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역계급투표에 대한 메모

1. 지난 대선의 추억.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당시에 SNS에서 광범위하게 돌아다디던 표가 하나 있었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 시달리던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했던 이들이 이 표를 돌리면서 하고 싶었던 내심은 뭐 이런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는 못배우고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그런 부류들이다. 야당후보야말로 이들 99%를 위한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이들은 1%를 위하는 후보를 지지하였다. 황당하다. 그리고 당해도 싸다. $&%(&()^&^))"

물론 건강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뭐 멘붕 상태에서의 일이니 이해하고....









2. Red State and Blue State

미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다. 대선이나 총선 결과를 보면 옆의 그림처럼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와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가 지역적으로 뚜렷이 갈린다.

양 해안가의 소득수준이 높은 주들이 주로 민주당성향이 강하고 (blue state), 중간 부분의 소위 미국의 심장(heartland)으로 불리우는 소득수준이 낮은 주들이 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red state).



3.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미국 얘기를 좀 더하자. 미국의 이러한 역계급투표에 대한 수많은 분석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저널리스트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가 캔사스를 둘러보고 쓴 르포르타쥬 형식의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2004)이다.

이 책은 출판 직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38주나 올랐다. 뉴욕타임즈 컬러미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가 "올해 최고의 정치학 책"으로 추천했고 수많은 신문잡지에 센세이션이라고 할 만큼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한국에는 대선 직전인 2012년 봄에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서 꽤 화제가 되었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남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이 종교의 영향을 받아 경제적 이슈보다 동성애나 낙태와 같은 문화적 이슈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책은 문학적(?) 성취가 풍부한 책이라, 이렇게 핵심내용 위주로 요약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디테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꽤 여럿있다. 이것은 아쉽지만 다음에 별로 기회에 정리할 계획이다.)


4. What's the Matter with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프랭크에 대한 비판의 선봉은 밴더빌트 대학의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Larry M. Bartels)였다.

그는 2005년에 "캔자스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What's the matter with What's the Matter with Kansas?"라는 제목으로 프랭크의 핵심메시지 전체를 비판하는 글을 미국정치학회 연례총회에서 발표하였다.

후에 프랭크가 반론을 펴고, 그 후에 최종적으로 같은 제목의 논문으로 업데이트해서 2006년 Quarterly Journal of Political Science에 게재하였다.

그리고 Unequal Democracy: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 (2008)의 제3장에 확장되어 실렸는데, 이 책도 2012년 봄 한국에 <불평등 민주주의 - 자유에 가려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이하에서 이를 좀 더 살펴보겠다. (옮겨진 차트와 표는 모두 영어판에서 가져온 것이다.)


4-1. 백인 노동자는 민주당을 버렸는가?


첫번째 그림은 백인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학력별 대선 후보 상대지지율의 추이이다. 고졸이하 유권자는 대졸이상 유권자에 비해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높았는데 격차가 점차 줄어들다가 혼란된 양상 또는 미약하나마 역전되는 것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것을 백인노동자가 민주당을 버렸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우선 격차 역전이 발생한 것은 고졸이하 유권자의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하락해서가 아니라, 대졸이상 유권자의 지지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0년대의 대졸 비율과 2000년대의 대졸비율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학력을 계급구분의 기준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두번째 그림은 학력이 아닌, 소득기준으로 계급을 구분해서 살펴본 것이다. 70년대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약간 높은 정도였지만, 70년대 이후에는 이 격차가 뚜렸해졌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지지율은 절대적으로도 하락하지 않았다.

세번째 그림은 대선후보 지지율이 아닌, 매년 수행된 정당지지율로 본 것인데, 이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시기에 저소득층의 민주당지지율이 고소득층에 비해 일관되게 높았으며, 추세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이었다.

따라서 소득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어 보면 노동자계급이 민주당을 버렸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4-2. 남부의 백인 노동자는 민주당을 버렸는가?


그림은 저소득 백인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지역별 민주당 상대지지율의 추이이다. 비남부지역의 경우 지지율 변화가 발견되지 않지만, 남부의 경우 지지율 하락이 뚜렸하다. 그렇다면 남부에 국한시켜 보면 노동자계급은 민주당을 버린 것일까?

남부지역 저소득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했지만,  비남부지역 밑으로 간 것이 아니고 80년대에 이르러 비남부지역과 차별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80년대 이전에 남부의 저소득층이 비남부의 저소득층에 비해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던 것이 예외적인 것 아니었을까?

위쪽의 표를 보면 남부 백인의 경우 민주당 상대지지율이 급락했는데 (-65.7), 계층별로 보면 고소득층 (-83.3), 중소득층 (-75.7), 저소득층(-42.8)로 소득이 낮을수록 하락정도가 낮았다. 아래쪽 표는 정당지지율이 아니라 대선 후보 지지율로 본 것인데, 비슷한 양상이다.

이렇게 남부의 백인 전체가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에 대해서, 바텔스는 50년대에 남북전쟁과 노예제의 영향으로 남부 백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했던 것이 정상화되는 것으로 추측한다.


4-3. 경제적 이슈와 문화적 이슈



두 그림은 백인을 대상으로 소득계층별로 '일자리 마련과 소득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할' (경제적 이슈, 첫번째 그림)과 '낙태할수 있는 권리'(문화적 이슈, 두번째 그림)에 대한 시기별 지지도 변화를 그린 것이다.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진보적 입장이 일관되게 높았고, 문화적 이슈는 반대였다. 그리고 저소득층은 1990년대 중반까지 문화적 이슈에 대해서 진보화되다가 그 이후 보수화되었지만, 이것이 저소득층에 고유한 것도 아니고 하락폭도 상승폭에 비해 작아서 7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중반을 비교해보면 저소득층에 한정해도 어느정도는 진보적 입장이 강해졌다.

오른쪽 표의 윗부분은 1984~2004년기간까지의 각 이슈의 중요도 변화를 측정한 것이고, 아래 절반은 2004년 현재의 각 이슈별 중요도를 측정한 것이다. 낙태는 이 기간동안 중요도가 가장 커진 영역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고소득층에서 일어난 일이지 저소득층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고소득층 +0.64, 중소득층 +0.44, 저소득층 +0.03).

그리고 낙태는 중요도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모든 계층에서 2004년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정부지출(및 여타 경제적 인 것들)이었다.


4-4. 종교의 영향?



그렇다면 혹시 종교인들로 국한하면 문화적 이슈가 경제적 이슈를 압도할까? 그림에서 보면 백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매주 교회에 가는 집단과 한달에 한번 이하 교회를 가는 집단으로 구분해서 민주당 대선후보 상대적 지지율 변화를 그린 것인데, 모든 시기에 교회에 열심히 가는 사람들의 민주당 지지율이 낮았고, 특히 90년대부터는 격차가 커졌다.

표는 앞의 4-3에서 등장했던 표와 유사한 것인데, 이번에는 소득계층별이 아니라 교회가는 빈도별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1984~2004 기간에 낙태 이슈는 중요도가 가장 커진 이슈이고, 특히 매우 독실한 그룹(Highly Religious)에서 가장 뚜렸하였다 (+0.40). 하지만 모든 집단에서 여전히 경제적 이슈가 더 중요하였고, 이것은 독실한 그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5. 프랭크 v. 바텔스

요약하면 바텔스는 프랭크와는 달리, 백인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떠난 것도 아니고 (남부 백인 노동자로 국한해도 그렇고), 문화적 이슈가 경제적 이슈를 압도한 것도 아니고 (종교인으로 국한해도 그렇고), 뭐 그렇다는 것.

