 하나로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것이 있다면, 대칭적으로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작년에 스위스에서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사이의 격차를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국민투표가 있었고 이것은 비록 부결되었지만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제네바에 거주하는 ILO 이코노미스트 이상헌이 <한겨레 21>에 소개한 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Danielle Kurtzleben의 최근 Vox 기사(The law that failed to curb CEO pay, thanks to the biggest loophole ever)를 통해, 스위스와는 다르지만 미국에도 최고 임금을 제한하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린튼의 세법개정을 통해 입법화된 규정(26 U.S. Code § 162(m))인데, 미국 상장기업의 경우 CEO 또는 최고보수를 받는 4인 임원 각각의 연보수가 백만불을 넘을 경우, 이 초과분에 대해서는 손금인정을 해주지 않는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최고임원진의 보수를 제한하는 인센티브를 회사에 주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넘어서면 연방정부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기도 한 그런 규정.

그런데 함정이 하나 있어서 생각했던 효과를 제대로 내지는 못했다고, 연간보수를 계산할 때 성과급 부분은 제외하는 것으로 해서 대개의 경우 이 규정을 피해나간다고 한다. Economic Policy Institute의 추계(PDF)에 의하면, 이 규정이 도입되어 연간 법인세를 $2.5bn 더 겆게되었지만, 성과급 예외때문에 연간 $7.5bn의 세수는 놓치고 있다고 한다. 이 함정을 메우려는 입법시도는 있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한다.

내가 소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스위스에서 시도한 최고임금 지정방식보다는 특정 금액을 초과하는 임금에 대해서 손금불산입하는 방식이 더 끌리는데, 관심을 갖고 더 생각해 볼만.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사실과 논리로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보론)

며칠 전 Ezra Klein이 Dan Kahan의 실험에 대한 기사를 Vox에 실었고, 약간의 여진이 발생. 기왕에 나도 소개를 했던 입장에서 조금 더 나가보면...

1. Asymmetric Stupidity by Paul Krugman

크루그만은 자신의 NYT 블로그에 Asymmetric Stupidity라는 짧은 포스팅을 했는데,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정상적인 사고가 저해되는 경향은 리버랄과 보수 사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수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Klein에 대해 약간의 불평을 하였다. 이 때 예로 든 것이 보수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부정하거나, 2012년 오바마가 롬니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거나,  오바마케어가 실제 미보험자의 커버를 높일 것을 부인하는 것 등에 필적하는 리버럴의 극단적인 Stupidity가 없지 않냐는 것.

2. Dan Kahan's Critique of Paul Krugman

실험의 원 설계자인 Kahan에 의하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 인식의 검증은 증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한 것이지, 옳은 답을 얻었느냐 여부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리버럴들이 우연히 정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들의 사고가 더 high quality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을 입증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각각 증거를 앞에 두고 진실과의 관련 속에서 사고를 진행시키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전제와 가까운가 여부를 갖고 증거를 버리거나 채택하는지를 테스트해야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리버럴 Krugman은, 진실로 liberal-conservative 사이에서 stupidity가 symmetric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비아냥을...

3. The WSJ hates Paul Krugman as usual

이런 일에 뒷짐을 설 WSJ이 아니다. 크루그만이 예로 든 비대칭성의 사례에 대해 조목조목 WSJ의 입장에서 비판을. 비판 내용이야 보시면 알 것이고, 오히려 오래된 기시감이 든다. 십수년전에 WSJ은 온라인 판에서 자신이 보기에 엉터리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Stupidity Watch라는 제목으로 공격을 했었는데, 하도 Paul Krugman에 대한 공격이 많아지자, 아예 Paul Krugman Watch라는 독립된 시리즈를 한동안 계속했다. 그리고 그 때 MIT 경제학교수인 Krugman이라는 소개 대신, 항상 "전직 엔론사 고문 Paul Krugman"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 타이틀을.

