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8일 수요일

페이스북 한국 지방선거에 공식 “투표인증” 기능 도입

페이스북은 과거 미국과 인도 등 일부 선거에서 적용되었던, “투표인증(I'm a Voter)" 기능을 한국의 지방선거를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확대한다고 최근 발표하였다. 아직 한국에서의 인터페이스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로 미루어 보면 한국의 사용자들은 선거일 당일 아래와 유사한 화면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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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이라는 것을 알리는 타이틀 아래, 그 시점까지 투표인증을 한 친구의 프로필 사진, 친구의 수 및 전체 투표인증인 수를 표시한다. 그리고 해당사용자에게 투표인증 버튼을 눌러 인증에 동참할 것을 유도한다.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구성원리는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이다.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보다 좋은 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 보다 훌륭한  정치인을 발굴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정책과 인물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은 모두 다수의 지지를 받으려는 행동이다. 하지만 다수가 지지하는 것과 그 지지를 투표로 행사하는 것은 밸개의 일이다.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될 통로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운동의 또 한 축은 지지자들을 설득하여 투표하게끔 하는 것이다. 특히 선거일 당일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통상 “투표독려 (Get Out the Vote)"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실제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투표는 소중한 행동입니다”와 같은 호소도, “우리 정책이 월등히 더 좋으니, 꼭 투표해주세요”와 같은 설득도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의 면대면 압력 (social pressure)이 유효하다. 이것을 투표의 전염성(contagious voting)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전염의 속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사례에 따라 다르지만, 지인들의 면대면 투표독려의 효과는 대략 1~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면대면 투표독려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한사람이 투표 당일 과연 몇 명에게 독려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면대면 독려활동에 나서겠는가? 그래서 투표독려 활동은 중요한 선거운동이지만 어렵고 효과가 낮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않고 있다. 물론 불법적인 것을 포함하면 얘기가 다르다.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 독재시절 자동차를 동원해서 유권자들을 투표장까지 실어 날랐던 행위를 생각해 보라.

반면 정보통신의 발달은 투표독려 활동에 새 지평을 열었다. 필자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일 친구들로부터 투표하러 가야한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았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큰 죄를 짖는 듯한 느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도 친구들에게 독려해야 한다는 상당한 압력(?) 또는 희열(?) 뭐 그런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최근의 총선과 대선에서는 투표장 앞에서 찍은 소위 인증샷이 대유행이었다. 이것은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와 사진전송 기능 덕이었다. 다만 그 효과는 다양한 설이 분분할 뿐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행이도, 페이스북은 투표인증 기능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에 앞서, 2010년 미국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 방대하고 치밀한 실험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를 <네이처 Nature>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6천만명 이상의 미국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임의로 세 그룹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그룹(소셜정보그룹)의 페이스북 화면은 위에서 소개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두 번째 그룹(단순정보그룹)의 화면에는 위의 내용 중에서 페이스 북 친구 중 누가 투표했는가에 대한 사진과 이름을 제외하고 전체 투표자 수만 알려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통제그룹)의 화면에는 아예 선거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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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매우 흥미로운데, 우선 투표선언(투표인증 버튼의 클릭)으로 투표율 제고의 효과를 측정해 보면, 소셜정보그룹에 속한 사용자들이 단순정보그룹에 비해 2.08% 더 투표율이 높았다. 통제그룹의 사용자들에게는 투표인증 버튼 자체가 없었으므로 이 그룹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몇 명이 투표했는가에 관한 페이스북 정보에 비해,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 중 누가 얼마나 투표했는가라는 사회적 정보에 접하게 되었을 때 상당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이러한 투표선언이 늘어난 것이 실제 투표의 증가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실제 투표를 추적하였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는, 연구목적일 경우 투표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자료를 통해 보니, 소셜정보그룹에 속한 사용자들이 단순정보그룹에 비해서도, 통제그룹에 비해서도 모두 실제 투표가 0.39% 더 높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투표인증 버튼을 누른 것의 상당 부분은 지인들의 사회적 압력에 대한 거짓 반응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 (2.08%가 아닌, 0.39% 투표율 제고). 두 번째 투표율 제고는 전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순정보그룹과 통제그룹 사이에 차별 없음).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가까운 친구와 소원한 친구의 투표율 제고 효과가 다른가라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페이스북 상에서의 상호활동(댓글쓰기, 좋아요 버튼 클릭, 태그 붙이기 등)의 빈도를 통해서 해당 사용자의 친구를 10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었다 (가장 소원한 1소그룹에서부터 가장 친밀한 제10소그룹까지). 이들 소그룹별로 효과를 살펴본 결과는 1~7소그룹에 속한 친구들이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는 거의 없고, 8소그룹에 속한 친구의 효과는 어느정도 있지만, 우연일 가능성을 기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9소그룹과 10소그룹 효과는 각각 0.172%, 0.224%로 뚜렷이 높았다.