프랭크진영과 바텔스진영은 뚜렷이 구분되었는데, 흥미롭게도 프랭크진영은 주로 언론인들로, 바텔스진영은 주로 정치학자들로 구분되었다. 진지한 정치학 논문에서 프랭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뉴욕타임즈나 애틀랜틱 먼쓸리 같은 곳에 기고를 하는 저널리스트들이 '고학력, 고소득, 낙태등 문화적으로 민감한' 부류여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실과 다르게) 저소득층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5.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미국의 저소득주의 공화당 지지경향과 고소득주의 민주당 지지경향을 역계급투표의 증거로 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콜럼비아 대학의 통계학자 앤드류 겔만(Andrew Gelman)이 대표적이다. 이것을 집대성하여 출판한 것이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Why Amreicans Vote the Way They Do (2009)인데, 아쉽게도 이책은 번역되어 있지 않다 (내가 몇몇 사회과학 출판사에 번역하라고 찔러봤는데 썰렁).

이책에는 2008년 대선 분석까지만 실려있어서, 차트는 2012년 대선까지 포함하여 분석한 The Forum 발표문 "Red State/Blue State Divisions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에서 가져왔다.

첫번째 그림의 가로축은 주별 1인당소득이고 세로축은 2012년 공화당 후보였던 롬니의 주별 득표율이다. 점선은 주별 분포의 회귀선인데 우하향한다. 그러니까 1인당 소득이 높은 주일수록 롬니의 득표율은 높아진다.

두번째 그림은 미국 전체로 보아 각 소득계층별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다. 2000년 이후 네차레에 걸친 대선에서 모두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공화당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다 (우상향하는 선들).

세번째 그림을 보면  주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소득계층별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을 보아도 대부분의 주에서 소득이 높은 계층의 공화당 후보 지지가 컸다. 예컨데 대표적인 레드 스테이트인 미시시피(MS)도, 블루 스테이트인 코네티컷(CT)도 그리고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OH)도 다 마찬가지로 우상향. 다만 저소득층에서 봐도 미시시피가 오하이오보다, 오하이오가 코네티컷보다 더 공화당 지지율이 높았을 뿐이다. 중소득층, 고소득층 다 마찬가지.


6. 한국의 역계급투표 (1)
이제 한국 데이터를 보자. 왼쪽 그림은 서울대 강원택 교수가 2013년 <한국정당학회보>에 발표한 "한국 선거에서의 계급 배반 투표와 사회 계층"의 자료이고, 오른쪽 그림은 한겨레의 한귀영 박사가 2013년 <동향과전망>에 발표한 "2012년 대선,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정당을 지지했는가"의 자료이다.


우선 2012년의 대선의 경우 강원택의 자료로도 한귀영의 자료로도 모두 중소득자와 고소득자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저소득자의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뚜렷이 높았다. 또 후보가 난립했던 2007년의 경우, 보수후보군(이명박+이회창)과 진보후보군(정동영+문국현+권영길)으로 구분해서 보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보수후보군의 지지율은 낮아졌다. 끝으로 2002년의 경우에도 저소득층의 경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뚜렷이 높았다.

결국 요약하면,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세차례에 걸친 대선에서 계급배반투표의 양태가 나타났다(적어도 저소득층과 중소득 층 사이의 구간에서는).


7. 한국의 역계급투표 (2)


이것은 한신대 전병유교수와 중앙대 신진욱 교수가 2014년 <동향과전망>에 발표한 "저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에서 가져온 그림이다.

첫번째 그림 연도별 정당지지도인데, 2008년 이후에는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낮았다. 두번째 그림은 대선시기 유권자 조사인데 이것은 앞의 강원택, 한귀영의 자료와 마찬가지로 2002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다. 세번째 그림은 총선 유권자 조사인데 이것은 앞의 그림들과 패턴이 다르지만 2012년 마지막 총선에서는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후보 지지율이 낮았다.

요약하면 이 자료로 보더라도 (최소한 최근에는) 역계급투표가 발견된다.


8. 한국의 연령별 역(?)계급투표 (1)


이 그림들은 연령별로 구분해서 소득별 지지율을 정리한 것이다. 오른쪽 것은 한귀영박사의 자료인데,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두그룹으로 나눠서 2012년 대선을 보면 흥미롭게도 40대 이하에서는 약하지만 소득이 높아질수록 박근혜후보 지지율이 높아지는 계급투표 현상이 발견된다. 50대 이상 그룹에서는 지지율이 소득수준과 무관해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강원택의 자료인데, 위의 것은 2012년 대선의 경우 지지율은 50대이하 그룹에 대해서 보면 소득수준과 무관해 보이고, 2007년 대선의 경우에는 약한 역계급투표성향이 발견된다. (강원택의 자료를 40대 이하그룹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여하튼 연령별로 구분하면 최소한 역계급투표현상은 사라지고, 미약하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계급투표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기미가 있다.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볼 때와, 연령그룹별로 구분해서 볼 때, 계층별 지지도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보수후보 지지율이 높은 노인세대가 압도적으로 보수후보 지지율이 높기 때문이다. 


9. 한국의 연령별 역(?)계급투표 (2)


너무 길어졌는데 전병유-신진욱의 자료 하나만 더 보자. 첫번째 표는 민주진보정당 (보수정당 뺀 나머지 다)에 대한 지지율을 소득계층별로 회귀분석한 것인데, 모형1에서 저소득층 변수의 회귀계수가 -0.407로 상당한 역계급투표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모형2에서는 추가로 연령변수를 포함시켰는데, 이렇게 연령효과를 통제하면 저소득측변수의 회귀계수는 -0.010으로 역계급투표현상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번째 표는 앞의 표와 거의 유사한데 소득으로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각 유권자들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소속계층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할 겨우 모형1에서 하위계층변수의 회귀계수는 -0.-028로 역계급투표현상이 매우 미미하며, 모형2에서처럼 연령을 통제하면 하위계층변수의 회귀계수가 0.323으로 오히려 계급투표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발견되는 역계급투표현상은 연령효과 및 자산효과 (노인세대는 대표적으로 소득에 비해 자산이 많은 계층)의 중첩이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10. 마무리....

얼마전에 동료들끼리 모임에서 위의 내용과 약간의 내용을 더해서 발표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어서, 간단하게 블로그에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대충 이 정도에서 장하성 교수의 <한국자본주의>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 한국에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 '투표'가 '돈'을 이겨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할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계급투표'와 '기억투표'를 한다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있다."

갈길이 멀다....



PS> 조만간 기회가 있으면 관련된 주제를 좀 더 정리해 볼 생각인데, 그 리스트만 여기에 남기면,

1) 노인들의 압도적 보수정당 지지의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반공 경험, 빈곤의 경험?
2) (역)계급투표 현상의 미래예측을 위해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도 고려해야 함.
3) 문화적측면에서 태도의 문제는 경제적 요인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을텐데, 조너선 하이트(Johnathan Haidt)의 <바른 마음 Righteous Mind>과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없는 진보> 정리
4) 미디어 효과 (미국의 Fox News Effect, 한국의 종편 효과)
5) 연령별, 계층별 투표율 격차...
6) 금권정치 효과
7) 단기평가 효과

등등.....

2015년 1월 31일 토요일

독후감: 빚으로 지은 집 House of Debt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가 쓴 <빚으로 지은 집 House of Debt> (박기영 옮김, 2014, 열린책들)에 대한 메모. 무척이나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인데,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릴 것 같아, 정리를 해두려고 한다.