4. 소감

나는 지난번 포스팅에서 그래도 나는 과학과 논리, 다수결의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 인간의 사고에 대한 궁극의 신뢰를 표현하면서 근대적 인간이라고 썼는데, 홍성욱 교수가 댓글에서 본인은 나와 정반대로 생각하신다면서 본인은 뼛속 깊숙이 탈근대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아 근데 정말 이 후속담들을 보니, What the H***. 나도 홍교수 쪽에 끌린다. ㅠㅠ.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사실과 논리로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오늘 오래간만에 전철로 퇴근. 전철 안에서만 한시간이라 이런 저런 웹서핑을 하면서 집에 오는데 (아, 나도 안다. 이런 귀한 시간을 얻었을 때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게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허나 어쩌랴 전철을 타고 보니, 손에 책 한권 없고 있는 것은 딸랑 스마트 폰 뿐), 특별히 눈에 띄는 두편의 글이 있어서 같이 정리해 둔다 (사실 두 편이 잘 엮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뭐 일기장 비슷한 블로그니 내 맘대로).

1. Information Matters

세명의 정치학자가, Kyle Dropp (Dartmouth), Joshua D. Kertzer (Harvard) and Thomas Zeitzoff (Princeton), 3월말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미국인 2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했는데, 그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설문의 가장 핵심은 "당신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는가'라는 것인데, 이러한 견해를 형성하는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해 통상적인 인구학적 항목들을 조사했다: 나이, 성별, 학력, 민주당/공화당 성향 등등.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하나의 특이한 항목을 추가했는데, 화면상에 고해상도 세계지도를 보여주면서,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마크를 하게했다. 그 결과가 아래의 지도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Dropp-Kertzer-Zeitzoff (2014)

동구의 정확한 지점에 마크한 경우는 대략 16%였고, 전반적으로는 정확도가 매우 낮아서, 실제 위치와 마크와의 차이의 (이를 편의상 오차거리라고 하자) 중위값은 대략 1,800 마일이었다. 소그룹별로는 보면 예상대로 젊은이가 노인보다 정확했고 (27% v. 14%), 남성이 여성보다 정확했고 (20% vs. 13%) 대졸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정확했다 (21% v. 13%). 반면에 약간 특이한 것은 군인가족과 비군인가족이 정확도에 차이가 없었으며, 정치적 성향으로는 무당파(29%)가 민주당파(14%)와 공화당파(15%)를 압도했다.

이들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오차거리와 군사적 개입의 지지도 사이에 뚜렷한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부정확하게 알수록,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였다. 이것은 일반적인 외교관점이나 인구적 특성을 다 콘트롤해도 95% 신뢰구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군사적 개입이 미국의 국익에서 반드시 바람직한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정보가 확대될수록 의사결정이 군사적 비개입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See. Kyle Dropp, Joshua D. Kertzer and Thomas Zeitzoff (2014), The less Americans know about Ukraine’s location, the more they want U.S. to intervene, in The Monkey Cage Blog.

2. Identity-Protective Cognition

내가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꼽는 Ezra Klein이 Yale의 법학/심리학 교수인 Dan Kahan이 이끄는 팀의 정보와 당파성에 관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사실 이 실험은 나도 작년 가을에 짧게 페이스북에 소개한 바 있는데, 이 기사는 무엇보다 Kahan과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폭넓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

