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몇시간동안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쓸 수 없던 차에, 박상준의 <불황터널 :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을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우선 전체적으로 매우 읽기가 쉽다. 특별한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니 어쩌면 경제학개론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려나 모르겠다),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허술하거나 얕지 않다.
일본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냥 현실 속의 거시경제학 이해를 높이는, 이런 목표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상대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이것은 뭐 한권의 책에 다 기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 강추!
몇가지 인상적인 것을 두서없이 메모해 둔다.
1. 정치적인 지지는 정책 추진의 결정적인 자산이다.
2001년 고이즈미 취임 직후 지지율은 80%대로 최고수준에서 시작하였고, 2006년 퇴임시까지 50% 이상을 유지하였다. NHK정치의식월례조사가 시작된 1998년 이래 퇴임시점에 50% 이상의 지지를 유지한 것은 고이즈미가 유일하다고 한다.
고베 역시 2013년 2차내각 출범 직후 지지율은 60%대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 전해의 노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분명하다.
성공 실패를 차치하고, 2000년대 이후, 아마 한국인이 기억하는 두명의 수상은 고이즈미와 아베 뿐 아닐까? 찾아보니 그 사이에 후쿠다, 아소, 하토야마, 칸, 노다 수상이 있었지만, 어렴풋이 그런 정치인이 있었지, 정도 아닌지?
2. 고이즈미와 아베의 경제학
우선 통화정책은 잘 아는대로, 고이즈미는 세계 최초의 양적완화정책을 폈고, 아베도 제2차 양적완화를 폈으니 유사한 궤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정책은 정반대로 고이즈미(또 아베 1차내각까지)는 재정건전화정책이었으나, 아베는 기동적재정정책으로 각기 긴축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대 방향을 지향하였다. 끝으로 구조개혁, 박상준의 평가는 냉정하거나 또는 시니컬하다. 장기적 성장전략이라는 것은 어느 내각에서나 강조되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구조개혁 역시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불황터널에 의하면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의 초점은 '우정민영화'였는데, 고이즈미는 이를 위해 내각해산을 불사하고, 국민의 여론을 모아 압승하는 소위 '고이즈미극장'을 벌여 대성공을 한다. 하지만 그 실 내용은 정부보유 지분의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으로 여전히 우정은 정부가 압도적 대주주라는 것.
3. 아베의 재기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아베1차내각이 붕괴하고 아베는 사라지는가 했는데, 2011년 대지진 이후 211명의 국회의원이 '증세에 의존하지 않는 부흥재원을 추구하는 회'를 설립하여, 대규모 국채발행과 일본은행의 인수를 주장하였는데, 놀랍게도 민주당 113명, 자민당 65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대표로 자민당의 실패한 정치인 아베가 선임되었다. 그 배경이 몹시 궁금한데, 경제학 책이라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좀 아쉽다.
4. 다케나카 헤이조
케이오 대학 교수 출신인데, 고이즈미1차내각에서 경제정책담당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을 역임. 현재의 한국식으로 말하면 기획재정부장관과 금융위원장을 겸임한 것이고, 예전 한국식으로 말하면 경제기획원장관과 재무부장관을 겸임한 것. 여튼 막강한 힘을 갖고 소위 '성역없는 개혁'을 진두지휘했는데, 그가 최근 낸 책에서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장기 성장 개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
5. 원샷법
박상준은 일본에서는 원샷법 제정에 반발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재벌의 후계작업 과정에 악용될 우려때문에 상당한 반발이 있다고 지적.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이법의 내용과 입법과정을 좀 지켜본 바로는 크게 재벌에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있다.
우선 이 글의 첫부문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지지는 정책의 추진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의 원샷법 첫 수혜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 사이의 화력발전사업에서의 신규합작법인 설립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승인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원샷법 첫 수혜기업으로 한화케미컬, 유니드, 동양물산기업 세개 회사의 사업재편계획이 승인되었는데, 김관영의원이 국감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중 유니드와 동양물산기업 두 기업은 모두 대통령의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들이었다. 유니드는 대통령의 이종조카가 부사장이고, 동양물산기업은 사촌형부가 오너. 워낙에 엽기적인 정치상황이 전개되어 이정도로는 별 감각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관계를 알고 선정했든, 모르고 선정했든 산자부의 일처리는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은 첫 시작부터 코메디가 되버린 느낌.
6. 여성의 경제참여
소위 경력단절을 나타내는 M-shape 여성 취업율 차트는 일본이 덜 뚜렷. 그런데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의 '여성의 활약이 보이는가 사이트 女性の活躍「見える化」サイト'. 기업별 남여직원비율을 게시하는데, 관리직과 임원직 여성 비율도 표시. 또 일본 게이단렌의 사이트는 '여성의 활약 女性の活躍', 여기에서는 각사별로 女性の役員・管理職登用等に関する自主行動計画이라는 명칭으로 각사가 향후 계획을 게시.
한국의 경우도 여성의 경제참여율 자체는 많이 높아졌지만, 소위 유리천정이라고 하는 상급직 여성비율이 너무도 낮은 것을 고려해볼 때 참고할 만
7. 엔화 안전자산
박상준은 충격이 올 때마다, 엔화가 강해지는 현상에 대해 '왜 엔화가 안전자산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썼는데, 나 역시 이게 정말 궁금하다. 그 현상을 설명하는 논거는 주로 "일본 국채는 GDP 대비 200% 이상으로 OECD 국가중 가장 높지만, 그 국채는 주로 일본의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고, 일본의 금융기관은 일본의 가계의 자금을 주로 운용"이라는 것인데, 이게 난 잘 납득이 안간다. 저렇게 엄청난 국채를 깔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신뢰가 확 사라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국채를 팔자라고 줄을 설 것 같은데, 국채 보유자가 외국금융기관이 아니고 국내금융기관이라고 하는게 그토록 큰 행동의 차이를 보일까? 잘 모르겠다.
8. 중앙은행 총재
일본은행 총재의 임면에 관한 약간의 에피소드. 일본 역시 선진국답게 중앙은행 총재는 양원의 동의를 받아 내각이 임명한다 (부총재와 심의위원도 마찬가지이다). 2008년 일본은행 총재로 당시 부총재였던 무토가 추천되었는데, 참의원에서 부결. 특별한 하자는 없었으나 무토가 대장성출신이라는 것 (우리나라 기재부). 그러니까 기재부 출신은 부총재까지는 몰라도 총재는 곤란하다는 국회의 선언.
반면 지금 세개의 화살 중 하나인 소위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펴고 있는 구로다는 2013년 초 아시아개발은행총재였는데, 무토와 마찬가지로 대장성출신. 그래서 어렵지 않겠느냐는 설이 많았는데,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일본경제의 최대과제로 공공연히 선언하였고, 민주당 역시 자격이 되면 대장성 출신이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변화에 힘입어 무난히 의회 동의를 받아 일본은행 총재 취임. 인물차이보다 상황의 차이, 역시 인사는 운칠기삼.
9. 청년실업
한국과 일본의 (시차를 둔) 유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기사와 분석이 있다, 인구추이, 생산성, 경제성장율 등등.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몇 있는데 하나는 한국의 일본에 비해 양호한 기업부채이고 또 하나는 일본에 비해 암울한 청년실업률. 이것 역시 궁금한 영역이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읽어도 잘 잡히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든가, 대중소기업 초임 격차가 한국이 일본에 비해 너무 심하다든가 하는 것들은 뭔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 이건 더 고민해야 할 듯.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탈 빈민촌 정책 효과의 증거를 찾아 나선 경제학자들.....