1. 우선 이 책이 내 생각과 매우 달랐던 것은, 주택시장 또는 금융시장의 특정한 측면을 다룬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을 완전히 넘어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017년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대한 총체적 규명이고, 그 핵심을 가계의 주택담보 대출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러니까 '주택담보대출설'을 채택한 공황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이책은 보면서 현대 거시경제학 정말 만만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사용하는 데이터가 규모든 범위든 엄청나다. 과거엔 거시에서는 몇가지 변수들 (통화량, 실업율, GDP, 환율, 소비, 투자 등등)에 대한 집계변수들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책에 소개된 관련 연구들을 보면, 특정 산업의 지역별 고용, 법원의 판결DB, 심지어 지역별로 도시의 팽창가능성을 보기 위한 위성사진자료까지, 상상도 못해던 자료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분석들도 기발하다 생각이 드는 것들이 끊없이 나온다.

3. 핵심 내용은 저자들이 "레버드 로스 프레임워크"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단순히 주택가격의 급등, 부채의 증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자산-부채 비율이 뚜렷이 차이가 나고, 가난한 자들이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한 주택매입을 한 것이 근원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들의 주장을 읽다보면, 내가 관련 지식이 부족해서이겠으나, 어디 하나 허술한데가 없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이 이론틀이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나 주택시장 분석에 들어맞느냐라고 한다면, 많은 시사점은 주겠으나, 중요 지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처한 현실이 너무 달라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해야할 것 같다. 계층별 레버리지 비율 문제가 그것인데, 이건 아래에서 따로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4. 정책 처방에 있어서도, 내 성격상의 소심함 때문에, 저자들이 제안하는 것을 다 확신을 갖고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대출에 equity 성격을 가미하는 것이나,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이 원할하게 작동하도록 개입하는 것이나, 여러 정책 제안들은 한국에 맞게 잘 설계되면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훌륭한 원천이다.

5. 책 몇권 읽지도 않은 처지에 함부로 말할 것은 아니겠지만, 이 책을 통하여 비로서 대침체기에 대한 총체적 상을 이해하게 되었달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런 것이 있었는데, 우리는 97년 외환위기에 대해 현실적합성과 과학적 엄밀성을 갖춘 그런 설명이 있나 하는 생각. 현대 한국경제 발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일텐데, 자신있게 '이책' 하면서 추천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6. 번역, 너무나 훌륭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동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게 만들고, 원서를 찾아봐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대목이 없었다. 역자가 저자 중 한명의 제자이고, 내용에 대해 정통했기 때문일텐데, 전문성 말고 문장 자체도 매우 유려하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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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필기 하듯이 메모한 것인데,독자 또는 방문자를 위해 쓴 것은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정리한 것이라 좀 불친절할 것같다. 특별히 관심 있는 분만 보시면 될 듯하다.

정리는 이 책에 수록된 차트를 중심으로 할 것인데, 이것은 영어판에서 가져왔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고, 한국어판은 종이책으로, 영어판은 Ebook으로 갖고 있어서, 편리함이 제일 중요한 이유다 (책 스캔하거나 사진찍는게 귀찮아서). 다만 차트의 페이지는 한국어판 페이지를 달아 두겠다.


1. 가계부채 급등
그림 1.1 미국의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 p.17.
  • 대침체기 직전인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가계부채총액은 두배로 늘었고, 가계소득대비 부채비율도 140%에서 210%로 급증하였다.
  • 미국에서 이에 비견할 만한 사례는 1920-29년 사이에 할부금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가 있다.









1.1 한국의 가계부채 추이
  • 한국도 가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997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최근 160%까지 이르렀다.
  • 자료는 김현정 외 (2013),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 및 지속가능성 분석>, BOK 경제리뷰 (Download PDF).











2. 계층별 가계 자산/부채 구성
그림 2.1 2007년 순자산 기준 5분위별
주택소유자의 레버리지 비율, p.38.
  • 총자산을 금융자산, 홈에쿼티, 부채로 구분하여, 순자산 5분위별로 구성을 표시. (책에서는 금융자산 Financial Wealth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내 생각에 아마도 금융순자산이라고 해야할 듯)
  • 예컨데 자산이 부동산 $1,000, 금융자산(주식과 채권 등) $500이고 부동산담보 부채 (모기지 등)가 $800, 부동산과 무관한 부채가 $100이라고 하면 총자산은 $1,500, 총부채는 $900이다. 홈에쿼티는 부동산자산에서 부동산담보 부채를 차감한 것이니 $200(=1,000-800)로 총자산 $1,500은 총부채  $900, 홈에쿼티 $200 및 금융순자산 $400(=500-100)으로 구성된다.
  • 자산 및 부채 구성이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유할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홈에쿼티 비중보다 높고, 가난할수록 총자산에서 부채로 조달한 비율이 높다 (높은 레버리지).

2.1 한국의 계층별 가계 자산/부채 구성

  1) 한국의 경우 이것을 <가계금융복지조사 2013> 자료로 재구성 (Download XLS).
  • 홈에쿼티 = 실물자산 (부동산 + 자동차등 기타실물자산) - 부둥산부채 (담보대출 + 임대보증금)
  • 금융순자산 = 통상의 금융자산 + 거주지 전월세보증금 - 각종신용대출 (신용대출 + 신용카드관련대출 + 외상및할부 미상환액 + 곗탄후불입금액)
  • 이렇게 계산한 결과가 아래의 표. 
  • 각 범주가 미국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예컨데 자동차 등을 금융자산에 넣어야 할지, 홈에쿼티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아예 빼야 할지 등. 다만 금액이 그닥 크지 않아 어떻게 하든 대차는 없을 듯.
  • 또 하나 언급해 둘 것은, 미국의 경우 주택소유자 중 순자산5분위로 표시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전체가구에 대한 순자산5분위로 표시한 것
  2) 이것을 정리한 것이 아래의 차트
  •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은, 전체가구중 1분위에 속하는 가계의 경우 홈에쿼티가 마이너스라는 것. 약간 믿어지지 않지만, 좌우간 통계상으로는 그렇다.
  • 레버리지에 있어서는, 부자일수록 낮지만, 2분위부터 5분위까지 차이가 크지 않다. 그리고 아마도1분위의 다수가 주택비보유자라고 한다면, 주택보유자만으로 재구성했을 때, 1~5분의 전체에서 분위별 레버리지 차이가 크지 않을 듯.
  • 한국의 경우 부자일수록 부동산의 비율이 커지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것.
  • 이런 차이가 있어서 만약 집값이 급락할 경우 계층별로 가계의 순자산이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대침체기 미국과는 뚜렷하게 다를 듯하다.