Kahan은 Erica Cantrell Dawson (Cornell), Ellen Peters (Ohio State), Paul Slovic (U. Oregon)과 함께 미국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본적인 문제들을 풀게 해서 각 대상자들의 수리능력을 0~9점까지 부여하였고,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서 강진보, 약진보, 중도, 약보수, 강보수의 5단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가상의 실험 결과를 해석하게 하였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새로운 연고를 사용한 사람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확률적으로 피부가 더 좋아진다/나빠진다" 중에서 답해야 하는데, 좋아진 사람 중에서 새 연고를 사용한 사람이 223명이고,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107명이니 연고를 사용한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라고 답하면 함정에 빠진 것이고, 연고 사용자의 74.8% (=223/(223+75))가 좋아지고, 사용하지 않은 사람 중의 83.6% (=107/(107+21))가 좋아지니, 사용하는 것이 사용하지 않는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쁘다라고 해석하는 게 정확한 답이다.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위의 표의 Rash Got Better와 Worse를 바꿔서 동일하게 조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아서 대체로 수리능력 점수가 높을수록 여드름 실험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비율이 높았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여기까지만 보면, "이토록 단순한 문제도 못풀다니, 우리 나라의 교육은 큰 문제, 운운"하는 비분강개에 쓰이고 말텐데, 이들은 약간의 변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위의 가상의 여드름 실험은 특별히 당파적인 이슈는 아닌데, 이번엔 똑 같은 숫자를 주고, "새로운 연고를 썼더니 여드름이 개선/악화되었다"가 아니라, "새로운 총기규제를 했더니 범죄가 줄었다/늘었다"로 문항을 빠꾸어서 일군의 집단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 전체적 결과는 여드름 치료와 별로 다르지 않아서,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수리능력 점수가 높을수록 정확하게 해석을 했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그런데 이 정답/오답율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해서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되었다. 우선 여드름 연고에 대해서는 각 정파별로 특별한 패턴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총기규제에 대해서는 범죄가 줄어드는 사례에서는 수리능력이 높아질 수록 진보파는 급격히 정확도가 높아졌지만, 보수파는 거의 정확도 개선이 없었다. 반대로 범죄가 오히려 늘어나는 사례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패턴이 발생했다.  더 아픈 발견은 수리능력이 낮은 집단에서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해석차이가 조금 발생하는데, 수리능력이 높은 집단에서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해석차이가 오히려 더 심각해 진다는 것이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Kahan et al. (2013)

이들은 충분한 증거가 있음에도 대중적 논쟁이 해결이 되지않는 것을 설명하는 두가지 설명틀을 제시하는데, 첫째는 Science Comprehension Thesis로 대중의 지식이나 논리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Identity-protective Cognition Thesis로 문화적 갈등이 정상적이 사고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Kahan 등의 이 실험은 그 자체로서 SCT에 대한 강력한 반증을 제공한다. 당파성을 강하게 갖는 주장은  사회의 논리력이 더 높아질수록 오히려 논쟁의 간극이 더 커진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ICT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이 속한 정치적 집단의 생각과 다른 것을 주장할 때 정체성의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데, 현대 미국 정치에서 이 위기감이 점차 커지고 있고, 적어도 이 실험은 이 ICT에 더 부합한다.

See. Dan Kahan et al.  (2013) Motivated Numeracy and Enlightened Self-Government (PDF), Yale Law School Working Paper, and Ezra Klein (2014) How politics makes us stupid, in Vox.

3. 몇가지 소감

미국 정당정치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더 양극화되고, 언론도 (Fox와 MSNBC), 유권자도 다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예전에도 페이스북에 한번 포스팅한 바 있지만, The National Journal2012년 미국 상원의 양극화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The National Journal. (2013)

윗줄의 왼쪽부터 순서대로 보수지수가 높은 것이고, 테두리가 빨간 인물은 공화당, 파란 인물은 민주당 소속이다. 정확히 공화당이 끝나는 지점에서 민주당이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 어떤 진보적인 공화당 상원의원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보다 더 보수적이다. (에구, 그런데 이것이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데, 내 주변에서는 오히려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 "아니 새누리당 의원보다 더 보수적인 꼴통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다는 게 말이 되!" 또는 "새정치 민주연합 의원보다 더 빨갱이같은 새누리당 의원은 솎아내야")

다음으로 이러한 ICT가 보편적인 것이냐, 아니면 예외적인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Kahan은 자신의 실험발견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나도 그런 축인데, 여기서 맥락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스스로를 근대적인 인간인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풍파가 있고, 아노말리가 있고 하겠으나,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것, 논리, 과학, 증거가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 인간의 사고능력은 결함투성이이지만 궁극에는 합리적인 측면이 더 우월하다는 것, 뭐 그런 것을 믿는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정치를 뭐하러 하겠는가.