요약하자면, 페이스북이 도입한 투표인증기능은 투표율을 분명히 높인다. 2010년 미국실험과 시뮬레이션의 결론은 순수히 페이스북 효과만으로 34만명 이상이 추가적으로 더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 작동방식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통해서, 특히 가까운 친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비록 투표율 제고의 효과가 높아 보이지 않겠지만, 페이스북이 초대규모 네트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투표인증 버튼을 클릭하는 독려활동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최근의 선거들이 대부분 박빙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페이스북의 공인 투표인증 기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광주의 트라우마는 멀리 흐른다.....

심리적 외상으로 번역되는 트라우마는 인간이 전쟁, 기근, 천재지변 등 외부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 장애와 그에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지칭하는 심리학적 용어인데, 이런 특이한 단어가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위험사회로 불리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육체적,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철희 교수의 광주항쟁시기 양민학살이 광주의 임산부들에게 초래한 트라우마의 효과에 대한 연구(Intergenerational Health Consequences of In Utero Exposure to Maternal Stress: Evidence from the 1980 Kwangju Uprising, Asia-Pacific Economic and Business History Conference 2013, Full Text PDF)는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광주항쟁은 다른 재앙과는 달리 직접적인 희생자를 제외하면 신체적 위해가 없었고, 그 기간 동안 음식이 부족하지 않아 영양결핍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후속된 전염병의 창궐도 없었다. 그래서 대다수 광주시민이 겪은 외상은 심리적 충격이어서 트라우마의 정의에 잘 부합한다.

이교수는 임산부들이 트라우마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과 이 영향이 태아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것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항쟁시기 광주의 임산부들이 나은 신생아의 건강상태를 비교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신생아의 출생시점 몸무게는 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상태는 물론이고, 학력, 소득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수준의 데이터는 19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더 나아가, “광주항쟁기 임산부들의 트라우마가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태아가 출생, 성장해서 낳은 자식들, 그러니까 항쟁기 임산부들의 손주세대에까지 악영향을 미쳤을까”라는 문제로 접근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자료들은 이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1980년 6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광주항쟁시기에 부모의 태내에 있었을 것이다. 차트에서 보듯이 이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 나이를 먹어서 광주에서 낳은 자식들을 전국평균과 비교해 보면, 광주지역의 신생아(트라우마에 노출되었던 임산부의 손주)들은 전국평균에 비해, 몸무게가 평균 56그램이 적게 나갔고, 저체중아일 확률도 2.5% 높았다. 이것은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었다. 또 임신기간도 짧았고, 조산아일 확률도 높았다. 다만 임신기간에 관한 통계는 적극적인 해석을 부여할 만큼 효과가 유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산모의 태어난 시기가 이 기간 이외인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Click the image for bigger size. Source: Lee (2013)