3. 주택가격 하락의 효과
그림 2.2 순자산의 변화, p.43.
  • 부자와 빈자 사이에 부동산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고, 레버리지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하락의 효과는 계층별로 완전히 상이하게 나타난다.
  • 하위20%의 경우 금융순자산 1, 홈에쿼티 4, 부채 20 정도의 비율인데, 주택자산가격이 24에서 30% 하락하면, 17이 되어 부채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주택은 깡통이 되고, 자산은 금융순자산 1만 남게 되어. 순자산은 80% 하락한 것이 된다 (51).
  • 반면 상위20%의 경우 대략 금융순자산 20, 홈에쿼티 4, 부채 1의 비율인데, 이 경우 주택자산가격이 5에서 30% 하락하면 홈에쿼티는 1.5로 줄어든다. 그러면 순자산총액은 21.5가되어 10%정도 순자산 하락한 것이 된다 (2421.5).
  • 그림은 이 효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주택가격하락 이후, 하위20%는 순자산을 거의 100% 날린 반면, 중위20%는 대략 30%정도, 상위20%는 대략 10%정도 자산축소를 경험하였다.
  • 이것은 Corporate Finance의 기초를 생각해 보면 자명한 것인데, Debt Financing을 하면 레버리지가 커지고, 레버리지가 커지면 투자자산가격 상승시에 수익률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하락시에는 수익률이 급락한다.
  • 개인적으로 약간 의아한 것은 그림에서 주택가격 상승시에 높은 레버리지에도 불구하고, 하위20%의 자산상승이 다른 계층에 비해 뚜렷이 빠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효과 (금융자산의 상승 및 부유층의 소득의 대규모 자산축적)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4. 압류와 투매
그림 2.3 압류와 주택 가격, p.49.
  • 담보로 잡힌 주택의 가격이 부채보다도 낮을 경우, 이 부채를 지고 그 주택에서 계속 살든가, 아니면 압류를 선택하고 집을 떠나야 함. (한국은 그렇지 않은데 이것은 뒤에 그리스 편에서)
  • 이렇게 압류된 주택은 금융기관에 의해 투매되는데, 투매는 집값을 더 떨어뜨리고, 그러면 깡통주택은 추가로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발생.
  • 미국에서는 금융기관이 압류를 하면서, 거주자를 강제퇴거를 시킬 때 법원의 허락이 필요한 주와 그렇지 않은 주가 있음. 당연히 후자의 주에서 압류가 더 광범위할 것이고, 추가적인 주택가격하락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그 결과가 그림에 표시되어 있는데, 사법적 압류절차가 필요없는 주에서 주택가격은 더 가파르게 하락하였다. 

5. 소비주도 불황
그림 3.1 무엇이 불황을 이끌었는가?
국내 총생산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p.56.
  • 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그림처럼 실증적으로 부정된다.
  • 우선 소비와 주택투자는 모두 리먼 파산 이전에 시작되었다.
  • 그리고 은행위기가 핵심이라면, 가계수요보다 기업수요의 위축이 중요했을 텐데, 리먼 파산 직후(2008년 3,4분기) 최악의 시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소비급락이었다.
  • 2009년 1분기 이후에는, 비주택투자 급락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것은 앞의 소비수요 부족에 대한 기업의 반응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 순자산 가치와 소비
    그림 3.2 순자산 대폭 감소 지역과 소폭 감소
    지역의 소비 지출 변화, p.59.
    • 소비부족이 불황을 이끌었다면, 왜 소비는 급락했는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 순자산하락은 집값하락과 높은부채의 결합 (레버리지)인데, 순자산감소가 큰 지역일수록 소비지출이 크게 하락했다는 점에서 순자사하락이 소비급락의 주요인으로 생각된다.

    7. 부채와 소비
    그림 3.3 주택 레버리지 비율에 따른
    한계 소비 성향, p.67.
    • 주택가격하락은 자산효과 때문에 소비를 감소시키는데, 이 효과는 동일한 주택을 보유하고 있고, 동일하게 가격이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레버리지에 따라 소비감소효과가 다르다.
    • 채무가구는 높은 레버리지 때문에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한 순자산감소효과가 크고, 채무를 지지않은 가구는 순자산감소효과가 작다.
    • 그림은 이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데, 낮은 레버리지비율의 가구에 비해 높은 레버리지비율 가구는 한계소비성향이 3배에 이른다.
    • 특히 흥미로운 것이, 2000년대 초반 기술주버블이 터졌을 때 주식가격하락에 따른 가계의 자산감소가 대략 5조달러 정도였는데, 이것은 대침체기의 주택가격하락에 따른 가계 자산감소와 유사한 것이었다. 
    • 하지만 전자는 레버리지가 거의 없는 부자들의 자산감소였기 때문에 소비감소효과가 거의 없었고, 후자는 레버리지가 큰 빈자들의 자산감소였기 때문에, 소비감소효과가 지대하였다.

    8. Levered Loss Framework
    • 경제의 구성요소를 순자산은 적고 레버리지가 큰 차입자와 순자산은 많고 레버리지가 낮은 저축자로 구분.
    • 주택가격하락시에 저축자는 차입자 보유 주택에 대해 우선청구권을 갖고, 차입자는 후순위 청구권을 갖는다.
    • 주택가격하락 소비에 미치는 효과는 다음 두가지 때문에 증폭된다. 
      • 주택가격 하락시에 소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계층인 차입자에게 손실이 집중된다. 
      • 압류는 집값 하락을 더욱 증폭시킨다.
    • 국제적 차원에서 보면, 독일을 저축자로 스페인을 차입자로 볼 수 있다.
    • 소비급락시에 조정메카니즘은 마찰에 의해 원할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 이자율 하락으로 투자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데, 현실에서 명목이자율의 하락은 제로 금리 하한에 의해 효과가 제한된다.
      • 상품가격 하락으로 소비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데, 현실에서 임금하락으로 상품가격하락을 발생시키고, 이것은 추가적인 수요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debt deflation).
      • 노동시장의 숙련의 mismatch와 지역적 이동의 곤란 역시 마찰의 요인이다.

    9. 실업
    그림 5.1 대침체 시기 고용 감소, p.98.
    • 집값이 폭락한 지역과 소폭 하락한 지역으로 나누고, 일자리도 지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식당종업원, 가게점원, 자동차딜러)와 전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생산자)로 나누자. 앞의 재화를 비교역재로, 뒤의 재화를 교역재라고 부르기로 한다.
    • 비교역재 일자리의 경우 집값이 폭락한 지역에서 대폭 하락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의 경우 완만히 하락하지만, 교역재의 경우 전국적으로 일자리가 하락하였다.
    • 2007년3월~2009년3월 사이에 레버드로스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의 숫자는 4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
    • 왜 시장은 실업을 해소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경제학자가 합의할 수 있는 완벽한 분석틀은 아직 없다. 다만 레버드 로스가 크게 발생하면 소비지출의 급감과 높은 실업률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런 충격을 예방하여야 한다는 것.

      10. 펀더멘털과 대출증가
      그림 6.1 신용 점수가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률 
      • 펀더멘털이 강해서, 대출이 늘고 집값이 상승했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2-2005년 사이의 모기지 대출 증가율과 소득 증가율 사이의 상관계수가 마이너스였다.
      • 그림에서 보듯 신용도가 낮은 지역의 집값이 더 크게 증가했고, 버블 붕괴 이후 더 크게 하락했다.










      11. 인과의 방향. 주택시장 거품발생 → 대출증가 vs. 대출증가 → 주택시장 거품발생
      그림 6.2 주택 공급이 탄력적인 도시의                      그림 6.3 주택 공급이 비탄력적인 도시의
      모기지 대출과 주택가격, p.123.                             모기지 대출과 주택가격, p.124.









