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 토요일

광주의 트라우마는 멀리 흐른다.....

심리적 외상으로 번역되는 트라우마는 인간이 전쟁, 기근, 천재지변 등 외부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 장애와 그에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지칭하는 심리학적 용어인데, 이런 특이한 단어가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위험사회로 불리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육체적,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철희 교수의 광주항쟁시기 양민학살이 광주의 임산부들에게 초래한 트라우마의 효과에 대한 연구(Intergenerational Health Consequences of In Utero Exposure to Maternal Stress: Evidence from the 1980 Kwangju Uprising, Asia-Pacific Economic and Business History Conference 2013, Full Text PDF)는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광주항쟁은 다른 재앙과는 달리 직접적인 희생자를 제외하면 신체적 위해가 없었고, 그 기간 동안 음식이 부족하지 않아 영양결핍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후속된 전염병의 창궐도 없었다. 그래서 대다수 광주시민이 겪은 외상은 심리적 충격이어서 트라우마의 정의에 잘 부합한다.

이교수는 임산부들이 트라우마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과 이 영향이 태아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것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항쟁시기 광주의 임산부들이 나은 신생아의 건강상태를 비교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신생아의 출생시점 몸무게는 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상태는 물론이고, 학력, 소득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수준의 데이터는 19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더 나아가, “광주항쟁기 임산부들의 트라우마가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태아가 출생, 성장해서 낳은 자식들, 그러니까 항쟁기 임산부들의 손주세대에까지 악영향을 미쳤을까”라는 문제로 접근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자료들은 이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1980년 6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광주항쟁시기에 부모의 태내에 있었을 것이다. 차트에서 보듯이 이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 나이를 먹어서 광주에서 낳은 자식들을 전국평균과 비교해 보면, 광주지역의 신생아(트라우마에 노출되었던 임산부의 손주)들은 전국평균에 비해, 몸무게가 평균 56그램이 적게 나갔고, 저체중아일 확률도 2.5% 높았다. 이것은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었다. 또 임신기간도 짧았고, 조산아일 확률도 높았다. 다만 임신기간에 관한 통계는 적극적인 해석을 부여할 만큼 효과가 유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산모의 태어난 시기가 이 기간 이외인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Click the image for bigger size. Source: Lee (2013)

물론 이러한 단순 비교만으로는 트라우마의 효과인지, 아니면 여타 다른 효과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고려할 수 있는 다른 요소들, 아이의 성별과 몇 번째 아이인지에 관한 보건학적 요인들과 산모의 학력, 소득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다 콘트롤해서 분석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효과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보건학 전문가들이 평가해 주실 것이고, 다만 이렇게 수대에 걸쳐 효과과 관찰된다는 것만으로도 나로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여러가지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데이터의 제한때문에 1) 2000년, 2002년 두해만 대상이었다는 것, 2) 산모의 출생지 정보를 알 수 없어서 2000년과 2002년에 광주에서 출산을 한 산모의 출생지를 광주로 추정한 것 두가지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세심하게 봐야할 듯. 이 외에도 트라우마가 끼친 다른 영향들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다만, 저자가 한국전쟁이 태아에 미친 장기적 영향을 보건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까지 분석했던 것(In utero exposure to the Korean War and its long-term effects on socioeconomic and health outcomes, Journal of Health Economics, Full Text Gated)에 비추어 광주 트라우마 연구도 더 발절하리라 기대한다.

오늘은 518이다. 비록 항쟁의 상처는 옅어진 듯 보이지만, 그 심리적 고통의 흔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길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느끼는 아픔은 사실 트라우마든 뭐든 어떤 단어로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드라이한 분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518을 소심하게 보내며, 기억하기 위해 블로그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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