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불평등 민주주의>를 읽고 (I)

조금 전에 래리 M.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 (21세기북스)>를 다 읽었다. 읽기 시작한 것은 꽤 되는데, 중간에 책을 분실해서 다시 사기도 했고, 뭐 다 아시는대로 최근 얼마간은 책이 잘 읽히지도 않았고. 여하간 다 읽고 난 소감은,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것, 내가 최근 몇년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런 느낌.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머리속에 막 떠오르는 대로, 약간의 인상 비슷한 그런 것을 좀 풀어볼까 한다.

아시다시피 지난 대선의 결과를 두고, 가난한 계층일수록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았다는 것에 기초해서 한국에서는 "역 계급투표 현상"이라는 주장이 대 유행이었는데, 이 때 아마도 가장 많이 논거가 된 책이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갈라파고스)>였다.

프랭크의 이 책은 미국에서 2004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그 직후 있었던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의 당선을 설득력있게 예측하고 설명했다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 요지는 1)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중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2) 그 내용은 동부와 서부의 래디컬 엘리트들에 맞서 전통적인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 3) 그래서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노동자계층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게 되었다는 것 4) 그래서 민주당은 이제 새로운 전략으로 이들에게 문화적으로 다가갈 것을 제안한다, "민주당은 밀농사를 짓고, 총을 쏘고, 스페인어를 말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성경을 들고 다니는...."

그런데 바텔스는 이러한 프랭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1) 백인 노동계층은 민주당에 등을 돌리지 않았고 2) 백인 노동계층이 더 보수적으로 변화하지도 않았고 3) 도덕적 가치가 경제적 이슈보다 투표에서 더 중요해지지도 않았고 4) 종교적 유권자가 경제적 이슈에 무관심해지지도 않았다는 것.

요는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 중에서 어떤 것이 정치를 결정하는데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인데, 굳이 조야한 개념을 쓰자면 경제결정론과 문화결정론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두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그럴듯한가에 대한 논의는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다만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전자에 훨씬 더 끌린다.  나는 아마도 맑스의 분석에 거의 어떤 것도 동의하지 않지만,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경제적 이해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성향을 결정한다'라는 것만은 받아들인다. 뭐 쌍방향성도 있을 것이고, 그 결정이라는 것이 최종심급일 것이고 이런 저런 수식어가 필요하겠지만. 근데 사실 대부분의 한국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런 식의 맑스주의를 비웃을 가능성이 크다. 속류맑스주의 또는 스탈린식 맑스주의 운운.... 좌우간 나는 그렇다는 정도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두 주장에 대한 지지기반이 다르다는 것. 정치학자들은 2004년 출구조사를 '선거에서 도덕적 이슈가 가장 중요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을 비웃었지만, 수많은 언론인들과 논객들은 '노동자계급이 문화적으로 보수화되어 공화당이 승리했다'라는 프랭크류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에 대해서 내가 추측하는 것은 두가지.

첫째, 문학적인 측면에서 프랭크의 책은 바텔스의 책보다 훨씬 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프랭크는 훌륭한 르뽀르타쥬 작가고, 그의 글에는 흥미로운 예화가 있고, 그래서 그의 주장은 무미건조한 나열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들린다. 반면에 바텔스는 학술서적이 아닌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딱딱하고, 캔자스에서 만난 실제하는 한 백인의 육성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 상무부와 노동부의 통계, 수많은 여론조사 그리고 이것에 대한 분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번째로, 이건 사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통해서 추측하는 것인데, 아마도 그 가치투표를 주장하는 언론인과 논객들, 이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 나오고, 상당한 소득이 있거나 (이 소득을 포기하고 대신 명성을 택했거나) 한 그런 류이면서, 동시에 리버럴 성향이 강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아닐까? 즉 스스로가 역계급적 정치행위를 하고 있어서, 대중들이 역계급적 정치행위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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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바텔스의 책에 대한 인상평이었고, 책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다음에 하겠다(라고 여기에 선언(?)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즘은 다 잊어버려서....메모를 해두겠다는 의지이고, 선언을 통해 그 의지를 좀 못박는...).

책의 번역은 대체로 훌륭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조금 있는데, 첫째는 주석에 대한 것, 원문의 각주가 번역서에서는 후주로 되어있는데, 난 이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상당수의 주석을 누락시킨 것은 아쉽다. 번역을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건 별로 어려운 수고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누락시킨 것들은 대부분 출처를 밝히는 것들이어서 그냥 기계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들.

두번째로 크게 아쉬운 것은 원서에 있는 index를 통째로 생략한 것, 이 책은 한번 읽고 치우는 류의 책이 아닌데, 이것이 생략되어서 매우 불편하다. 나는 다행히 한 대학 도서관을 통해서 원서의 e-book에 접근할 수 있어 필요하면 원서에서 찾고 번역서에서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좌우간 불편. 그런데 이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이 번역서 주석 만들어 보신 분은 알겠지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서....(난 과거에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세권 전체의 인덱스를 만들었는데, 그 때 인덱스 만드는 수고비로 출판사에서 한학기 등록금 이상을 받았지만, 한 일에 비해 보수가 박했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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