      • 인과의 방향을 밝히기 위해, 주택공급이 용이한 평야지형이고 호수나 바다로 막히지 않은 지역을 주태공급이 탄력적 도시하 하고, 반대로 언덕이나 바다로 가로막혀 자연스럽게 도시 확장이 어려운 지역을 비탄력적 도시라 하자.
      • 주택시장거품이 신용팽창을 일으켰다면, 한계대출자에 대한 대출 증가는 거품이 발생한 지역에서만 관찰되어야 한다. 왼편 그림에서 보듯, 탄력적 도시에서는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이든 높은 지역이든 비슷하게 완만한 주택상승을 보였지만 모기지 대출은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에서 급등했다. 
      • 반면 비탄력적 도시에서도 모기지대출은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에서 급등했다. 그리고 집값 역시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에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 모든 지역에서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에 대출이 급등했고, 주택공급이 비탄력적인 도시의 경우에는 지리적 제약으로 집값이 급등했다. 
      • 따라서 대출증가가 주택가격 상승을 가져온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12. 기존 주택 보유자의 대출
      그림 6.4 주택 공급의 탄력성에 따른
      기존 주택 소유자의 대출, p.127.
      • 2002년 이후 기존 주택 보유자의 대출 역시 대폭 증가하였는데, 특히 비탄력적인 도시에서 증가가 두드러졌다.
      • 또한 신용점수가 높은 주택 소유자들은 이 시기 집값 상승에 따른 대출 증가가 크지 않았고, 신용점수가 낮은 주택 소유자들은 크게 대출을 늘렸다.
      • 이렇게 늘어난 대출의 50% 이상은 주택 보수 및 개조와 소비지출로 사용되었다.
      • 기존 주택보유자들이 소비지출을 늘이기 위해 대출을 늘인 이유는 무엇일까? 자산효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주택가격이 인상된 만큼, 주택소비의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 합리적 경제주체를 가정한다면 차입제약의 완화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금액이 너무 커서 이보다는 하이퍼볼릭 디스카운트가 더 그럴 듯.

      13. 금융시장에서 있었던 일들
      •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아시아 국가가 배운 교훈은,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달러표시 대출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신흥국 중앙은행은 대규모로 달러화 표시 자산을 사들였고,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그 규모는 7배에 이르렀다.
      • 미국 내에서는 정부지원기관들이 MBS를 발행하여, 모기지 대출을 사들였고, 이것은 pooling을 통해 지역단위의 충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정부기관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적격모기지대출만을 사용해서 MBS를 발행했다.
      • 신흥국의 대규모 달러화자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민간기관도 MBS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적격자산까지도 포함시켰고 선순위 트랜치와 후순위 트랜치를 구분하여 선순위 트랜치를 안전하게 만들었다.
      • 이 증권화 과정에서 두가지 체계적인 오류가 발생했는데, 첫째는 투자자들이 모기지 채무불이행 위험을 과소평가했고, 두번째는 풀링에 들어오는 여러 모기지들의 채무불이행 사이의 상관관계를 낮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 또한 최초 모기지 발행기관은 증권화를 통해 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리해서 모기지 대출을 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허위보고 등 광범위한 사기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결과가 있다.
      • 신용평가 회사들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 거품은 사람들이 낙관적(irrational exuberance)이거나, 향후 더 비싼 가격에 이 자산을 사줄 더 멍청한 바보(greater fool)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경우 존재.
      • 비합리적 낙관주의자들이 계속해서 빚을 낼 수 없게 된다면, 거품은 제어된다. 반면 거품이 커지는 상황에서 비합리적 낙관주의자들이 계속 돈을 빌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합리적 투기자들도 시장에 들어온다.
      • (간과된 위험) 투자자들이 발생 가능한 어떤 사건드을 체계적으로 무시한다면, 금융혁신은 은행으로 하여금 위험에 민감하지만 안전해 보이는 증권을 투자자들에게 쉽게 팔아넘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14. 은행대출 중심주의
      그림 9.1 은행 부문 불안 요인과 은행 대출, p.189.
      • 전미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장 큰 고충"에 대하 설문조사에 의하면, <판매부진>, <규제와 세금>, <자금 조달과 이자 비용> 세가지 중, 세번째 요인은 5%를 넘은 적이 없다. 첫번째 요인은 2007년 10%에서 2009년 35%로 급증.
      • 그림에서 보면, 신용경색(기업어음과 국채수익률 격차)은 2008년 가을 급등했으나, 곧 가라앉았다. 하지만 기업대출은 2009년 이후 회복되지 않고 급락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침체기 주택소유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은행의 채권자들과 주주를 구제하는 정책을 폈다. 이것은 은행 대출경로가 막히는 것이 위기의 가장 중요한 도전으로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버냉키 등 정책입안자들이 프리드만-슈워츠를 통해 대공황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15. 부채탕감
      • 모기지 재조정은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나, 시장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았다. 
      • 미시적 측면
        • 증권화때문에 채권자는 은행이 아닌 MBS관리 기관과 협상을 해야 했다.
        • 증권화 계약의 다수는 재협상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 신탁증서법(1939)은 MBS 계약수정시 해당 증권 보유자 전원의 동의를 필요로한다고 규정하였다.
        • 관리기관은 재협상과 같은 유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채무자들도 전략적 채무불이행을 선택할 것을 우려
        • 이상의 이유로 증권화된 모기지와 그렇지 않은 모기지의 경우 후자가 재협상 비율이 높았다.
      • 거시적 측면
        • 적극적 모기지 원금 탕감이 연방주택금융청과 같은 정부지원기관의 대출금 회수에는 해가 될지 몰라도, 국가전체의 이익이 되는 측면은 무시되었다.
        • 탕감을 통해 채권자와 채무자에게 손실을 분담시키면, 채무자의 높은 한계소비성향 때문에 소비를 진작시킨다.
      • 과거에는 적극적 탕감 정책이 존재했다
        • 1910년대 말, 공황기에 재무부장관 크로포드가 제안한 적극적 부채탕감 정책은 쉽게 의회를 통과
        • 대공황시에는 광범위한 채무조정을 위해 ,주택소유자대부공사가 설립되었고, 금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권리가 의회에서 삭제되었고, 대법원이 인정하였다. 미국 GDP에 맞먹는 채무구제프로그램이 시행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해 주식과 채권이 모두 상승 (채무자와 채권자가 모두 윈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탕감을 위한 두가지 제안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 모기지관리기관을 재협상에서 제외하고, 정부에서 임명한 트러스티에게 재협상 권한 부여
        • 파산 법원 판사에게 모기지 채무 재조정 권한 허용 (그램다운).
      • 오바마 역시 대선공약으로 크램다운을 내세웠으나, 취임후 추진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나중에 이를 후회.
      • 파산법원 판사의 성향을 이용해서 부채탕감이 수입과 고용증가를 일으킨다는 (상관이 아닌 인과) 연구도 존재.
      • 주택보유자들의 도덕적 해이?
        • 주택소유자들은 집값 버블을 알면서도 채권자를 이용한 주도면밀한 사람들 아니다.
        • 집값하락은 주택소유자들의 통제 밖에 있다. 총체적 충격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공평한 손실분담의 문제
      •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어떤 방식의 정부 개입이 소득을 증가시키고 실업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냐는 것

      16. 통화정책과 헬리콥터 머니
      그림 11.1 대침체기 본원 통화의 추이, p.227.
      • 그림에서 보듯 대침체기에 중앙은행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본원통화를 늘였지만, 유통화폐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 그래서 중앙은행이 일반은행으로부터 채권을 사들여서 지준금을 늘이는 방식이 아닌 직접 통화를 민간에 공급하는 방식(헬리콥터 머니)이 고려되지만 이것은 법에 의해 불가능하다.
      • 통화정책이 유통화폐를 늘려 디플레이션을 막는데 무력하였다.


