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1일 목요일

탈 빈민촌 정책 효과의 증거를 찾아 나선 경제학자들.....

1. 배경

스타 중의 스타 경제학자라고 할 Raj Chetty의 빈민촌에 대한 이웃 효과 분석 프로젝트는 작년에 미국의 언론을 떠들석하게 한 바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연구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사실 빈민촌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나중에 가난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관찰연구에서 발견되지만, 이런 관찰로는 이것이 이웃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의 효과에 대한 정책적 도전과 그 정책의 인과적 증거를 찾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길고도 창의적인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해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 써먹을 때를 위해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2. Moving to Opportunity

이번에 알게된 것인데, 미국에서 정책 효과의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 Randomize Controlled Trials를 시도한 역사가 상당하다. 빈민촌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토부에 해당하는 미국 주택 및 도시개발부(U.S.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HUD))는 "기회를 찾아 이사가기 Moving to Opportunity (MTO)"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아 국회 언저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은 <주택 및 공동체 개발법 Housing and Community Development Act of 1992 (H.R. 5334 (102nd))>의 152조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 선례를 남긴 미국 국회에 경의를.

이 프로젝트에 따라 1994~1998년간에 미국 5개 도시(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LA, 뉴욕) 빈민촌의 낙후된 공공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였다. 여기에 당첨된 한그룹은 빈민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Experiment 그룹), 당첨된 또 한그룹은 이사 지역에 대한 조건 없이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Section 8 그룹), 탈락한 마지막 그룹에게는 바우처를 포함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Control 그룹).


3.  중간평가(4~7년)

MTO에 대한 첫 분석은 여러 팀에서 수행되었는데, 그 중에서 경제적 성과와 관련해서는 NBER이 맡았고, 하버드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들인 Lawrence F. Katz, Jeffrey R. Kling 및 Jeffrey B. Liebman이 담당하였다. 아래 표에서 보듯 다양한 항목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견되었지만,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게도 성인들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표의 출처는 Kats-Kling-Liebman (2001), “Moving to Opportunity in Boston: Early Results of a Randomized Mobility Experime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16, pp. 607-654. 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로 다운 가능)



이것은 이들의 다른 논문에 등장하는 그래프로도 확인이 된다. 각 시기별로 비교해 보아도 세 그룹 사이에 고용율의 뚜렷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는 Kling-Liebman-Katz (2007), "Experimental Analysis of Neighborhood Effects," Econometrica, vol. 75, pp. 83–119. 이 것 역시 공개된 버젼은 NBER에서)


4.  최종평가(10~15년)

최종평가 역시 NBER에서 맡았는데, 이들이 HUD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성인그룹은 10~15년의 장기적 효과로도 소득이나, 고용율에서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Sanbonmatsu et al. (2011), Moving to Opportunity for Fair Housing Demonstration Program: Final Impacts Evaluation,
U.S. HUD)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들(15~20세) 역시 이제 10여년이 경과하여 성인이 되어 경제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차트로 보면 더 뚜렷한데, MOT 프로그램으로 추첨을 한 후 43분기가 경과하는 동안 고용율을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였지만, 각 그룹의 모습은 서로 거의 흡사하였다.


5.  It Ain't Over 'til It's Over

첫 MTO가 1994년에 도입되어, 14년이 경과된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이용한 최종보고서가 나왔지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호프 체티가 나시 나섰다. 이번에는 2012년까지 데이터를 확장하여 최종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청소년 이전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긴 시점간 효과를 구하기 위해 체티의 장기인 소득세 자료를 MTO와 링크시켜서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Chetty-Hendren-Katz (forthcoming), "The Effects of Exposure to Better Neighborhoods on Children:
New Evidence from the Moving to Opportunity Experiment," American Economic Review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

결국 이들이 밝혀낸 MTO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는 이사 시기에 13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에 있어서는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통적인 Section 8 그룹보다, Experiment 그룹에서 더욱 강하였다.



6.  발상의 전환 

며칠 전 뉴욕타임즈에 "나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해롭다 Growing Up in a Bad Neighborhood Does More Harm Than We Thought"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자 Justin Wolfers가 자신이 지도한 대학원생 Eric Chyn의 박사논문을 소개한 것인데, 또 하나의 스타탄생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Chyn은 'MTO는 교과서적인 형태로 RCT가 진행되었지만,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바우처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큰 그룹 아닐까? 그래서 추첨에서 떨어져서 Control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도 빈민촌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가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러한 환경개선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덜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Chyn에게는 다행히도(?) 1995~98년간에 시카고 주택청은 빈민들이 집중 거주하는 고층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택 바우처를 주었다. 그래서 자연실험에 의해 빈민촌을 떠나 이주한 그룹과 빈민촌에 머무른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 두 그룹은 각 구성원들이 어떤 종류로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훌륭한 실험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고용율과 소득 모두 콘트롤 그룹에 비해 실험그룹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푸른색은 Chyn이 분석한 자연실험의 결과이고, 오른쪽 두개는 Sanbonmatsu et al의 MTO 최종보고서에 나타난 Section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녹색)와 실험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노란색) 결과이다. 그리고 왼쪽에서 두번째 와인색은 MTO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카고 주택공사가 진행한 Section 8그룹과 통제그룹 사이의 비교이다.  



7. 부러움과 배울 것

일단 무엇보다도 정책효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참 부럽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무려 이십여년 전에 주택정책에 RCT 방식을 도입한 것도 놀랍고, 관련된 법에 해당 정책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명시한 것도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일이고, 그 보고서의 작성주체가 세계적인 학자들이고, 또 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서 '이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명시하는 것도 용감한 일이고, 그리고 학자들이 끝없이 자료를 파헤치면서 새로운 해석을 추가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

여기에서 빈민촌으로 문제가 되는 주택은 대도시에 환경이 안좋은 지역에 위치한 낡은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은 워낙에 공공임대주택 보급비율이 낮아 이를 높이려는 계획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급량 확대와 더불어 공공임대주택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주민들과 믹스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부실에 의한 노후화, 슬럼화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리고 울퍼스가 뉴욕타임즈 기고문 마지막에 남긴 멘트도 재미있다. 정부의 사회정책 수행능력에 회의적인 보수파는 Chyn의 글을 통해서, '역시 정책에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꼭 정책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리버럴들은 '이런 실험을 통해 사회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지원자가 아닌 전체 모집단에 적용하는 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생각할 것.

8. 기타 

체티가 손대는 수많은 영역 중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기회의 평등 프로젝트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인데, 1부가 2014년초에 큰 화제가 되었던 "세대간 이동가능성 Intergenerational Mobility"이였고, 이것은 내가 간략하게 정리해 둔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한 "이웃의 효과 Causal Effects of Neighborhoods"는 그 2부에 해당.

아 그리고 내 블로그에 보니, Eric Chyn의 또 다른 연구를 흥미롭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BP가 2010 멕시코만에서 대형 사고로 해안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 또 어떤 멋진 작품을 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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