1. 배경
스타 중의 스타 경제학자라고 할 Raj Chetty의 빈민촌에 대한 이웃 효과 분석 프로젝트는 작년에 미국의 언론을 떠들석하게 한 바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연구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사실 빈민촌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나중에 가난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관찰연구에서 발견되지만, 이런 관찰로는 이것이 이웃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의 효과에 대한 정책적 도전과 그 정책의 인과적 증거를 찾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길고도 창의적인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해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 써먹을 때를 위해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사실 빈민촌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나중에 가난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관찰연구에서 발견되지만, 이런 관찰로는 이것이 이웃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의 효과에 대한 정책적 도전과 그 정책의 인과적 증거를 찾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길고도 창의적인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해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 써먹을 때를 위해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2. Moving to Opportunity
이번에 알게된 것인데, 미국에서 정책 효과의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 Randomize Controlled Trials를 시도한 역사가 상당하다. 빈민촌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토부에 해당하는 미국 주택 및 도시개발부(U.S.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HUD))는 "기회를 찾아 이사가기 Moving to Opportunity (MTO)"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아 국회 언저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은 <주택 및 공동체 개발법 Housing and Community Development Act of 1992 (H.R. 5334 (102nd))>의 152조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 선례를 남긴 미국 국회에 경의를.
이 프로젝트에 따라 1994~1998년간에 미국 5개 도시(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LA, 뉴욕) 빈민촌의 낙후된 공공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였다. 여기에 당첨된 한그룹은 빈민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Experiment 그룹), 당첨된 또 한그룹은 이사 지역에 대한 조건 없이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Section 8 그룹), 탈락한 마지막 그룹에게는 바우처를 포함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Control 그룹).
아 국회 언저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은 <주택 및 공동체 개발법 Housing and Community Development Act of 1992 (H.R. 5334 (102nd))>의 152조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 선례를 남긴 미국 국회에 경의를.
이 프로젝트에 따라 1994~1998년간에 미국 5개 도시(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LA, 뉴욕) 빈민촌의 낙후된 공공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였다. 여기에 당첨된 한그룹은 빈민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Experiment 그룹), 당첨된 또 한그룹은 이사 지역에 대한 조건 없이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Section 8 그룹), 탈락한 마지막 그룹에게는 바우처를 포함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Control 그룹).
3. 중간평가(4~7년)
MTO에 대한 첫 분석은 여러 팀에서 수행되었는데, 그 중에서 경제적 성과와 관련해서는 NBER이 맡았고, 하버드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들인 Lawrence F. Katz, Jeffrey R. Kling 및 Jeffrey B. Liebman이 담당하였다. 아래 표에서 보듯 다양한 항목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견되었지만,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게도 성인들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표의 출처는 Kats-Kling-Liebman (2001), “Moving to Opportunity in Boston: Early Results of a Randomized Mobility Experime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16, pp. 607-654. 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로 다운 가능)
이것은 이들의 다른 논문에 등장하는 그래프로도 확인이 된다. 각 시기별로 비교해 보아도 세 그룹 사이에 고용율의 뚜렷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는 Kling-Liebman-Katz (2007), "Experimental Analysis of Neighborhood Effects," Econometrica, vol. 75, pp. 83–119. 이 것 역시 공개된 버젼은 NBER에서)
4. 최종평가(10~15년)
최종평가 역시 NBER에서 맡았는데, 이들이 HUD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성인그룹은 10~15년의 장기적 효과로도 소득이나, 고용율에서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Sanbonmatsu et al. (2011), Moving to Opportunity for Fair Housing Demonstration Program: Final Impacts Evaluation,
U.S. HUD)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들(15~20세) 역시 이제 10여년이 경과하여 성인이 되어 경제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차트로 보면 더 뚜렷한데, MOT 프로그램으로 추첨을 한 후 43분기가 경과하는 동안 고용율을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였지만, 각 그룹의 모습은 서로 거의 흡사하였다.
5. It Ain't Over 'til It's Over
첫 MTO가 1994년에 도입되어, 14년이 경과된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이용한 최종보고서가 나왔지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호프 체티가 나시 나섰다. 이번에는 2012년까지 데이터를 확장하여 최종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청소년 이전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긴 시점간 효과를 구하기 위해 체티의 장기인 소득세 자료를 MTO와 링크시켜서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Chetty-Hendren-Katz (forthcoming), "The Effects of Exposure to Better Neighborhoods on Children:
New Evidence from the Moving to Opportunity Experiment," American Economic Review, 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
결국 이들이 밝혀낸 MTO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는 이사 시기에 13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에 있어서는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통적인 Section 8 그룹보다, Experiment 그룹에서 더욱 강하였다.
결국 이들이 밝혀낸 MTO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는 이사 시기에 13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에 있어서는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통적인 Section 8 그룹보다, Experiment 그룹에서 더욱 강하였다.
6. 발상의 전환
며칠 전 뉴욕타임즈에 "나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해롭다 Growing Up in a Bad Neighborhood Does More Harm Than We Thought"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자 Justin Wolfers가 자신이 지도한 대학원생 Eric Chyn의 박사논문을 소개한 것인데, 또 하나의 스타탄생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Chyn은 'MTO는 교과서적인 형태로 RCT가 진행되었지만,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바우처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큰 그룹 아닐까? 그래서 추첨에서 떨어져서 Control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도 빈민촌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가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러한 환경개선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덜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
Chyn은 'MTO는 교과서적인 형태로 RCT가 진행되었지만,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바우처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큰 그룹 아닐까? 그래서 추첨에서 떨어져서 Control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도 빈민촌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가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러한 환경개선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덜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Chyn에게는 다행히도(?) 1995~98년간에 시카고 주택청은 빈민들이 집중 거주하는 고층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택 바우처를 주었다. 그래서 자연실험에 의해 빈민촌을 떠나 이주한 그룹과 빈민촌에 머무른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 두 그룹은 각 구성원들이 어떤 종류로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훌륭한 실험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고용율과 소득 모두 콘트롤 그룹에 비해 실험그룹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푸른색은 Chyn이 분석한 자연실험의 결과이고, 오른쪽 두개는 Sanbonmatsu et al의 MTO 최종보고서에 나타난 Section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녹색)와 실험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노란색) 결과이다. 그리고 왼쪽에서 두번째 와인색은 MTO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카고 주택공사가 진행한 Section 8그룹과 통제그룹 사이의 비교이다.
7. 부러움과 배울 것
일단 무엇보다도 정책효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참 부럽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무려 이십여년 전에 주택정책에 RCT 방식을 도입한 것도 놀랍고, 관련된 법에 해당 정책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명시한 것도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일이고, 그 보고서의 작성주체가 세계적인 학자들이고, 또 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서 '이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명시하는 것도 용감한 일이고, 그리고 학자들이 끝없이 자료를 파헤치면서 새로운 해석을 추가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
여기에서 빈민촌으로 문제가 되는 주택은 대도시에 환경이 안좋은 지역에 위치한 낡은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은 워낙에 공공임대주택 보급비율이 낮아 이를 높이려는 계획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급량 확대와 더불어 공공임대주택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주민들과 믹스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부실에 의한 노후화, 슬럼화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리고 울퍼스가 뉴욕타임즈 기고문 마지막에 남긴 멘트도 재미있다. 정부의 사회정책 수행능력에 회의적인 보수파는 Chyn의 글을 통해서, '역시 정책에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꼭 정책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리버럴들은 '이런 실험을 통해 사회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지원자가 아닌 전체 모집단에 적용하는 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생각할 것.
8. 기타
체티가 손대는 수많은 영역 중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기회의 평등 프로젝트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인데, 1부가 2014년초에 큰 화제가 되었던 "세대간 이동가능성 Intergenerational Mobility"이였고, 이것은 내가 간략하게 정리해 둔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한 "이웃의 효과 Causal Effects of Neighborhoods"는 그 2부에 해당.