물론 이러한 단순 비교만으로는 트라우마의 효과인지, 아니면 여타 다른 효과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고려할 수 있는 다른 요소들, 아이의 성별과 몇 번째 아이인지에 관한 보건학적 요인들과 산모의 학력, 소득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다 콘트롤해서 분석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효과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보건학 전문가들이 평가해 주실 것이고, 다만 이렇게 수대에 걸쳐 효과과 관찰된다는 것만으로도 나로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여러가지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데이터의 제한때문에 1) 2000년, 2002년 두해만 대상이었다는 것, 2) 산모의 출생지 정보를 알 수 없어서 2000년과 2002년에 광주에서 출산을 한 산모의 출생지를 광주로 추정한 것 두가지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세심하게 봐야할 듯. 이 외에도 트라우마가 끼친 다른 영향들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다만, 저자가 한국전쟁이 태아에 미친 장기적 영향을 보건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까지 분석했던 것(In utero exposure to the Korean War and its long-term effects on socioeconomic and health outcomes, Journal of Health Economics, Full Text Gated)에 비추어 광주 트라우마 연구도 더 발절하리라 기대한다.

오늘은 518이다. 비록 항쟁의 상처는 옅어진 듯 보이지만, 그 심리적 고통의 흔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길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느끼는 아픔은 사실 트라우마든 뭐든 어떤 단어로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드라이한 분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518을 소심하게 보내며, 기억하기 위해 블로그에 남겨둔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

<불평등 민주주의>를 읽고 (I)

조금 전에 래리 M.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 (21세기북스)>를 다 읽었다. 읽기 시작한 것은 꽤 되는데, 중간에 책을 분실해서 다시 사기도 했고, 뭐 다 아시는대로 최근 얼마간은 책이 잘 읽히지도 않았고. 여하간 다 읽고 난 소감은,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것, 내가 최근 몇년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런 느낌.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머리속에 막 떠오르는 대로, 약간의 인상 비슷한 그런 것을 좀 풀어볼까 한다.

아시다시피 지난 대선의 결과를 두고, 가난한 계층일수록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았다는 것에 기초해서 한국에서는 "역 계급투표 현상"이라는 주장이 대 유행이었는데, 이 때 아마도 가장 많이 논거가 된 책이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갈라파고스)>였다.

프랭크의 이 책은 미국에서 2004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그 직후 있었던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의 당선을 설득력있게 예측하고 설명했다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 요지는 1)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중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2) 그 내용은 동부와 서부의 래디컬 엘리트들에 맞서 전통적인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 3) 그래서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노동자계층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게 되었다는 것 4) 그래서 민주당은 이제 새로운 전략으로 이들에게 문화적으로 다가갈 것을 제안한다, "민주당은 밀농사를 짓고, 총을 쏘고, 스페인어를 말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성경을 들고 다니는...."

그런데 바텔스는 이러한 프랭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1) 백인 노동계층은 민주당에 등을 돌리지 않았고 2) 백인 노동계층이 더 보수적으로 변화하지도 않았고 3) 도덕적 가치가 경제적 이슈보다 투표에서 더 중요해지지도 않았고 4) 종교적 유권자가 경제적 이슈에 무관심해지지도 않았다는 것.

요는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 중에서 어떤 것이 정치를 결정하는데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인데, 굳이 조야한 개념을 쓰자면 경제결정론과 문화결정론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두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그럴듯한가에 대한 논의는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다만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전자에 훨씬 더 끌린다.  나는 아마도 맑스의 분석에 거의 어떤 것도 동의하지 않지만,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경제적 이해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성향을 결정한다'라는 것만은 받아들인다. 뭐 쌍방향성도 있을 것이고, 그 결정이라는 것이 최종심급일 것이고 이런 저런 수식어가 필요하겠지만. 근데 사실 대부분의 한국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런 식의 맑스주의를 비웃을 가능성이 크다. 속류맑스주의 또는 스탈린식 맑스주의 운운.... 좌우간 나는 그렇다는 정도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두 주장에 대한 지지기반이 다르다는 것. 정치학자들은 2004년 출구조사를 '선거에서 도덕적 이슈가 가장 중요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을 비웃었지만, 수많은 언론인들과 논객들은 '노동자계급이 문화적으로 보수화되어 공화당이 승리했다'라는 프랭크류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에 대해서 내가 추측하는 것은 두가지.

