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지난 토요일, 몇시간동안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쓸 수 없던 차에, 박상준의 <불황터널 :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을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우선 전체적으로 매우 읽기가 쉽다. 특별한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니 어쩌면 경제학개론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려나 모르겠다),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허술하거나 얕지 않다.

일본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냥 현실 속의 거시경제학 이해를 높이는, 이런 목표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상대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이것은 뭐 한권의 책에 다 기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 강추!

몇가지 인상적인 것을 두서없이 메모해 둔다.

1. 정치적인 지지는 정책 추진의 결정적인 자산이다.

2001년 고이즈미 취임 직후 지지율은 80%대로 최고수준에서 시작하였고, 2006년 퇴임시까지 50% 이상을 유지하였다. NHK정치의식월례조사가 시작된 1998년 이래 퇴임시점에 50% 이상의 지지를 유지한 것은 고이즈미가 유일하다고 한다.


고베 역시 2013년 2차내각 출범 직후 지지율은 60%대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 전해의 노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분명하다.


성공 실패를 차치하고, 2000년대 이후, 아마 한국인이 기억하는 두명의 수상은 고이즈미와 아베 뿐 아닐까? 찾아보니 그 사이에 후쿠다, 아소, 하토야마, 칸, 노다 수상이 있었지만, 어렴풋이 그런 정치인이 있었지, 정도 아닌지?

2. 고이즈미와 아베의 경제학

우선 통화정책은 잘 아는대로, 고이즈미는 세계 최초의 양적완화정책을 폈고, 아베도 제2차 양적완화를 폈으니 유사한 궤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정책은 정반대로 고이즈미(또 아베 1차내각까지)는 재정건전화정책이었으나, 아베는 기동적재정정책으로 각기 긴축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대 방향을 지향하였다. 끝으로 구조개혁, 박상준의 평가는 냉정하거나 또는 시니컬하다. 장기적 성장전략이라는 것은 어느 내각에서나 강조되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구조개혁 역시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불황터널에 의하면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의 초점은 '우정민영화'였는데, 고이즈미는 이를 위해 내각해산을 불사하고, 국민의 여론을 모아 압승하는 소위 '고이즈미극장'을 벌여 대성공을 한다. 하지만 그 실 내용은 정부보유 지분의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으로 여전히 우정은 정부가 압도적 대주주라는 것.

3. 아베의 재기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아베1차내각이 붕괴하고 아베는 사라지는가 했는데, 2011년 대지진 이후 211명의 국회의원이 '증세에 의존하지 않는 부흥재원을 추구하는 회'를 설립하여, 대규모 국채발행과 일본은행의 인수를 주장하였는데, 놀랍게도 민주당 113명, 자민당 65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대표로 자민당의 실패한 정치인 아베가 선임되었다. 그 배경이 몹시 궁금한데, 경제학 책이라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좀 아쉽다.

4. 다케나카 헤이조

케이오 대학 교수 출신인데, 고이즈미1차내각에서 경제정책담당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을 역임. 현재의 한국식으로 말하면 기획재정부장관과 금융위원장을 겸임한 것이고, 예전 한국식으로 말하면 경제기획원장관과 재무부장관을 겸임한 것. 여튼 막강한 힘을 갖고 소위 '성역없는 개혁'을 진두지휘했는데, 그가 최근 낸 책에서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장기 성장 개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

5. 원샷법

박상준은 일본에서는 원샷법 제정에 반발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재벌의 후계작업 과정에 악용될 우려때문에 상당한 반발이 있다고 지적.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이법의 내용과 입법과정을 좀 지켜본 바로는 크게 재벌에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있다.

우선 이 글의 첫부문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지지는 정책의 추진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의 원샷법 첫 수혜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 사이의 화력발전사업에서의 신규합작법인 설립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승인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원샷법 첫 수혜기업으로 한화케미컬, 유니드, 동양물산기업 세개 회사의 사업재편계획이 승인되었는데, 김관영의원이 국감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중 유니드와 동양물산기업 두 기업은 모두 대통령의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들이었다. 유니드는 대통령의 이종조카가 부사장이고, 동양물산기업은 사촌형부가 오너. 워낙에 엽기적인 정치상황이 전개되어 이정도로는 별 감각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관계를 알고 선정했든, 모르고 선정했든 산자부의 일처리는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은 첫 시작부터 코메디가 되버린 느낌.

6. 여성의 경제참여

소위 경력단절을 나타내는 M-shape 여성 취업율 차트는 일본이 덜 뚜렷. 그런데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의 '여성의 활약이 보이는가 사이트 女性の活躍「見える化」サイト'. 기업별 남여직원비율을 게시하는데, 관리직과 임원직 여성 비율도 표시. 또 일본 게이단렌의 사이트는 '여성의 활약 女性の活躍', 여기에서는 각사별로 女性の役員・管理職登用等に関する自主行動計画이라는 명칭으로 각사가 향후 계획을 게시.

한국의 경우도 여성의 경제참여율 자체는 많이 높아졌지만, 소위 유리천정이라고 하는 상급직 여성비율이 너무도 낮은 것을 고려해볼 때 참고할 만

7. 엔화 안전자산

박상준은 충격이 올 때마다, 엔화가 강해지는 현상에 대해 '왜 엔화가 안전자산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썼는데, 나 역시 이게 정말 궁금하다. 그 현상을 설명하는 논거는 주로 "일본 국채는 GDP 대비 200% 이상으로 OECD 국가중 가장 높지만, 그 국채는 주로 일본의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고, 일본의 금융기관은 일본의 가계의 자금을 주로 운용"이라는 것인데, 이게 난 잘 납득이 안간다. 저렇게 엄청난 국채를 깔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신뢰가 확 사라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국채를 팔자라고 줄을 설 것 같은데, 국채 보유자가 외국금융기관이 아니고 국내금융기관이라고 하는게 그토록 큰 행동의 차이를 보일까? 잘 모르겠다.

8. 중앙은행 총재

일본은행 총재의 임면에 관한 약간의 에피소드. 일본 역시 선진국답게 중앙은행 총재는 양원의 동의를 받아 내각이 임명한다 (부총재와 심의위원도 마찬가지이다). 2008년 일본은행 총재로 당시 부총재였던 무토가 추천되었는데, 참의원에서 부결. 특별한 하자는 없었으나 무토가 대장성출신이라는 것 (우리나라 기재부). 그러니까 기재부 출신은 부총재까지는 몰라도 총재는 곤란하다는 국회의 선언.

반면 지금 세개의 화살 중 하나인 소위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펴고 있는 구로다는 2013년 초 아시아개발은행총재였는데, 무토와 마찬가지로 대장성출신. 그래서 어렵지 않겠느냐는 설이 많았는데,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일본경제의 최대과제로 공공연히 선언하였고, 민주당 역시 자격이 되면 대장성 출신이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변화에 힘입어 무난히 의회 동의를 받아 일본은행 총재 취임. 인물차이보다 상황의 차이, 역시 인사는 운칠기삼.

9. 청년실업

한국과 일본의 (시차를 둔) 유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기사와 분석이 있다, 인구추이, 생산성, 경제성장율 등등.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몇 있는데 하나는 한국의 일본에 비해 양호한 기업부채이고 또 하나는 일본에 비해 암울한 청년실업률. 이것 역시 궁금한 영역이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읽어도 잘 잡히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든가, 대중소기업 초임 격차가 한국이 일본에 비해 너무 심하다든가 하는 것들은 뭔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 이건 더 고민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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