      17. 이자율 정책과 리파이낸싱
      그림 11.2 2010년 당시 깡통 주택과
      리파이낸싱의 관계, p.231.
      • 위기상황에서 이자율 하락을 통해, 가계부담을 낮추는 경로도 있는데, 실제로는 깡통주택에 살고 있는 다수는 낮아진 신용점수 등의 이유로 리파이낸싱을 할 수 없었다.
      • 그림에서 보듯 주별 비교를 통해서 깡통주택의 비율이 높을수록 리파이낸싱 비율이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1.3 급감한 캐시아웃 리파이낸싱, p.233.
      • 그림을 보면, 연준이 저금리 정책을 통해 캐시아웃 리파이낸싱을 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리파이낸싱은 급락했다.
      • 통화정책이 이자율을 낮추어 대출을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소비를 늘리려는 정책도 무력하였다.


      18. 기대인플레이션
      • 기대인플레이션은 총수요를 진작시킨다.
      • 레버드 로스로 인한 불황일 때는, 경제주체들은 경제가 회복하고 명목금리의 제로 하한을 벗어난 다음에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계속 용인할 것이라고 믿을 때에만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을 가질 수 있다.
      • 결국 불황기에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무책임할 것이라고 신뢰성 있게 약속할 때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이런 신뢰성 있는 무책임함은 장기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

      19. 재정정책
      • 각종 연구에 의하면, 대침체기에 정부지출의 증가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 재정정책은 원금탕감에 비해 정교한 정책수단이 아니다. 꼭 필요한 사람을 선별적으로 도울 수 없다.
        • 최종적으로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 세금이 채권자에게 귀착되지 않으면 조세탕감과 다른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 미국에서 세금이 자산보다 소득에 부과될 경우, 고소득자와 채권자(자산보유자)는 다르고, 조세 부담이 채권자에게 귀착되지 않는다.
        • 채권자들에게도 책임을 물게 하는게, 납세자에게 책임을 물게 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건 잘 납득 안간다....)
      20. 정치적 양극화
      •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자신을 중도주의자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70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
      • 매끄러운 정치적 합의는 어려워지고,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올바른 정책이 있다고 해도, 정부가 이 정책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21. 책임분담
      • 학자금 대출이든, 모기지 대출이든 하방위험이 발생했을 때 손실이 채무자에게 집중되는 경직성의 문제가 있다.
      • 시장이 붕괴되었을 때 채무재조정이 필요하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도 이런 정치적 의지를 갖기 어렵고, 대중적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 이득이 발생할 때는 이득을 나누고, 손실이 발생할 때는 손실을 나누는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기지 대출계약이 debt 성격에서 equity 성격으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 
      • 책임분담모기지는 자산가격 상승시 이득의 일정부분을 채권자에게 지불하고, 해당 지역 주택가격 지수가 하락할 경우 상환일정을 재조정하여 손실을 채권자와 분담하게 한다. (개별주택가격하락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채무자가 의도적으로 집을 훼손하는 것 방지)
      • 책임분담모기지의 장점은
        • 집값 하락시 중간이하 계층의 재산을 보호
        • 압류를 줄이고 소비의 급격한 충격을 방지, 일자리 축소 방지.
      • 책임분담모기지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대침체기의 편익을 추정하면,
        • 2006~9년간 주택자산 감소는 실제 감소의 55% 정도에 그쳤을 것
        • 집값하락 방지로 소비지출 1,500억 달러 증가
        • 손실 채무자에서 채권자로 이전되어 소비지출이 540억 달러 추가 증가
        • 소비지출 2,040억 덜 줄어서, 일자리는 100만개 정도 지킬 수 있었을 것
        • 정부지출승수를 고려하면, 소비지출 충격과 일자리 충격은 더욱 줄었을 것 
        • 손실분담으로 은행이 대출을 늘이는 것에 신중해지고, 거품 방지
        • 이익분담으로 캐시아웃 리파이낸싱을 하면, 자본이득의 일부를 채권자에게 지급해야 하므로, 캐시아웃 리파이낸싱 증가를 억제.
      • 왜 시장에서 책임분담모기지가 등장하지 않는가?
        • Debt 파이낸싱에 대한 광범위한 세제 혜택을 주는데, 책임분담 모기지는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 채무증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 모기지 시장의 표준적인 상품은 정부가 주도하는데 미국에서는 시도 없었다. 
        • 영국에서는 Help to Buy라는 이름으로 위의 책임분담모기지보다 약한 형태의 equity loan이 도입된 적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미국에서 경기위축을 크게 완화했을 것.
        • debt 파이낸싱이 저렴한 이유는 정부가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보증하기 때문이다 (예금보험).
        •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원하기 때문에 채무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은,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이 한 이유이다. 예컨데 2008년 9월 미국연방정부는 머니마켓펀드를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하였다.
        • 또한 민간이 공급하는 초안전(해보이는) 자산은 실제 초안전하지도 않았다.
      • 국가간 책임분담
        • 유럽에서 아일랜드, 스페인 등의 채무국과 독일 등의 채권국 사이의 관계는 레버드 로스 이론의 확장으로 설명가능하다.
        • 쉴러나 로고프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국가간 채무계약에 equity 성격을 가미하여 덜 경직적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

      2015년 1월 24일 토요일

      Income Gap: The Estimated, the Ideal and the Actual.

      Sorapop Kiatpongsan (Chulalongkorn Univ) 및 Michael Norton (HBS)의 흥미로운 연구.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 (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 ISSP)을 통해 40개국 국민들이 '일반미숙련 노동자가 버는 것에 비해 국내 대표기업의 CEO는 몇배나 더 버는 것으로 생각하는가'와 '이 격차는 어느 정도가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

      그림1) 세계평균으로는 이상적 격차는 4.6배이고, 현실에 대한 추정치는 10배. 각국별로는 차이가 큰데 덴마크의 경우 이상적 격차는 2배, 추정치는 3.7배. 한국은 추정치에서 최고치로 41.7배이고 추정치는 11배 남짓, 대만은 이상적 격차에서 최고치로 20배, 추정치는 33배 정도. (통상 한국은 실제 불평등에 비해 매우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로 알려져 있는데, 불평등격차에 대해서 조사대상 40개국 중 가장 크게 추정하는 것은 다소 특이)


      그림2)  미국, 영국, 일본 등 16개 국에 대해서는 AFL-CIO에서 조사한 것이 있는데, 이것과도 비교. (아쉽게도 한국 자료는 없음. 그리고 한국에서는 기업 가버넌스의 특징 때문에 법적 대표이사의 보수가 아니라, 총수 회장님의 보수와 비교해야 할 듯하고. 그리고 SEC는 CEO-AverageWorkerWage 비율을 공시하는 규정을 도입하려고 추진 중인데, 이런 것은 한국적 방식으로 우리도 해보고 싶다. 최고보수를 받는 5인 각인의 보수와 전체 직원 중 median 보수를 공시하는 것..이런 식으로)


      그림3) 젊은이도 노인도, 가방끈 길든 짤든, 스스로의 지위를 하위층이라고 생각하든 상위층이라고 생각하든, 극좌파정당을 지지하든 극우파정당을 지지하든, 소득격차에 대한 예상도 바람직한 수준도 별 무 차이. (당황스러운데,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해석 불가)



      Links.

      원 논문은 유료. Kiatpongsan, Sorapop, and Michael I. Norton. "How Much (More) Should CEOs Make? A Universal Desire for More Equal Pay."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9, no. 6 (November 2014): 587–593.

      충실한 소개는 Harvard Business Article. Gretchen Gavett   CEOs Get Paid Too Much, According to Pretty Much Everyone in the World.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클라인바드의 '부자증세로 불평등 해결하려 하지 말라'는 주장......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은 크게 보면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시장소득의 분배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최저임금 정책, 노동조합 정책 등)과 정부의 세입정책 (조세의 누진도) 그리고 정부의 재정지출정책 (사회보장, SOC의 수혜계층)이다.