첫째, 문학적인 측면에서 프랭크의 책은 바텔스의 책보다 훨씬 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프랭크는 훌륭한 르뽀르타쥬 작가고, 그의 글에는 흥미로운 예화가 있고, 그래서 그의 주장은 무미건조한 나열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들린다. 반면에 바텔스는 학술서적이 아닌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딱딱하고, 캔자스에서 만난 실제하는 한 백인의 육성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 상무부와 노동부의 통계, 수많은 여론조사 그리고 이것에 대한 분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번째로, 이건 사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통해서 추측하는 것인데, 아마도 그 가치투표를 주장하는 언론인과 논객들, 이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 나오고, 상당한 소득이 있거나 (이 소득을 포기하고 대신 명성을 택했거나) 한 그런 류이면서, 동시에 리버럴 성향이 강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아닐까? 즉 스스로가 역계급적 정치행위를 하고 있어서, 대중들이 역계급적 정치행위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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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바텔스의 책에 대한 인상평이었고, 책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다음에 하겠다(라고 여기에 선언(?)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즘은 다 잊어버려서....메모를 해두겠다는 의지이고, 선언을 통해 그 의지를 좀 못박는...).

책의 번역은 대체로 훌륭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조금 있는데, 첫째는 주석에 대한 것, 원문의 각주가 번역서에서는 후주로 되어있는데, 난 이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상당수의 주석을 누락시킨 것은 아쉽다. 번역을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건 별로 어려운 수고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누락시킨 것들은 대부분 출처를 밝히는 것들이어서 그냥 기계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들.

두번째로 크게 아쉬운 것은 원서에 있는 index를 통째로 생략한 것, 이 책은 한번 읽고 치우는 류의 책이 아닌데, 이것이 생략되어서 매우 불편하다. 나는 다행히 한 대학 도서관을 통해서 원서의 e-book에 접근할 수 있어 필요하면 원서에서 찾고 번역서에서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좌우간 불편. 그런데 이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이 번역서 주석 만들어 보신 분은 알겠지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서....(난 과거에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세권 전체의 인덱스를 만들었는데, 그 때 인덱스 만드는 수고비로 출판사에서 한학기 등록금 이상을 받았지만, 한 일에 비해 보수가 박했다는 느낌이.....).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Piketty's Book Is NOT Hot in France.

미국에서 Piketty의  붐이 과열 수준까지 가고 있고, 온갖 분석이 다 나오더니, 이제 "도대체 왜 프랑스인들은 미국인들만큼 열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까지. NY Times와 Foreign Affairs에서 경쟁적으로 기사를 냈는데, 유익한 편. 그리고 한국어판의 운명에 대한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할 듯.

  1. 덜 신선한 피케티: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피케티가 사회당의 주요 인물이었고, 2007년 대선에서 Ségolène Royale의 경제자문역부터 지금까지 핵심인사들과 긴밀하게 연결. 프랑스인들에게 피케티는 좀 지루해진 인물.
  2. 덜 충격적인 불평등미국인들과는 달리 프랑스인들은 대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심각하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어서, 책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3. 프랑스의 경제침체최근 경기가 나빠서, 사회당 대통령부터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감세, 정부지출 삭감 등이 영향력 확대 중. 증세에 대한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
  4. 이론적 문제피케티가 지나치게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을 활용한다는 비판. 좌파들의 태도로 이러한 비판은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거세.
  5. 학자에 대한 존중 부족프랑스 엘리트들은 Grandes Écoles 중심으로 양성되고, 이들은 대학의 학자들에 대한 존중 별로 없다
  6. 경제학에 대한 존중 부족프랑스에서는 1968년이 되어서야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받게 되. 그전에는 법학의 하위 분과로 취급.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철학자나 역사가 등이 누리는 존경을 받지 못해.
  7. 실증작업에 대한 인정영미권에서는 피케티에 대한 반대자들까지도, 피케티의 엄격하고 방대한 실증작업에 대한 높은 평가 존재. 프랑스에서는 그냥 높은 과세를 요구하는 좌파 중의 좌파 이미지가 더 지배.