아 그리고 내 블로그에 보니, Eric Chyn의 또 다른 연구를 흥미롭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BP가 2010 멕시코만에서 대형 사고로 해안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 또 어떤 멋진 작품을 낼지 기대가 된다.
아 그리고 내 블로그에 보니, Eric Chyn의 또 다른 연구를 흥미롭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BP가 2010 멕시코만에서 대형 사고로 해안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 또 어떤 멋진 작품을 낼지 기대가 된다.
2016년 2월 6일 토요일
남재희 선생 장서 대방출에서 건진 몇권의 책
일주일 쯤 전 한겨레신문사에서 남재희 선생의 애장서 2만권을 사옥에 진열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는데, 행사 마지막날 다녀왔다. 아 정말 엄청난 콜렉션이었다..
남선생님이 백과사전적 인물인 것이, 사회과학,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여행을 가리지 않고, 단행본과 학술지, 대중잡지, 화보로 다양했고, 언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온갖 전문 분야별 사전도 있었고, 아 이런 책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다.
도서 판매 마감 직전이어서 이미 좋은 책은 다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 탐사였고, 책 열 몇권을 구입했고 횡재했다는 느낌이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고 간 것이라 더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지만, 에이 나 말고 다른 이한테도 보석을 발견할 기회를 남겨줘야지 하는 생각에 그 정도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느라, 책들이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꺼내서 차분히 살펴보았다.
1. 워싱턴 DC의 추억
20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DC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의회도서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이었다. 그래서 고른 두권.
우선 Treasures of the Library of Congress (1980)는 의회도서관에 근무했던 Charles Goodrum의 작품으로 놀랄만한 화보로 가득찬 318페이지의 의회도서관 소개서로 예컨데 아래 사진은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Petrus Apianus가 1540년에 쓴 천제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Astronomicum Caesareum으로 저 페이지는 6층의 레이어로 돌아가는 서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아래 사진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책 옆면에 금박으로 그림을 새긴 책으로 왼쪽은 Illustrations of Baptismal Fonts (1844)이고, 오른쪽은 The Life and Remains of Henry Kirke White (1825).
다음으로 Hail to the Candiate는 1992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편찬한 미국 대통령 선거 홍보물의 역사로 이것도 기본적으로 화보집에 가깝다.
예를 들면 위 그림에서 제일 왼편부터 보면 데디 루스벨트 지지자들이 1912년 대선에서 옷에 달던 핀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루스벨트의 유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상징한다고. 두번째 것은 링컨이 1864년 재선에 나서면서 사용한 포스터로 공화당이 아닌 National Union Party 소속임이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50년대 TV 중계가 보급되자 민주당 측에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적어 나눠준 팜플렛. 내용이 재미있다: 시간에 맞춰 일찍오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너무 TV 카메라 주목하지 말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은 공화당의 쿨리지 후보가 너무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사진을 시가에 부착했다고.
2. 위대한 언론
다음 세권은 각각 워싱턴 포스트 100주년 기념, 더 타임즈 200주년 기념 및 포린 어페어스 75주년 기념과 관련된 것들이다.
먼저 The Washington Post: The First 100 Years (1977)은 포스트에 23년간 근무했던 Chalmers M. Roberts의 역사서로, 500쪽에 가까워서 아마도 읽을 기회가 없겠지만 그저 샀다. 여기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왼쪽 페이지는 1971년 대법원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의 손을 들어준 기념비적인 판결보도와 그것을 Katharine Graham과 Benjamin C. Bradlee가 보면서 웃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미국사에서 언론이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유일한 사례인, 워터게이트 사건. 제일 위의 두 남자가 Bob Woodward와 Carl Bernstein이고, 아래는 닉슨대통령과 녹음테이프를 연결하는 절묘한 삽화.
위대한 언론은 인물을 바꿔 가면서 끝없이 발전해왔는데, 150주년에 다시 역사서가 나온다면 Jeff Bezos의 실험은 어떻게 묘사될지.
다음은 The Times, Past Present Future: To Celerbrate Two Hundred Years of Publication (1985), 이것은 앞의 포스트 역사서보다 훨씬 가볍다 (분량도 형식도). 더 타임즈는 1785년에 처음 발간되었는데, 사진이 실린 것은 1922년에 이르러서였다. 아래는 첫 사진 페이지.
또 지난 200년간 타임즈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재밌는 것은 1820년 캐롤라인 여왕에 대한 재판 즈음하여 등장한 그림인데, 왼편은 곰으로 표현된 여왕의 정부이고, 오른편은 여왕의 변호사 Henry Brougham인데 그의 방패의 문양이 바로 더 타임즈.
마지막 Foreign Affaris(Sep/Oct 1997)는 그 자체 75주년 기념호이다. 일단 다른 것은 모르겠고, 기념호에 기고한 필자들의 명성만 봐도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 슐레진저, 헌팅튼, 크루그만, 브레진스키, 드러커, 슬로터.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75년간 발행된 가장 중요한 책 소개하는 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남재희 선생이 뜯어낸듯 (그리고 조금 있다 이렇게 뜯겨진 서평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읽었던 책들
아래 세권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예전에 한글판으로 다 읽었던 책들이다.
우선 Herbert Stein의 책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그래도 닉슨과 포드 시절 CEA 의장이었던 이의 <대통령의 경제학 (김영사)>이여서, 그리고 워터게이트의 주인공 Bob Woodward의 또하나의 걸작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 손)>는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 그리고 남재희 선생이 골프 책도 읽는구나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Jack Nicklaus의 <골프 마이 웨이 (팩컴북스)>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그래서 샀다.
그런데 Woodward의 책에 몇장의 종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내가 짐작하건데, 남선생은 1994년 12월 Economist의 올해의 책 기사를 통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샀고, 그후 2015년에 The Guardian과 <한겨레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오려서 책에 끼워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앞에 말한 Foreign Affairs에서 사라진 75년간의 명서 소개는 이런 방식으로 다 분해되서 각각의 책에 끼워져 있지 않을까 추측.
4. 미국 경제사
이번에 구입한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The History of American Business & Industry (1972). 딱딱한 경제사 책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내 처지에 그냥 그때 그때 이리저리 넘겨가며 짧은 아티클들과 화보들을 보면 재미있을 듯.
한 장면만 소개하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 골드러시 시대에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포스터(1849), 대륙횡단열차로 서부로 가는 노동자들(1869), 헨리 포드의 자동쟁기(automobile plow, 1908), 우라늄탄광(1940년대후반), 그리고 달에 도착한 인류.
이 책에는 또한 현대경제학을 만든 Paul Samuelson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몇 구절만 보면 "경제사 없는 미국사는, 햄릿이 등장하지 않는 햄릿과 마찬가지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볼수 있는, 공장의 단순한 나사에 지나지 않는 작은 노동자, 그가 조립라인에서 볼트 999를 평생 돌리는 잊을 수 없는 이미지는 노동자의 '소외'에 대해서 허버트 마루쿠제나 청년 맑스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만은, 세일즈맨 일생의 공허함에 대한 슬픈 사례이다.... 때때로 시스템의 역사적 잘못을 인식하는 것은 이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5. 아내를 위하여
끝으로 아래의 네권의 책은 내가 보려고 산 것은 아니고, 디자인과 영국사에 관심있는 토론토 출신 내 아내를 위한 것들.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Illustrated Guide to Britain (2nd ed. 1976), Treasures of Canada (1995, 책 속의 건물은 내 아내의 모교인 토론토 대학이다), The Tower of London in the History of the Nation (1972), The Elements of Style: A Practical Encyclopedia of Interior Architectural Details, From 1485 to the Present (1991).