그리고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 설명에서 중요한 것이 소위 문화전쟁(Cultural War)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계기가 되는 측면은 역사전쟁이 아닐까 싶다. 내 아버지 세대는, 전쟁의 비참함과 빈곤에서 탈출한 자랑스런 역사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우리 세대는 개인적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군사독재와 싸워서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둘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고. 나도 아버지와 이 주제는 서로 피하니까, 이 영역에서는 적어도 상당기간은 ICT가 압도할 듯. 좌우간 쉬운 일은 아니다.

2014년 4월 5일 토요일

스트라이크와 볼 그 체계적 오심.

요 며칠 사이에 메이저리그 경기의 스트라이크와 볼의 판정에 대한 두건의 분석이 New York Times (March 30)와 FiveThirtyEight (April 3)에 기사화되었다. 두건 다 프로페셔널 경영학자들의 논문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것인데,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고 사실 예전에 유사한 소개를 포스팅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차일피일하다가 미루었던 것도 있고 해서, 이번 기회에 간단하게 요약 정리해 둔다.

1. 백그라운드

공식적인 스트라이크 존은 횡적으로는 홈플레이트의 좌우경계를, 종적으로는 어깨/허리의 중간선과 무릎선으로 구성되는 직사각형의 영역이다.

Source: Strike Zone in Wikipedia.

문제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않은 공이 스트라이크로 잘못 판정되거나(Over-Recognition), 반대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이 볼로 잘못 판정되는 경우(Under-Recognition)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니,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오심은 어느정도 자주 일어나는가하는 것과, 이러한 오심이 어떤 경향성을 띄는가 하는 것이 관심의 영역이다.

이 오심에 대해선 야구 초창기부터 수많은 예상과 억측이 있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2007년부터 Pitch f/x라고 해서 정밀 카레라를 통해서 모든 투구를 1cm 이내의 오차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몇년간 쌓여서 엄청난 양이 축적되었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분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모든 분석과 기사는 다 이 Pitch f/x 자료를 이용한 것들이다.

2. 투수의 지위 (Status of Pitcher)

콜롬비아 경영대학의 김원용 교수와 켈로그 스쿨의 Brayden King 교수의 "Seeing Stars: Matthew Effects and Status Bias in Major League Baseball Umpiring" (forthcoming Management Science, Link for Downloadable Working Paper in PDF)는 투수의 지위가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 논문을 요약해서 New York Times"What Umpires Get Wrong"이라는 기사로 실었다.

이들은 투수의 지위를 측정하는 변수로 과거의 올스타전 참여 횟수를, 제구력이 높은 투수라는 명성을 측정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구 (base-on-balls) 허용율을 선택했다. 그리고 홈경기 여부, 관객수, 투수의 메이저리그 참여연도 등 다양한 변수를 콘트롤하였다. 핵심 결론은 투수의 지위가 높을수록 주심은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

우선 Over-Recognition을 살펴보자.

Source: King and Kim (forthcoming)

세로축은 over-recognition의 확률이고, 가로축은 사구 허용율이다. 그림에서 보듯 올스타전에 참가한 경험이 많을수록 실제 투구가 볼이었음에도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받아낼 가능성이 컸다. 다만, 사구 허용율이 높은 투수들 사이에서는 올스타전 참여 여부가 유리하게 작동하는 효과가 사라졌다. 결국 투수가 제구력이 높다고 알려져있고, 올스타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을 때, 매우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Under-Recognitiond을 살펴보자.