      이 중에서 뒤의 두가지를 묶어서 재정정책이라 할텐데, 과연 조제와 정부지출 중 어떤 것이 더 불평등을 공략하는데 유효할 것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문제이다. 지난 주 USC의 Edward D. KleinbardNew York Times에 미국의 경우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려 불평등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Don't Soak the Rich)는 주장을 발표하였다. 간단히 살펴보자.

      • 미국의 세제는 선진국 기준으로 충분히 누진적(progressive)
      • 2013년 재정절벽(fiscla cliff) 논쟁에서 보듯, 학자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고소득층 세율을 올리는 것은 아카데믹하게는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고
      • 오히려 재정지출을 통해서 불평등을 다스리는 게 바람직
      • 푸드스탬프나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지출이야 타겟이 저소득층이니, 당연히 불평등완화 효과를 갖고
      • 인프라나 국방비 등의 투자도 CBO의 계산에 의하면, 수혜층은 폭넓게 공유하는 것으로 분포. 즉 평균노동자의 200배 소득을 올리는 CEO가 고속도로의 혜택을 200배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 OECD 피어그룹으로 보면, 미국은 평균이상의 누진적인 세제를 갖고 있지만, 지출측면의 소득불평등 효과가 낮은 문제
      • 예컨데 독일의 경우 세전 불평등은 비슷하고, 세제는 역진적이지만, 정부지출로 미국보다 높은 평등 구현

      일부 공감하는 바도 있고, 한국과 미국의 차이도 있고 해서, 몇가지 논점을 평가해서 메모해 둔다.
      • 우선 나는 세입 측면보다 재정지출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대체로 공감한다. 
      • 다음으로 OCED 평균이라는 것이 뭐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준거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불평등 완화효과가 미국의 경우 세입은 평균이상, 재정지출은 평균이하이지만, 한국의 경우 세입과 재정지출 모두 평균 이하라는 점이 중요한 차이
      • 이것은 Isabelle Joumard, Mauro Pisu and Debbie Bloch (2013), "Tackling income inequality: The role of taxes and transfers", OECD Journal: Economic Studies, Vol. 2012/1에 등장하는 아래 표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따라서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세입과 재정지출 두가지 무기로 불평등과 싸울 필요 또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
      • 클라인바드는 독일의 경우 세제의 불평등완화 효과가 미국보다 뚜렷이 낮은 것으로 주장하지만, 이것은 위 그림에서는 파악이 안된다. 이건 좀 더 살펴봐야.

      클라인바드는 최근에 재정지출 개혁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했는데, 이것도 흥미로울 듯: We Are Better Than This: How Government Should Spend Our Money (Oxford Univ. Press, 2014).

      2014년 9월 9일 화요일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정치와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논의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자유로운 시민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의사를 투표로 표출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합리적인 경제인 (Homo Economicus) 가정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치학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밴더빌트의 정치학자 Larry Bartels는, 며칠전 WaPo의 Monkey Cage 블로그에서 스토니브룩 대학의 Cengiz Erisen 등이 수행한 sumbliminal prime 실험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이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실험은 여럿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피실험자들은 자신에게 제시된 메시지를 읽고 의견을 밝힌다. 예컨데, 이런 메시지: “미국에 들어오고 있는 불법이민자의 수가 지난 6년간 급증하였다." 그리고 독립적인 실험조수가 이 반응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를 평가해서 기록한다. 당연히 피실험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 이민찬성론자들은 이민반대론자들에 비해서 긍정적인 반응이 38% 더 높았고, 부정적 반응이 34% 더 낮았다.

      여기까지야 뭐 당연한 것인데, 이 실험은 숨겨진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메시지를 읽기 전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화면에 다음과 같은 아이콘 중 하나를 '주제와 무관한 자극 (irrelevant stimuli)'으로 노출시켰다. 미소짖는, 찌푸린, 무표정한 얼굴. 효과는 매우 커서, 웃는 얼굴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은 찌푸린 얼굴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에 비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42% 낮았고, 긍정적인 반응이 160% 높았다.


      Ersen 등은 노출시간이 0.039초로 극히 짧았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이런 화면에 노출되었는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자극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은 정치학보다는 마케팅이론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으로 subliminal advertising이라고 부르는 광고기법이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음향이나, 영상을 삽입하여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는 것.

      이 포스팅 이후에 컬럼비아의 정치학자 (아마도 황승식 교수 등은 통계학자로 분류하겠지만) Andrew Gelman은 이 효과가 너무 커서, 신뢰도에 의문을 표시했고, Bartels는 다시 추가로 답변하는 등 몇가지 설왕설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좀 더 진행될 듯하다. 아마도 원저자들이 나서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개인적으로 subliminal effect가 이렇게까지 클까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내가 마케팅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조금 그렇지만, 상품 광고에서도 이렇게 효과가 분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하지만 충분히 관심을 갖을 만한 주제로 생각하고, 좀 더 챙겨볼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5조(잠재의식광고의 제한)는 "방송광고는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subliminal advertising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방송광고는 <방송법> 제2조 제21호에서 '"방송광고"라 함은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내용물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방송을 통한 정치광고에 subliminal effect를 첨가하는 것이 불법인지는 조금 애매한 듯하다.

      Links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The Mythical Swing Voter

      늘 그렇듯 앤드류 겔만의 주장은 흥미진진.

      • (문제의식) 미국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좀처럼 자신의 지지정당(후보)를 변경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는 그렇게 진폭이 클까? 대규모 스윙 보터의 존재는 정치양극화와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
      • (확률표본과 poststratification) 여론조사는 응답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작위추출을 해도 편이가 없는 확률표본을 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사후적으로 가중치조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주로 고려하는 것이 인구학적 요소들이다. 한국의 경우라면 연령/성별/지역이 대표적일 것.
      • (사례) 겔만 등은 2012년 미국 대선 마지막 45일 기간동안, 8만명 이상으로 구성된 패널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대선지지후보 조사를 수행. 
      • (스윙의 증거) 아래 그림은 지지자 없음 등은 제외하고 오바마지지나 롬니지지를 밝힌 유권자 중 오바마 지지율. 밴드는 95% 신뢰구간. 통상적인 인구학적 poststratification 처리후 결과. 

      • 가로 점선은 대선 오바마 득표율, 세로점선은 세차례에 걸친 대선후보 TV 토론일자로 상당히 큰 폭으로 아래위 출렁거렸고, TV 토론이 중요한 분수령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차트는 실제 당시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유사한 모습.
      • (스윙의 반증) 위 그림에서 1차토론 전후 1주일동안 오바마 지지율은 10포인트 정도 급락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같은 기간 지지후보 변경비율을 추정해 보니, 극히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롬니 변경은 0.5%를 갓 넘고, 롬니->오바마 변경은 0.2% 정도. 가로막대는 95% 신뢰구간.