------------
어떻게 하다보니, 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대개가 서재에서 읽을 책들이라기 보다는 소파나 침대 옆 테이블에 두고 뒤적일 책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와 아내의 책읽는 취향이 많이 달라서, 내가 산 책에 아내가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데, 이번에는 여러 권 같이 볼 수 있을 듯.
끝으로 남재희 선생께 경의와 감사를!!!
남선생님이 백과사전적 인물인 것이, 사회과학,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여행을 가리지 않고, 단행본과 학술지, 대중잡지, 화보로 다양했고, 언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온갖 전문 분야별 사전도 있었고, 아 이런 책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다.
도서 판매 마감 직전이어서 이미 좋은 책은 다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 탐사였고, 책 열 몇권을 구입했고 횡재했다는 느낌이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고 간 것이라 더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지만, 에이 나 말고 다른 이한테도 보석을 발견할 기회를 남겨줘야지 하는 생각에 그 정도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느라, 책들이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꺼내서 차분히 살펴보았다.
1. 워싱턴 DC의 추억
20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DC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의회도서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이었다. 그래서 고른 두권.
우선 Treasures of the Library of Congress (1980)는 의회도서관에 근무했던 Charles Goodrum의 작품으로 놀랄만한 화보로 가득찬 318페이지의 의회도서관 소개서로 예컨데 아래 사진은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Petrus Apianus가 1540년에 쓴 천제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Astronomicum Caesareum으로 저 페이지는 6층의 레이어로 돌아가는 서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아래 사진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책 옆면에 금박으로 그림을 새긴 책으로 왼쪽은 Illustrations of Baptismal Fonts (1844)이고, 오른쪽은 The Life and Remains of Henry Kirke White (1825).
다음으로 Hail to the Candiate는 1992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편찬한 미국 대통령 선거 홍보물의 역사로 이것도 기본적으로 화보집에 가깝다.
예를 들면 위 그림에서 제일 왼편부터 보면 데디 루스벨트 지지자들이 1912년 대선에서 옷에 달던 핀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루스벨트의 유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상징한다고. 두번째 것은 링컨이 1864년 재선에 나서면서 사용한 포스터로 공화당이 아닌 National Union Party 소속임이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50년대 TV 중계가 보급되자 민주당 측에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적어 나눠준 팜플렛. 내용이 재미있다: 시간에 맞춰 일찍오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너무 TV 카메라 주목하지 말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은 공화당의 쿨리지 후보가 너무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사진을 시가에 부착했다고.
2. 위대한 언론
다음 세권은 각각 워싱턴 포스트 100주년 기념, 더 타임즈 200주년 기념 및 포린 어페어스 75주년 기념과 관련된 것들이다.
먼저 The Washington Post: The First 100 Years (1977)은 포스트에 23년간 근무했던 Chalmers M. Roberts의 역사서로, 500쪽에 가까워서 아마도 읽을 기회가 없겠지만 그저 샀다. 여기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왼쪽 페이지는 1971년 대법원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의 손을 들어준 기념비적인 판결보도와 그것을 Katharine Graham과 Benjamin C. Bradlee가 보면서 웃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미국사에서 언론이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유일한 사례인, 워터게이트 사건. 제일 위의 두 남자가 Bob Woodward와 Carl Bernstein이고, 아래는 닉슨대통령과 녹음테이프를 연결하는 절묘한 삽화.
위대한 언론은 인물을 바꿔 가면서 끝없이 발전해왔는데, 150주년에 다시 역사서가 나온다면 Jeff Bezos의 실험은 어떻게 묘사될지.
다음은 The Times, Past Present Future: To Celerbrate Two Hundred Years of Publication (1985), 이것은 앞의 포스트 역사서보다 훨씬 가볍다 (분량도 형식도). 더 타임즈는 1785년에 처음 발간되었는데, 사진이 실린 것은 1922년에 이르러서였다. 아래는 첫 사진 페이지.
또 지난 200년간 타임즈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재밌는 것은 1820년 캐롤라인 여왕에 대한 재판 즈음하여 등장한 그림인데, 왼편은 곰으로 표현된 여왕의 정부이고, 오른편은 여왕의 변호사 Henry Brougham인데 그의 방패의 문양이 바로 더 타임즈.
마지막 Foreign Affaris(Sep/Oct 1997)는 그 자체 75주년 기념호이다. 일단 다른 것은 모르겠고, 기념호에 기고한 필자들의 명성만 봐도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 슐레진저, 헌팅튼, 크루그만, 브레진스키, 드러커, 슬로터.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75년간 발행된 가장 중요한 책 소개하는 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남재희 선생이 뜯어낸듯 (그리고 조금 있다 이렇게 뜯겨진 서평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읽었던 책들
아래 세권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예전에 한글판으로 다 읽었던 책들이다.
우선 Herbert Stein의 책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그래도 닉슨과 포드 시절 CEA 의장이었던 이의 <대통령의 경제학 (김영사)>이여서, 그리고 워터게이트의 주인공 Bob Woodward의 또하나의 걸작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 손)>는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 그리고 남재희 선생이 골프 책도 읽는구나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Jack Nicklaus의 <골프 마이 웨이 (팩컴북스)>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그래서 샀다.
그런데 Woodward의 책에 몇장의 종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내가 짐작하건데, 남선생은 1994년 12월 Economist의 올해의 책 기사를 통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샀고, 그후 2015년에 The Guardian과 <한겨레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오려서 책에 끼워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앞에 말한 Foreign Affairs에서 사라진 75년간의 명서 소개는 이런 방식으로 다 분해되서 각각의 책에 끼워져 있지 않을까 추측.
4. 미국 경제사
이번에 구입한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The History of American Business & Industry (1972). 딱딱한 경제사 책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내 처지에 그냥 그때 그때 이리저리 넘겨가며 짧은 아티클들과 화보들을 보면 재미있을 듯.
한 장면만 소개하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 골드러시 시대에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포스터(1849), 대륙횡단열차로 서부로 가는 노동자들(1869), 헨리 포드의 자동쟁기(automobile plow, 1908), 우라늄탄광(1940년대후반), 그리고 달에 도착한 인류.
이 책에는 또한 현대경제학을 만든 Paul Samuelson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몇 구절만 보면 "경제사 없는 미국사는, 햄릿이 등장하지 않는 햄릿과 마찬가지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볼수 있는, 공장의 단순한 나사에 지나지 않는 작은 노동자, 그가 조립라인에서 볼트 999를 평생 돌리는 잊을 수 없는 이미지는 노동자의 '소외'에 대해서 허버트 마루쿠제나 청년 맑스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만은, 세일즈맨 일생의 공허함에 대한 슬픈 사례이다.... 때때로 시스템의 역사적 잘못을 인식하는 것은 이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5. 아내를 위하여
끝으로 아래의 네권의 책은 내가 보려고 산 것은 아니고, 디자인과 영국사에 관심있는 토론토 출신 내 아내를 위한 것들.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Illustrated Guide to Britain (2nd ed. 1976), Treasures of Canada (1995, 책 속의 건물은 내 아내의 모교인 토론토 대학이다), The Tower of London in the History of the Nation (1972), The Elements of Style: A Practical Encyclopedia of Interior Architectural Details, From 1485 to the Present (1991).
------------
어떻게 하다보니, 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대개가 서재에서 읽을 책들이라기 보다는 소파나 침대 옆 테이블에 두고 뒤적일 책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와 아내의 책읽는 취향이 많이 달라서, 내가 산 책에 아내가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데, 이번에는 여러 권 같이 볼 수 있을 듯.