Source: King and Kim (forthcoming)

이 차트의 세로축은 under-recognition의 확률이고, 가로축은 실제 투구가 스트라이크 존의 경계에서 얼마나 떨어졌는가를 측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왼쪽에 있을 수록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것이고, 오른쪽으로 갈 수록 스트라이크 존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도 over-recognition만큼은 아니지만, 올스타전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도 볼로 판정을 받는 억울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낮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차이는 경계선 상에서 아슬아슬할 때 유리하게 작동했고, 스트라이크 존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공은 지위가 높은 투수건 그렇지 않은 투수건 스트라이크로 판정될 확률이 극히 낮았다.

3. Impact Aversion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생인 Etan Green과 David P. Daniels는 지난 2월 개최된 제8차 MIT Sloan Sprots Analytics Conference에서 "What Does it Take to Call a Strike? Three Biases in Umpire Decision Making" (Downloadable Paper in PDF)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요약해서 FiveThirtyEight"Four Strikes And You’re Out"으로 기고하였다. 이 논문의 핵심은 현재의 볼카운트가 주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단 출발점으로 아래의 차트를 먼저 보자.

Source: Green and Daniels (2014)

이 그림의 vertical axis라고 하는 축은 스트라이크 존의 세로방향, horizontal axis라고 하는 것은 가로방향을 의미한다. 붉은 색 라인이 실제 스트라이크 존이고, 0은 스트라이크 존의 중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차트의 높이는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받을 확률로 붉은 색은 1에 가까운 것이고, 푸른색은 0에 가까운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 실제 스트라이크 존의 외부로 갈수록 푸른색이 짙어지고, 스트라이크 존의 한가운에로 가면 붉은 색이 짙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 이제 3-볼인 상태여서 볼 하나가 추가되면 사구로 되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때도 주심은 평상시와 동일하게 판정을 할까? 만약 그렇다면 3-볼인 상황에서의 차트도 위의 차트와 동일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로 그려보면, 다르게 나타난다. 아래 그림은 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Source: Green and Daniels (2014)

이 차트의 높이는 대체로 0 또는 양의 값을 갖는데, 그 의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3-볼인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더 받게 될 가능성이다. 차트 아래쪽에 붉은 색 사각형이 스트라이크 존인데 존의 경계에서 특별히 그 값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주심은 3-볼인 상황에서 평상시보다 더 스트라이크를 남발하는데, 경계에서 확실히 벗어나서 누가 봐도 볼이거나, 한가운데 들어와서 분명이 스트라이크거나 한 경우는 차이가 거의 없지만, 경계상에 애매할 때는 평상시보다 더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것과 대칭적인 상황은 2-스트라이크인 경우로, 이때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 삼진 아웃된다. 이 때는 위와 정반대로 심판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매우 엄격하게 한다.

Source: Green and Daniels (2014)

이번에는 차트의 높이가 대체로 0 또는 그 이하의 영역이다. 차트 윗부분의 붉은색으로 표시된 스트라이크 존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번에는 완전히 벗어나거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분명한 경우는 일상적인 상황과 2-스트라이크 상황이 차이가 없지만, 경계에 있을 때는 2-스트라이크인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은 평상시보다 낮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관객이 기대하는 바, 그리고 심판들도 받아들이고 있는 바, "경기가 심판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암묵적인 어떤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2-스트라이크인 상황에서 오심으로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해도 큰 반발은 없겠지만, 오심으로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해서 선수가 아웃이 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심판이 결정했다!). 3-볼인 상황은 정확히 반대이고. 그래서 심판은 자신의 판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Impact Aversion)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할 때 현재의 볼카운트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impact aversion에 대한 분석은 이번에 처음 수행된 것이 아니다. Tobias J. Moskowitz가 2011년에 출간한 Scorecasting에도 이것과 거의 유사한 분석이 등장한다. 다만 차트 표현만 다를 뿐. 이것을 살펴보자.