일부는 서로 상반되는 항목도 있지만, 뭐 그런 저런 이유가 다 작동했을 듯. 한국에서는 어떨지 궁금한데,

  1. 일단 이 책에 한국 실증이 전혀 없다는 것은 흥행에 치명적일듯. 이 점은, 이 책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피케티 등이 주도하는 The World Top Income Database는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분배통계가 정리되어 있거나 정리 중인데, 한국은 아예 빠져있다. 
  2. 프랑스 경제학(자)에 대한 무시, 뭐 이런 것이 좀 있어서 이것도 흥행에 불리할 듯. 샌델의 정의론이 대박을 친 이유중의 하나는 "하버드 교수가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의를 책으로 정리"했다는 것.
  3. 미국에서의 열풍은 상당한 플러스 요인일 듯. 미국학계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주 강해서, 노벨상을 받은 크루그만이 솔로우가 또 누가 극찬을 했다는 것, 아마존 베스트 셀러 1등을 했다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일 듯.
  4. 또 뭐 항상 그렇듯 지나치게 좌파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 분배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계급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

Links
  1. Tyler Cowen and Veronique de Rugy, Why Piketty’s Book Is a Bigger Deal in America Than in France, April 29, 2014, New York Times.
  2. Clea Caulcutt, France Is Not Impressed with Thomas Piketty, April 28, 2014, Foreign Affairs.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공정하니...

우리말에 꼴값이란 게 있다.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데, "아주 꼴값을 해요"라는 말은 "생긴대로 논다" 아닐까 싶고, 조금 오바하자면 "외모로 그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그런 뜻 정도로 이해한다. 그런데 스탠포드 경영대학의  Peter Belmi와 Margaret Neale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꼴값과 불평등에 대한 태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석을 시도하였다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airest of them all? Thinking that one is attractive increases the tendency to support inequality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24 (2014) 133–149.)

1. 방법

이들은 다섯 가지 유사한 방식으로 인터넷 설문 조사를 했는데, 조사한 항목은 본인의 육체적 매력도(self-perceived attractiveness),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계층(subjective social class), 그룹차별성향 (group-based dominance 어떤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향 열등하다등의 항목에 대한 지지정도), 정당화 이데올로기 (legitimizing ideologies 여성과 소수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숙련이나 교육수준이 낮아서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기회를 동등하게 갖고 있다 등에 대한 지지정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평가 (개인성향론dispositional - 능력/재능/근면/자산관리 등등 v. 사회적요인론contextual - 차별/편견/상속/정책 등등), Occupy 운동에 기부금을 낼 의향 등이었다.

그리고 인구학적 요인들, 인종/연령/성별/교육수준 등은 통제하였다.

2. 발견

자신이 매력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할 수록, 스스로를 상위계층으로  생각하였고, 그룹차별성향이 강했으며, 정당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 개인성향론으로 설명하려는 성향이 강했고, 기부금을 낼 의향은 낮았다.

Click the image for higher resolution. Source: Belmi and Neale (2014).

또한 스스로의 매력도 평가에 앞서, 세 그룹으로 나누어 1그룹(매력조건그룹)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었던 순간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2그룹(비매력조건그룹)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했던 순간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3그룹(통제그룹)은 "가게에 갔던 경험을 적어보시오"라고 하고, 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매력조건그룹은 통제그룹에 비해 자신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강해졌고, 비매력그룹은 통제그룹에 비해 자신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약해졌다. 그리고 그 뒤의 얘기는 동일하고. 