끝으로 남재희 선생께 경의와 감사를!!!
2015년 12월 5일 토요일
OECD Revenue Statistics 2015
지난 12월 3일 (목) OECD Revenue Statistics 1965~2014 가 발간되었다.
아래 몇가지 통계만 정리해 둔다. 이하에서 총세수는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는 총부담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1. OECD Average Tax-to-GDP ratio
국제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34.1%에서 2009년 32.7%로 하락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4년 34.4%로 최고치였던 2000년의 34.2%를 넘어섰음 (이는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임).
2. 고부담국, 저부담국
2014년 한국의 부담율은 24.6%로 멕시코, 칠레와 더불어 저부담3국이었다. 고부담국은 덴마크가 50.9%로 1위였고 그 뒤를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가 차지.
3. 세목별 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게 여러 표에 쪼개져 있어서 정리하는데 애먹었는데, OECD의 경우 2007년 경제위기 이후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OECD 조세정책센터장인 파스칼 생-아망은 “2007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부담 증가의 대부분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소득세의 증가를 통해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기업으로 하여금 공정한 몫의 세부담을 하게 할 필요성이 크다”라고 입장을 천명.
반면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법인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이것으 워낙에 한국의 기업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또 법인의 총부담은 법인세 외에도 사회보험료 중 법인기여분, 페이롤 텍스에서의 법인기여분(통상 50%)를 고려하면 그 차이는 대폭 축소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Source: OECD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와 관련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본문은 비회원의 경우 온라인으로만 읽을 수 있으면, PDF 파일을 다운받으려면 억세스 권한이 있어야 한다. (주요대학 도서관 멤버쉽이 있으면 그걸 통해서 구하면 됨).
아래 몇가지 통계만 정리해 둔다. 이하에서 총세수는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는 총부담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1. OECD Average Tax-to-GDP ratio
국제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34.1%에서 2009년 32.7%로 하락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4년 34.4%로 최고치였던 2000년의 34.2%를 넘어섰음 (이는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임).
2. 고부담국, 저부담국
2014년 한국의 부담율은 24.6%로 멕시코, 칠레와 더불어 저부담3국이었다. 고부담국은 덴마크가 50.9%로 1위였고 그 뒤를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가 차지.
3. 세목별 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게 여러 표에 쪼개져 있어서 정리하는데 애먹었는데, OECD의 경우 2007년 경제위기 이후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OECD 조세정책센터장인 파스칼 생-아망은 “2007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부담 증가의 대부분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소득세의 증가를 통해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기업으로 하여금 공정한 몫의 세부담을 하게 할 필요성이 크다”라고 입장을 천명.
반면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법인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이것으 워낙에 한국의 기업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또 법인의 총부담은 법인세 외에도 사회보험료 중 법인기여분, 페이롤 텍스에서의 법인기여분(통상 50%)를 고려하면 그 차이는 대폭 축소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Source: OECD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와 관련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본문은 비회원의 경우 온라인으로만 읽을 수 있으면, PDF 파일을 다운받으려면 억세스 권한이 있어야 한다. (주요대학 도서관 멤버쉽이 있으면 그걸 통해서 구하면 됨).
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금융위기의 정치적 귀결 (차트 읽기)
금융위기는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독일 학자들의 최근 연구 결과를 살펴봤다. 흥미롭고 또 불안하고...
1. 데이터
1870~2014년까지 20개 선진민주국가에서의 800여건의 선거를 분석, 이 기간동안 100건 이상의 금융위기가 발생.
2. 극좌우파의 부상
이 차트는 금융위기 직전 5년간의 극좌파와 극우파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인데, 검은색의 극우파는 위기전에 비해 위기후 두배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흰색의 극좌파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두번째 차트는 2004, 2009, 2014년 세차례에 걸쳐 유럽 주요국가의 극우파와 우파파퓰리스트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으로 2007~8년 위기 전후를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크게 상승해서 2004년에 비해 2014년에는 평균 세배가 되었다.
이번 차트는 금융위기 이후 5년간에 걸친 극우파의 득표율의 추이 (붉은선은 평균치, 회색은 90%신뢰구간).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차대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봐도 대차 없음.
3. 정치의 파편화 또는 정부활동의 난관 심화
금융위기는 전반적으로 정치를 파편화시키고, 정부활동(governing)을 어렵게 만들었다. 위기 이후 특성을 보면 집권당의 득표율은 낮아지고(차트 1행), 집권하지 않은 정당의 득표율은 상승하고(2행),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3행), 의회에 진출한 정당의 개수는 늘어난다(4행).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2차대전 이전보다는 2차대전 이후 기간에 더 뚜렷하였다.
(참고로 3행의 정칙적 양극화(fractionalization)은 다른 당에 속한 의원이 다른 방향으로 투표하는 것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현대정치학에서 많이 분석하는 것)
정부활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또 하나의 증거는 당연하게도 위기 전에 비해 위기 이후에, 총파업(하늘색), 폭동(흑색), 시위(흰색)가 모두 크게 늘어났다는 것, 전체적으로 장외 저항활동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다음 자료는 이상의 장외 저항활동을 위기후 5년간에 걸쳐 추이를 본 것인데, 4년차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특히 2차대전 이후 기간동안에는 이러한 증가가 뚜렸했다.
마지막 차트는 이러한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본 것인데, 대략 10년이 경과하면 금융위기의 정치적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4. 금융위기의 특성
또 금융위기를 수반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수반하지 않은 경기침체의 경우 전자가 후자에 비해 뚜렷하게 더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들은 그 이유로 두가지를 제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사후적 극복의 정치적 과정도 매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보면, 예컨데 보수정당 하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위기 발생시점의 집권당에게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동하겠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거리의 소요가 심화되어 위기극복과 관리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라는 .......
* 원 논문은 유료자료로, Funke, M, M Schularick and C Trebesch (2015) “Going to extremes: Politics after financial crises, 1870-2014”, CEPR, Discussion Paper No. 10884. 대중적인 소개는 같은 저자들이 VoxEu에 올린 것 : The political aftermath of financial crises: Going to extremes 참조.
두번째 차트는 2004, 2009, 2014년 세차례에 걸쳐 유럽 주요국가의 극우파와 우파파퓰리스트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으로 2007~8년 위기 전후를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크게 상승해서 2004년에 비해 2014년에는 평균 세배가 되었다.
이번 차트는 금융위기 이후 5년간에 걸친 극우파의 득표율의 추이 (붉은선은 평균치, 회색은 90%신뢰구간).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차대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봐도 대차 없음.
3. 정치의 파편화 또는 정부활동의 난관 심화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2차대전 이전보다는 2차대전 이후 기간에 더 뚜렷하였다.
(참고로 3행의 정칙적 양극화(fractionalization)은 다른 당에 속한 의원이 다른 방향으로 투표하는 것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현대정치학에서 많이 분석하는 것)
정부활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또 하나의 증거는 당연하게도 위기 전에 비해 위기 이후에, 총파업(하늘색), 폭동(흑색), 시위(흰색)가 모두 크게 늘어났다는 것, 전체적으로 장외 저항활동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다음 자료는 이상의 장외 저항활동을 위기후 5년간에 걸쳐 추이를 본 것인데, 4년차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특히 2차대전 이후 기간동안에는 이러한 증가가 뚜렸했다.
마지막 차트는 이러한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본 것인데, 대략 10년이 경과하면 금융위기의 정치적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4. 금융위기의 특성
- 대중들은 금융위기는 정책실패, 도덕적 해이, 정실주의 등 내생적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비금융위기는 유가나 전쟁처럼 외생적이고 회피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 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이 비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에 비해 사회적 파장이 더 크다는 것, 예컨데 채권자와 채무자의 분쟁격화,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금융부문의 구제금융 등.