Source: Moskowitz (2011)

여기에서 직사각형 영역이 공식 스트라이크 존이다. 그리고 둥그런 부분은 현실의 스트라이크 존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인데, 해당 영역에 공이 들어왔을 경우 50% 이상 실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영역이다. 안쪽의 빗금 친 영역은 2-스트라이크인 상황이고, 바깥의 큰 원은 3-볼인 상황이다. 두 영역의 차이인 색칠을 한 도넛 부분을 해석하자면, 여기에 공이 올 경우 2-스트라이크인 상황이라면 볼로 판정을 받을 확률이 50% 이상이고, 반대로 3-볼인 상황이라면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받을 확률이 50% 이상이다라는 것.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Green-Daniels의 3-dimensional heat map과 Moskowitz의 평면도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거의 같은데, 전자가 훨씬 팬시해보이긴 하지만, 오히려 설명하기 더 어려운 듯. 나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Moskowitz의 책을 읽은 바 있고, Pitch f/x가 뭔지 익숙한 상황이니까 Green-Daniels의 글이 쉽게 이해가 갔지,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몇번을 갸우뚱 했을 듯. 좌우간 차트의 핵심이 "멋져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

4. 그리고....

야구에서 비디오 판정이 확대되고 있지만, 스트라이크와 볼의 판정은 전적으로 주심의 육안판정에 의존한다. 이 이유는 뭘까? 잘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재도 매 투구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공이 홈플레이트를 지나는 순간 심판은 그냥 멀뚱히 서있고, 기계판정에 의해서 보드에 스트라이크/볼이 표시되고 이것을 장내 아나운서가 선언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도 그냥 가능한데.

인간미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심도 게임의 일부라는 옛 경구 때문에?

2014년 4월 4일 금요일

인터넷과 탈종교?

미국 인구 중 "종교없음"에 속하는 비율이 1990년대까지는 수십년간 5~8% 수준이었는데,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지금은 거의 20%에 근접. 이 퍼즐을 풀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최근 올린 공대의 컴퓨터 과학자 알렌 다우니가 이색적인 주장을.


위의 그림 아래쪽의 붉은색 선이 앞서 말한 "종교없음" 인구의 비율인데, 위쪽의 파란색선은 전체 인구중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의 비율로 두 선은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데이터는 시카고 대학의 General Science Survey을 이용.

"종교없음" 인구 증가의 25% 정도는 종교적 환경에서 자란 비율의 감소로, 5%는 대학교육을 받은 인구의 증가로, 그리고 25%는 인터넷 인구의 증가로...나머지는 unexplained로...결론.

이런 주장을 보면 누구나 "Correlation does not imply causation!"가 떠오를텐데, 알렌 역시 이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면서 답하길, 1) 논리적으로는 인터넷 사용의 증가는 새로운 정보의 증가, 인적 네트워크의 다양화이므로 좁은 종교적 코뮤니티의 영향 감소이고, 이에 따라 "종교없음"이 늘어날 수 있다 2) 반대편 인과, 그러니까 "종교없음" 인구증가가 인터넷 사용증가를 초래했다고 보기는 더 어려운 것 아닐까? 3) 다른 많은 변수들을 콘트롤해도 여전히 이 효과가 지속이라는 세가지 논거로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펼치는데...

글쎄, 나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Correlation does not imply causation라는 생각이약해지지 않는다. 온갖 반대쪽 생각들을 할 수도 있을 듯. 1) 종교가 없던 인간이 인터넷으로 특정종교에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인터넷은 각 종교의 중요한 선교수단이다), 2) 종교가 없어진 인간이 교회가던 시간을 벌게되어, 인터넷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고, 3) 그리고 콘트롤 변수를 늘리는 것이 인과와 상관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게 natural experiment 진영 사람들의 기본 입장인 듯하고....

- Fulltext는 ArXiv에서 http://arxiv.org/abs/1403.5534
- 이 논문에 대한 소개는 MIT Tech Review에서 http://a.to/14Mif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