      • 겔만 등은 TV 토론의 효과는 지지 후보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토론에서 죽을 쓴 후보의 지지자들이 설문에 응답하지 않고, 반대로 활약을 한 후보의 지지자는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을 확인한 것이 아래 그림. 이를 확인 하기 위해, 인구학적 변수로 poststratification을 한 것 (흐린 부분) 외에, Party ID(당적? 지지정당?)을 추가적인 가중치로 해서 poststratification을 수행 (짙은 부분). 이렇게 Party ID를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실제 득표율로부터 변동이 매우 축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도 몇가지 시사점이 있는 듯 한데,

      • 한국도 정치 양극화가 상당해서 단기간에 (캠페인 기간 중에) 토론 한번 잘한다고, 또는 특정 공약 발표한다고, 여야 지지후보를 바꾸는 경우 크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고 이걸 너무 집토끼/산토끼 구분으로 해서, 우리편(?) 지지자에게만 소구하는 강공으로 나가면 된다고 하는 건 또 너무 단순한 것 같다. 강공만으로 집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 유비에 비추어 보면 답답해지는 측면도 크다.
      • 우리나라 여론조사 기관들도 관심이 있을 듯한데, 당적을 갖는 인구의 비율도 낮고, 유권자 등록시 지지정당을 밝히는 제도도 없고 해서, 우리는 보다 정확한 예측을 하기 위한 추가적인 도구가 무엇인지 고민이 있어야 할 듯.

      2014년 7월 31일 목요일

      [독후감]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마이클 S. 최 지음 (허석재 옮김),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 게임이론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 지식>, 2014년 7월,
      후마니타스 출판사.
      얼마전 국역된 Michael Chwe (최석용)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게임이론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 지식 Rational Ritual: Culture, Coordination, and Common Knowledge>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가 내용이 너무도 무거워 당황한 책이었다. 두세 시간이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다 읽는데는 며칠 걸렸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그런 매력적인 책인데, 우선 극히 주관적으로 내가 주목했거나,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 바를 간단한 메모로 남긴다.

      조정 Coordination

      경제학자들에게 익숙한 네트워크 외부성에서 시작해 보자.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 중 어떤 것들은 다른 이들이 얼마나 사용하는가에 따라 나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보통 많이 드는 예가 팩시밀리인데, 만약 세상에 아무도 팩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매한 팩스의 가치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 친구가 팩스를 보유하고 있다면, 나는 그 친구와 문서를 주고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약간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수 많은 사람들이 팩스를 보유하고 있다면 내가 보유한 팩스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너무 뻔한 것인데, 이것을 조정의 관점에서 보자. 충분히 팩스의 사용자 베이스가 클 때는 소비자가 기꺼이 팩스를 사겠지만, 최초의 소비자에게 어떻게 팩스를 사게 할 수 있을까? 그 최초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팩스의 가치가 전혀 없는데. 그러니까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팩스의 구입이 합리적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이들이 현재 팩스를 갖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들이 팩스를 구입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이 집단은 아무도 팩스를 사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수 많은 소비자들의 '조정'이 필요한 상황.

      이에 대해서 경영학에서의 해답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컨데 팩스제조업체는 상위주체와 복수 공급계약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데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국의 수많은 관공서에 동시에 공급하는 것. 이것은 수많은 공공기관 구매부서들이라는 복수 주체의 조정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상위의 계약자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 공동구매도 유사한 메카니즘. 또는 초기의 구매자들에게 엄청난 할인을 해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초기 구입자는 부담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구매할 것이라는 믿음이 적더라도, 그러니까 조정이 덜 되더라도, 부담이 적기 때문에 구매에 나설 수 있다. 뭐 이 유사한 여러 해법들이 있다.

      공유 지식 Common Knowledge

      최교수는 또 다른 해법으로, 광고에 주목한다. 통상 상품들의 광고는 "이 제품은 이러저러한 효능이 있어요"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런 재화는 "다른 수많은 사람도 이 광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광고 보는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사람이 이 광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는 공지성(publicity)을 알려주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 시청자수가 높은 수퍼볼과 같은 TV 프로그램의 광고는 엄청나게 비싼 광고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이러한 네트웍 재화(최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재화)가 몰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유지식의 관점이 경제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영역의 문제 해결에 요긴하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예컨데 시위에 참여할 때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나 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내가 잡힐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한국어 제목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는 상당히 좋은 번역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공지성을 높일 수 있는 물리적 기제가 원형 구조물이다. 고대의 원형극장이나, 미국 몇몇 도시의 원형 시티홀 같은 것. 극장의 관객이나 위원회 멤버는 원형의 중앙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나 연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다른 관객 또는 위원들도 나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고....이런 것. 특히 흥미로운 것은 벤담의 판옵티콘에 대한 최교수의 해석이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원형으로 배치된 감옥의 각 셀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감시의 비용은 줄어들지만 (중앙집중성), 반대로 이 원형 구조는 원형극장과 동일한 포맷이기 때문에 많은 수감자들 사이의 조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예컨데 중앙 감시탑의 감시자가 졸았다고 해보자. 수감자는 감시자가 졸고 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셀의 수감자들도 감시자가 졸고 있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수 있다. 탈옥을 모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중앙의 감시자는 수감자를 바라볼 수 있지만, 반대로 수감자가 감시자를 바라볼 수 없도록 하는 불투명 유리의 설치가 필요하고 (비대칭성),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없도록 셀 사이의 간막이를 중앙을 향해 연장시켜야 한다 (분리성).

      제사장 또는 정치가

      이 책의 원제는 합리적 의례이다. 왕실의 행차, 혁명기의 페스티벌,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통한 의례적 실천 등은 모두 다수의 국민들에게 발화자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다른 국민도 그 메시지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공지성을 높이려는 시도이다. 제사장의 역할에서 이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치가도 동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가의 컨텐츠가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팩시밀리 구매와 투표를 비교해보자. 나는 정치가 A후보가 좋아 보이는데, 만약 모든 유권자 중에서 나 혼자 A를 지지한다면 거의 어떤 의미도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투표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또 그렇다면 정치가 A는 자신의 매력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다른 유권자들도 자신의 매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들. 그런 점에서 정치가는 제사장.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매우 아쉽게도 이 책에는 경제와 문화에 대한 폭 넓은 사례들이 나오는데, 정치에 대해서는, 저자가 UCLA 정치학과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례가 많지 않다.

      그리고 기타......

      내가 마이클 최를 저음 알게 된 것은, 작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게임 이론가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Game Theorist>에 대한 서평을 보고서였다. 약간 끌리긴 했지만, 책을 구해서 읽지는 않았다. 이론의 사례를 문학이나 서사에서 찾는 것이 그 흥미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너무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 있어서였다. 예컨데  스티븐 브람스(Steven Brams)는 공정분할(Fair Division)에 대해 멋진 저작을 남긴 게임이론가이지만, 성경을 게임이론으로 해석하겠다는 시도였던 <성경의 게임: 게임이론과 히브리 성경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은 별로였고, 또 제인 오스틴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설명, 이런 논문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썩 와 닿지 않았었다. 이런저런 기억들 때문에 미뤄두었던 것인데, 마이클 최의 책이라면 읽고싶다는 생각이 확 든다. (누군가 번역하고 있겠지? 아마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이 책 번역 매우 훌륭하다. 아주 사소한 오탈자 외에는 심각한 오역처럼 느껴지는 부분 없었고, 아주 어려운 내용임에도 그래도 잘 읽힌다. 역자후기에 의하면 마이클 최의 아내 이남희씨가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데, 시카고 대학 사회학 박사이고, 또 그때그때 필요하면 저자와 바로 대화했을테니, 그녀의 역할이 상당했을 것 같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역자의 실력과 성의가 기본이고.

      그리고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울까 생각해보니, 이 책은 게임이론에 대한 사전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쉽지 않은 그런 책이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미쉘 푸코, 레비 스트로스, 하버마스, 루소 등등은 무척 당황스럽더라는.

      어쨋든 개인적으로는 내 현장인 정치의 영역에서 이 책의 내용을 더 곱씹어 보고 싶다. 그리고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