5. 함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사후적 극복의 정치적 과정도 매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보면, 예컨데 보수정당 하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위기 발생시점의 집권당에게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동하겠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거리의 소요가 심화되어 위기극복과 관리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라는 .......
* 원 논문은 유료자료로, Funke, M, M Schularick and C Trebesch (2015) “Going to extremes: Politics after financial crises, 1870-2014”, CEPR, Discussion Paper No. 10884. 대중적인 소개는 같은 저자들이 VoxEu에 올린 것 : The political aftermath of financial crises: Going to extremes 참조.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 최저임금과 알란 크루거
며칠 전 미국 CBS에서 개최한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예상대로 최저임금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특이한 것은 사회자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 알란 크루거의 주장에 대해 후보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이었다. 크루거는 두달전 뉴욕타임즈의 기고문 <최저임금: 얼마나 높으면 지나치게 높은 것인가?>라는 글에서 시급 12달러는 저소득노동자들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이 더 크지만, 15달러는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일로서, 일부 소득이 높은 도시나 주에서는 고용감소없이 흡수할 수 있겠지만, 전 미국에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바람직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샌더스와 오맬리는 크루거에 대한 언급없이 15달러 생활임금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쭉 얘기했고, 클린튼은 크루거를 인용하면서 정확히 그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맬리가 갑자기 클린튼의 말을 가로채면서 발생했다.
내가 노동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저임금에 관해서 미국 또는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업적을 꼽으라면 크루거가 데이빗 카드와 함께 발표한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바니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사례 연구 (1994, A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이듬해 확장되어 <신화와 측정: 최저임금의 새로운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프린스턴대에서 단행본 출판되었다)
며칠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알란 매닝은 최저임금과 실업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관념이 90년대에 변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를 들 정도였다.
나야 전문가가 아니니 이 연구와 그 후 촉발된 수많은 논쟁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더 엄청난 전환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마일드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서 괜히 쭈뼜쭈뼜해지는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랄까.
그리고 크루거는 쭉 학교에 있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경제정책실장 (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for economic policy)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chairman of the White Hous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바도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말실수였겠지만) 오맬리는 크루거를 '월스트리트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우리식 용법이라면, '재벌하수인' 정도의 표현이겠지). 클린트의 표현대로 이것 정말 '옳지 않다'.
아참, 그리고 토론회 직후 최저임금에 대해 가장 민감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2백만 조합원의 서비스산업노조(Service Employment International Union)의 공식 지지선언을 끌어냈다. SEIU는 집행부 투표 후 성명서에서,
라고 밝혔다.
특이한 것은 사회자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 알란 크루거의 주장에 대해 후보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이었다. 크루거는 두달전 뉴욕타임즈의 기고문 <최저임금: 얼마나 높으면 지나치게 높은 것인가?>라는 글에서 시급 12달러는 저소득노동자들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이 더 크지만, 15달러는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일로서, 일부 소득이 높은 도시나 주에서는 고용감소없이 흡수할 수 있겠지만, 전 미국에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바람직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샌더스와 오맬리는 크루거에 대한 언급없이 15달러 생활임금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쭉 얘기했고, 클린튼은 크루거를 인용하면서 정확히 그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맬리가 갑자기 클린튼의 말을 가로채면서 발생했다.
오맬리: 더 이상 월스트리트 경제학자의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클린튼: 월스트리 경제학자가 아니...
오맬리: 우리가 경청해야 할 것은 ...
클린튼: 옳지 않아요. 크루거는 진보적 경제학자예요.
O’Malley: I think we need to stop taking our advice from economists on Wall Street …
Clinton: He’s not Wall Street.
O’Malley: … And start taking advice …
Clinton: That’s not fair. He’s a progressive economist.
내가 노동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저임금에 관해서 미국 또는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업적을 꼽으라면 크루거가 데이빗 카드와 함께 발표한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바니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사례 연구 (1994, A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이듬해 확장되어 <신화와 측정: 최저임금의 새로운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프린스턴대에서 단행본 출판되었다)
며칠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알란 매닝은 최저임금과 실업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관념이 90년대에 변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를 들 정도였다.
나야 전문가가 아니니 이 연구와 그 후 촉발된 수많은 논쟁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더 엄청난 전환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마일드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서 괜히 쭈뼜쭈뼜해지는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랄까.
그리고 크루거는 쭉 학교에 있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경제정책실장 (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for economic policy)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chairman of the White Hous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바도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말실수였겠지만) 오맬리는 크루거를 '월스트리트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우리식 용법이라면, '재벌하수인' 정도의 표현이겠지). 클린트의 표현대로 이것 정말 '옳지 않다'.
아참, 그리고 토론회 직후 최저임금에 대해 가장 민감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2백만 조합원의 서비스산업노조(Service Employment International Union)의 공식 지지선언을 끌어냈다. SEIU는 집행부 투표 후 성명서에서,
“힐러리 클린튼은 노동자 가족을 위해 싸우고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입증된 후보이다. 전미국의 SEIU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은 노동자 가족의 보다 낳은 미래를 건설하는 운동의 주체이며, 힐러리 클린튼은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할 것이다." (Hillary Clinton has proven she will fight, deliver and win for working families,” said SEIU President Mary Kay Henry in a statement. “SEIU members and working families across America are part of a growing movement to build a better future for their families, and Hillary Clinton will support and stand with them.)"
라고 밝혔다.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엘리엇 메모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추진 및 엘리엇측의 반대 주장에 대해서 개인적 정리를 위해 메모를 해둔다.
진행 중인 이슈라 그냥 이 페이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형식으로 할 계획. 평이하게 쓸 생각인데 그래도 기업금융, 회사법, 재무회계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최대한 답해보겠다.
1. 합병 방식
-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형식이며, 합병시점에 삼성물산은 해체되고 삼성물산의 자산과 부채는 모두 제일모직에 승계되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는 새롭게 발행된 제일모직의 주식이 그 댓가로 교부된다.
- 이 때, 제일모직의 신주를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얼마나 교부할 것인가하는 것이 합병비율이다. 알려진 바 1:0.35라고 하는 것은 제일모직 주식 한주의 가치가 1이라면 삼성물산 한주의 가치는 0.35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합병 시점에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받게 된다.
- 덩치가 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가끔 눈에 띄는데, 법률적 의미에서 제일모직이 흡수하느냐, 삼성물산이 흡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형태로 하면, 합병시점에 제일모직이 법적으로 소멸되고 삼성물산의 신주가 제일모직 주주에게 교부되는데, 이 때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갖고 있는 주주에게 삼성물산 신주 100주가 부여된다. 최종적으로는 주주 입장에서 그게 그거다.
- 합병 대상 중 한 회사가 비상장회사이고, 다른 한 회사가 상장회사라면, 이때는 어떤 회사가 법적으로 남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통상 상장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상장회사가 법적으로 존속회사가 되어 비상장회사를 흡수하는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소멸되는 회사가 더 큰 경우 뒷문상장이라고 한다. 여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둘 다 상장된 회사이므로 이런 이슈는 없다.
- 좀 곁가지인데 회계적으로는 법적으로 누가 누구를 합병했느냐와 무관하게, 덩치나 등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인수회사와 피인수회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한다고 하더라도 회계적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인수한 것으로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도 있다.
2. 합병 비율의 산정
- 합병 비율에 따라 제일모직의 주주와 삼성물산의 주주가 합병 이후 존속회사의 지분을 얼마나 갖게되는가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이것은 핵심 이슈일 수밖에 없다.