그러니까, 잘 생겼던 시절을 상기시키는 것 만으로도 그 인간을 평등에 반대하는 성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

끝으로 스스로의 육체적 매력도 외에, 스스로의 사회적공감도(emphathy)나 진실성(integrity)에 대해서도 평가하게 했는데, 이것은 불평등에 대한 위의 온갖 내용들과 유의하게 상관이 있는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3. 소감

뭔가 치밀한 분석은 아닌 느낌........이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그리고 나의 이 높은 self-perceived attractiveness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에 대한 tolerance가 매우 낮은 성향은 exceptionally noble한 것인가 하는.......쿨럭, 쿨럭...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United States of $$$

얼마전 타계한 Robert Dahl은 1961년 저서 Who Governs의 첫 문장에서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식, 재산, 사회적신분, 관료와외 관계 등 모든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 과연 이런 나라는 누가 지배하는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 소득과 재산 분배가 극심하게 양극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주의 이론도 다시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두 정치학자 Martin Gilens (Princeton)와 Benjamin I. Page(Northwestern)가 다소 이례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물 "Testing Theories of American Politics: Elites, Interest Groups, and Average Citizens"이 조만간 Perspectives on Politics에 게재된다고 한다. (Link for the public access PDF version) 미국의 여러 매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한테도 시사점이 있는 듯.

1. Four Theories

이들에 의하면 이 주제에 대해서는 네가지 이론적 대안이 존재한다고 한다.

  • Majoritarian Electoral Democracy 평균적인 시민이 지배한다.
  • Economic Elite Domination 부자가 지배한다.
  • Majoritarian Pluralism 이익단체가 지배한다.
  • Biased Pluralism 이익단체 일반이 아닌, 재계 이익단체가 지배한다.

2. Data

이런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지지하고 반박하는 수많은 실증연구가 있는데, 이들은 과감하게 통합 테스트를 시도했다. 이들은 우선 정책에 대한 계층별 선호를 조사하기 위해 1981~2002년간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시행된 정책에 대한 태도를 묻는 서베이 중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 연방정부 정책 대상 (주정부사항,  헌법개정사항, 대법원판결사항 제외)
  •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들 (집계가 쉬어야)
  • 응답자의 소득에 관한 항목을 포함할 것 (계층별 분석을 목표로)
  • 정책의 채택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것들 (이게 결과니까)

이렇게 집계된 것이 총 1,779 건으로, 이 건들의 설문결과를 하나하나 코딩해서(오, 불쌍한 조교들!), 기초 도구로 삼았다. 그래서 저소득층 (소득 하위 10%), 중간층 (중위소득자), 고소득층 (소득 상위 10%) 각각이 각 정책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를 알아냈다.

다음으로 이익집단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주요 이익집단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했는데, Fortune 지 선정 주요 이익집단 (Power 25) 리스트를 기반으로 해서, 지출액이 큰 10대 산업단체를 포함했다. 그리고 분석 대상인 1,779건의 정책 각각에 대해 이들 집단이 어떤 태도를 갖는지 각종 자료를 뒤져서 "강한지지", "다소지지", "다소반대", "강한반대"를 부여하였다 (오, 다시 한번 불쌍한 조교들). 그래서 이익집단의 각 정책에 대한 선호도(Net Interest Group Alignment)를 다음과 같이 계산하였다.

NIGA = ln(강한지지수 + [0.5 * 다소지지수] + 1) - ln(강한반대수 + [0.5 * 다소반대수] + 1) 

마지막으로 이들 정책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신문, 정부자료, 의회관보, 학술지 등을 다 뒤졌다 (아, 정말로 불쌍한 조교들!!)

3. 결과

우선 중위소득자의 선호, 고소득자의 선호, 이익집단의 선호 세가지를 독립변수로 해서 정책 채택율을 봤더니, 중위소득자의 선호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들이 선호한 정책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많이 채택되긴 했는데, 고소득자나 이익집단의 선호와 연동이 될 때만 채택). 반면에 고소득층의 선호와 이익집단의 찬성/반대 여부 (NIGA)는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Gilens and Page (2014)

그러니까 위의 설명대안 중에서, 적어도 이 자료는 Majortarian Electoral Democracy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Business Elite Dominance와 Interest Group Dominace는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익단체의 영향은 대중단체(AFL-CIO 등)와 재계이익단체(NRA 등)의 영향은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문제에 도전했는데, 두가지 범주로 이익단체를 구분해서 NIGA를 계산해서 분석했더니 대중단체보다 재계이익단체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컸다. 그래서 단순한 Majoritarian Pluralism보다는 Biased Pluralism이 작동한다는 것.