-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합병 등의 특례) 제2항은, "주권상장법인은 합병 등을 하는 경우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합병 등의 가액 (...)에 관한 평가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그리고 <동법시행령> 제176조의5(합병의 요건ㆍ방법 등) 제1항 제1호에서, 계열사인 두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에는 기산일 전 일정기간 주식의 종가를 기준으로 1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합병비율이란 두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고, 측정의 방식은 수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상장법인의 경우 그 회사의 주가에 기반한 시가총액에서 출발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 보도에서는 주가는 기복이 심하므로 두 회사의 순자산가치(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차감한 것)에 기반하여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마치 국제적인 관행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내 판단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주가가 기본이고 순자산가치가 보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회계적으로는 자산으로 처리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 예컨데 SNS 기업의 경우 가입자 수가 회사의 가치에 결정적이겠지만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등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장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가입자수에 대한 가치평가를 별도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주가에 기반한 것보다 더 정확할까?
3. 합병 비율의 적법성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삼정KPMG)을 통하여 자본시장법(및 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니, 이 자체야 완전히 적법하다.
- 그런 이유로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법적 최소 요건은 충족했고, 다만 주주들의 정서와 이익보호에 대한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 시사인 이종태 기자도 이 합병건에 대한 기사를 예고하면서 법적으로는 문제없고, 엘리엇이 문제삼고 있는 자본시장법 만만한 법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우며 우리 언론들 착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 한겨레신문도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예컨데 황회장의 주장을 좀 더 보자.
"합병안이 발표될 때 여의도 바닥(증권가)에서도 ‘아! 그래서 주가를 낮췄던건가’라는 불만이 나왔다.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해온 것도 사실이다. 의혹을 살만한 일이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 만약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다면 그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 예컨데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닌가? 삼성물산의 경영진(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사 주주 일반이 아닌,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는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주가를 낮게 관리했다면 그게 배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달리 표현해서 이사의 의무 해태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니까 황영기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물산이 특정인을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게 관리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또는 특별히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합병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통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된다.
4. 이재용부회장의 특수한 위치
- 독립적인 두 회사 사이의 합병이라면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A사의 대주주가 김씨이고 소수주주가 이씨이며, B사의 대주주가 박씨이고 소수주주가 최씨라고 하자. 합병을 할 때 수많은 복잡한 이슈가 있겠지만, 그래도 A사의 주주 (및 그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진)는 한사코 A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B사의 주주는 한사코 B사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A사든 B사든 각사의 주주들 사이에 이해가 다르지 않다.
-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많은 보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동의 한복판에 특정인이 관련되어 있다. 이재용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이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전혀 없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삼성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지배구조 때문에 이재용부회장은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한다.
- 이 상황에서 제일모직 주주로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고,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두 회사 모두에 대해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재용부회장의 이익을 위해서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손상시키면서 합병을 추진했다고 충분히 의심을 할 만하다.
-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합병과 관련되어 불법적 요소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라고도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고, 삼성의 지배구조와 이부회장 승계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 재판부라면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현실의 재판에서 불법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다)
5. ISDS
- 며칠전에는 갑자기 엘리엇이 ISDS를 통해서 합병비율의 불합리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익명의 M&A 전문가의 발언을 빌린 것.
-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엘리엇 대 삼성물산 경영진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엘리엇 대 (불합리한 법규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다툼이 된다.
- 나는 위의 2에서도 상장사 합병시 가치평가에서 주가가 기본이 된다는 법규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는 엉터리 법이라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엘리엇이 이런 바보같은 주장을 할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 오히려 ISDS를 활용한 일종의 애국주의 심리 캠페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며, 그렇든 저렇든 이런 중요한 주장을 익명의 전문가 발언으로 보도하는 것은, 그리고 크로스 체크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보도 태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6. 백기사 KCC
- 이 와중에 난데없이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 899만557주(5.79%)를 KCC에 매각한다고 발표하였다.
- 자기주식에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주주인 KCC는 의결도 할 수 있고, 배당도 받게 된다.
- 그리고 여러 언론에서 KCC가 삼성물산의 특정주주의 이익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백기사를 확보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과연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할까? 백기사를 확보했다고 할까?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주주일반의 이해가 아닌 특정인을 위해 매각했다면 그 의사결정은 합법적인 것일까?
- 앞의 '의도적으로 낮게 관리된 삼성물산 주가'의 배임혐의보다 이것은 훨씬 더 입증하기 쉬울 것 같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몹시 궁금하다.
- 나아가 삼성물산의 주주 KCC는 삼성물산 경영진의 주장대로 의결권을 행사할텐데, 이것은 KCC 주주의 이해에 맞는 것일까? 이러한 의결권 행사가 이번에는 KCC내에서 배임으로 불거질 가능성은 없을까?
- 위험이 관리되기는 커녕, 일파만파로 확대재생산되는 느낌이다.
7. 자기주식
-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주식은 말 그대로 회사가 자신이 발행하여 유통되고 있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법률적의 의미야 좀 다르지만, 경제적 실질에 있어서 자기주식의 취득은 유상감자에 다름아니다. 감자가 별것인가. 회사가 주주에게 돈을 주고 주식을 회수해서 불태우는 것. 자기주식의 취득은 다만 회수한 주식을 불태우지 않고 회사 금고에 넣어두는 것 (그래서 일본어로 자기주식은 금고주라고 하고 영어로는 treasury stock이라고 한다)
- 그래서 회계적으로는 자기주식은 자산계정이 아닌 자본의 차감으로 분개처리한다. 또 자기주식을 외부에 매각하는 것의 실질은 유상증자이다. 신주를 발행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대신에 금고속의 자기주식을 매각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것.
- 굳이 유상 감자, 증자와 구분되는 자기주식의 취득, 매각을 허용하는 것은 유상감자와 증자가 절차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조금 용이하게 회사의 주가관리 등에 활용하라는 취지인데,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입, 매각하지 않고 특정인을 지명해서 매입하거나 매각하게 되면 거래대금의 정당성이라든지 거래 목적이 주주이익에 반하는지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
- 그래서 자기주식에 대해서 우리의 회사법이 너무 느슨하게 관리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는데, 이번 삼성물산 건을 계기로 이 이슈도 더 불거질 것 같다.
7. 결론 (임시)
-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보완하기로 하고....
- 오늘 상법개정에 관한 한 토론회에 갔다 왔는데, 감사의 분리선출에 대한 논의에서 한 토론자가 "적들을 회사의 심장에 심는 것 (운운)"하는 얘기를 들었다. 섬뜻하더라.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한 논객은 "부당한 부를 축적한 고관대작의 집에 날강도가 들어왔는데 날강도부터 먼저 잡고 그 다음에 고관대작의 ‘상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 나도 소시민의 한 사람인지라, 외국에 나가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도 제도도 없이 성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리고 이 분들은 엘리엇이 만약 외국계 펀드가 아니고, 국내 펀드라면 판단이 달라졌을까도 궁금하다.
진행 중인 이슈라 그냥 이 페이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형식으로 할 계획. 평이하게 쓸 생각인데 그래도 기업금융, 회사법, 재무회계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최대한 답해보겠다.
1. 합병 방식
-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형식이며, 합병시점에 삼성물산은 해체되고 삼성물산의 자산과 부채는 모두 제일모직에 승계되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는 새롭게 발행된 제일모직의 주식이 그 댓가로 교부된다.
- 이 때, 제일모직의 신주를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얼마나 교부할 것인가하는 것이 합병비율이다. 알려진 바 1:0.35라고 하는 것은 제일모직 주식 한주의 가치가 1이라면 삼성물산 한주의 가치는 0.35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합병 시점에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받게 된다.