Click the image for the full size picture. Source: Gilens and Page (2014)

4. 소감

요즈음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경제학자들의 고립적인 연구에서 점차 벗어나, 경제학-심리학-정치학-교육학-보건학 등 여러 분야의 융합으로, 이론-실증-역사의 다 층위로 확장되는 경향이 뚜렸하다. 그리고 단순히 아카데미아의 논의가 아닌 현실의 정책/정치의 영역과 그대로 연결되는.

Gilens and Page의 이번 연구는 진짜 단순무식하다할 정도로 "노동집약적"인 연구인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일부 억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발견에 의해 기각되거나 수정되는 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돌파구를 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이것이 각고의 노력으로 입증되는 것의 차이랄까. 요즘 젊은 한국의 사회과학자들도 분배에 관한 여러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흥미로운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다는데, 좀 더 관심갖고 찾아봐야할 듯.

참 Robert Dahl의 현대 정치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난 듯. 내가 무식하여 작년 최장집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고 설명해주시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요즘의 정치학 논문도 시도 때도 없이 달의 연구성과를 인용하고 있으니. 그리고 Martin Gilens의 역작 두 편 중 Why Americans Hate Welfare (1999)는 <왜 미국인들은 복지를 싫어하는가>로 번역되어 있지만, Affluence and Influence (2012)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 책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 책인 듯. 뜻있는 출판인이 나서주길 기원.

PS (April 27, 2014) > 중앙SUNDAY에 압축적인 만평이 실려서 소개


PPS (May 22, 2014) > Economist Magazine에 Gilens and Page의 논문 소개가 실렸는데, 이 기사에서 의외인 것은 Economist지도 부자들이 지나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Economist지 다운 것은 지나친 영향력의 문제를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풍이 불어 금융부분 뿐만 아니라 경제전체에 해로운 포퓰리즘 정책이 도입될까하는 데서 찾는 것.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Maximum Wage

소득분배 불평등이 커지는 것에 대한 여러 해법 중 하나로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것이 있다면, 대칭적으로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작년에 스위스에서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사이의 격차를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국민투표가 있었고 이것은 비록 부결되었지만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제네바에 거주하는 ILO 이코노미스트 이상헌이 <한겨레 21>에 소개한 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Danielle Kurtzleben의 최근 Vox 기사(The law that failed to curb CEO pay, thanks to the biggest loophole ever)를 통해, 스위스와는 다르지만 미국에도 최고 임금을 제한하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린튼의 세법개정을 통해 입법화된 규정(26 U.S. Code § 162(m))인데, 미국 상장기업의 경우 CEO 또는 최고보수를 받는 4인 임원 각각의 연보수가 백만불을 넘을 경우, 이 초과분에 대해서는 손금인정을 해주지 않는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최고임원진의 보수를 제한하는 인센티브를 회사에 주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넘어서면 연방정부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기도 한 그런 규정.

그런데 함정이 하나 있어서 생각했던 효과를 제대로 내지는 못했다고, 연간보수를 계산할 때 성과급 부분은 제외하는 것으로 해서 대개의 경우 이 규정을 피해나간다고 한다. Economic Policy Institute의 추계(PDF)에 의하면, 이 규정이 도입되어 연간 법인세를 $2.5bn 더 겆게되었지만, 성과급 예외때문에 연간 $7.5bn의 세수는 놓치고 있다고 한다. 이 함정을 메우려는 입법시도는 있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한다.

내가 소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스위스에서 시도한 최고임금 지정방식보다는 특정 금액을 초과하는 임금에 대해서 손금불산입하는 방식이 더 끌리는데, 관심을 갖고 더 생각해 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