- 덩치가 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가끔 눈에 띄는데, 법률적 의미에서 제일모직이 흡수하느냐, 삼성물산이 흡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형태로 하면, 합병시점에 제일모직이 법적으로 소멸되고 삼성물산의 신주가 제일모직 주주에게 교부되는데, 이 때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갖고 있는 주주에게 삼성물산 신주 100주가 부여된다. 최종적으로는 주주 입장에서 그게 그거다.
- 합병 대상 중 한 회사가 비상장회사이고, 다른 한 회사가 상장회사라면, 이때는 어떤 회사가 법적으로 남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통상 상장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상장회사가 법적으로 존속회사가 되어 비상장회사를 흡수하는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소멸되는 회사가 더 큰 경우 뒷문상장이라고 한다. 여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둘 다 상장된 회사이므로 이런 이슈는 없다.
- 좀 곁가지인데 회계적으로는 법적으로 누가 누구를 합병했느냐와 무관하게, 덩치나 등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인수회사와 피인수회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한다고 하더라도 회계적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인수한 것으로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도 있다.
2. 합병 비율의 산정
- 합병 비율에 따라 제일모직의 주주와 삼성물산의 주주가 합병 이후 존속회사의 지분을 얼마나 갖게되는가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이것은 핵심 이슈일 수밖에 없다.
-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합병 등의 특례) 제2항은, "주권상장법인은 합병 등을 하는 경우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합병 등의 가액 (...)에 관한 평가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그리고 <동법시행령> 제176조의5(합병의 요건ㆍ방법 등) 제1항 제1호에서, 계열사인 두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에는 기산일 전 일정기간 주식의 종가를 기준으로 1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합병비율이란 두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고, 측정의 방식은 수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상장법인의 경우 그 회사의 주가에 기반한 시가총액에서 출발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 보도에서는 주가는 기복이 심하므로 두 회사의 순자산가치(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차감한 것)에 기반하여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마치 국제적인 관행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내 판단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주가가 기본이고 순자산가치가 보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회계적으로는 자산으로 처리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 예컨데 SNS 기업의 경우 가입자 수가 회사의 가치에 결정적이겠지만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등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장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가입자수에 대한 가치평가를 별도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주가에 기반한 것보다 더 정확할까?
3. 합병 비율의 적법성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삼정KPMG)을 통하여 자본시장법(및 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니, 이 자체야 완전히 적법하다.
- 그런 이유로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법적 최소 요건은 충족했고, 다만 주주들의 정서와 이익보호에 대한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 시사인 이종태 기자도 이 합병건에 대한 기사를 예고하면서 법적으로는 문제없고, 엘리엇이 문제삼고 있는 자본시장법 만만한 법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우며 우리 언론들 착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 한겨레신문도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예컨데 황회장의 주장을 좀 더 보자.
"합병안이 발표될 때 여의도 바닥(증권가)에서도 ‘아! 그래서 주가를 낮췄던건가’라는 불만이 나왔다.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해온 것도 사실이다. 의혹을 살만한 일이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 만약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다면 그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 예컨데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닌가? 삼성물산의 경영진(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사 주주 일반이 아닌,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는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주가를 낮게 관리했다면 그게 배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달리 표현해서 이사의 의무 해태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니까 황영기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물산이 특정인을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게 관리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또는 특별히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합병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통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된다.
4. 이재용부회장의 특수한 위치
- 독립적인 두 회사 사이의 합병이라면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A사의 대주주가 김씨이고 소수주주가 이씨이며, B사의 대주주가 박씨이고 소수주주가 최씨라고 하자. 합병을 할 때 수많은 복잡한 이슈가 있겠지만, 그래도 A사의 주주 (및 그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진)는 한사코 A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B사의 주주는 한사코 B사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A사든 B사든 각사의 주주들 사이에 이해가 다르지 않다.
-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많은 보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동의 한복판에 특정인이 관련되어 있다. 이재용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이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전혀 없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삼성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지배구조 때문에 이재용부회장은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한다.
- 이 상황에서 제일모직 주주로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고,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두 회사 모두에 대해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재용부회장의 이익을 위해서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손상시키면서 합병을 추진했다고 충분히 의심을 할 만하다.
-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합병과 관련되어 불법적 요소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라고도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고, 삼성의 지배구조와 이부회장 승계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 재판부라면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현실의 재판에서 불법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다)
5. ISDS
- 며칠전에는 갑자기 엘리엇이 ISDS를 통해서 합병비율의 불합리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익명의 M&A 전문가의 발언을 빌린 것.
-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엘리엇 대 삼성물산 경영진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엘리엇 대 (불합리한 법규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다툼이 된다.
- 나는 위의 2에서도 상장사 합병시 가치평가에서 주가가 기본이 된다는 법규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는 엉터리 법이라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엘리엇이 이런 바보같은 주장을 할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 오히려 ISDS를 활용한 일종의 애국주의 심리 캠페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며, 그렇든 저렇든 이런 중요한 주장을 익명의 전문가 발언으로 보도하는 것은, 그리고 크로스 체크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보도 태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6. 백기사 KCC
- 이 와중에 난데없이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 899만557주(5.79%)를 KCC에 매각한다고 발표하였다.
- 자기주식에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주주인 KCC는 의결도 할 수 있고, 배당도 받게 된다.
- 그리고 여러 언론에서 KCC가 삼성물산의 특정주주의 이익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백기사를 확보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과연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할까? 백기사를 확보했다고 할까?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주주일반의 이해가 아닌 특정인을 위해 매각했다면 그 의사결정은 합법적인 것일까?
- 앞의 '의도적으로 낮게 관리된 삼성물산 주가'의 배임혐의보다 이것은 훨씬 더 입증하기 쉬울 것 같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몹시 궁금하다.
- 나아가 삼성물산의 주주 KCC는 삼성물산 경영진의 주장대로 의결권을 행사할텐데, 이것은 KCC 주주의 이해에 맞는 것일까? 이러한 의결권 행사가 이번에는 KCC내에서 배임으로 불거질 가능성은 없을까?
- 위험이 관리되기는 커녕, 일파만파로 확대재생산되는 느낌이다.
7. 자기주식
-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주식은 말 그대로 회사가 자신이 발행하여 유통되고 있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법률적의 의미야 좀 다르지만, 경제적 실질에 있어서 자기주식의 취득은 유상감자에 다름아니다. 감자가 별것인가. 회사가 주주에게 돈을 주고 주식을 회수해서 불태우는 것. 자기주식의 취득은 다만 회수한 주식을 불태우지 않고 회사 금고에 넣어두는 것 (그래서 일본어로 자기주식은 금고주라고 하고 영어로는 treasury stock이라고 한다)
- 그래서 회계적으로는 자기주식은 자산계정이 아닌 자본의 차감으로 분개처리한다. 또 자기주식을 외부에 매각하는 것의 실질은 유상증자이다. 신주를 발행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대신에 금고속의 자기주식을 매각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것.
- 굳이 유상 감자, 증자와 구분되는 자기주식의 취득, 매각을 허용하는 것은 유상감자와 증자가 절차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조금 용이하게 회사의 주가관리 등에 활용하라는 취지인데,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입, 매각하지 않고 특정인을 지명해서 매입하거나 매각하게 되면 거래대금의 정당성이라든지 거래 목적이 주주이익에 반하는지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
- 그래서 자기주식에 대해서 우리의 회사법이 너무 느슨하게 관리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는데, 이번 삼성물산 건을 계기로 이 이슈도 더 불거질 것 같다.
7. 결론 (임시)
-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보완하기로 하고....
- 오늘 상법개정에 관한 한 토론회에 갔다 왔는데, 감사의 분리선출에 대한 논의에서 한 토론자가 "적들을 회사의 심장에 심는 것 (운운)"하는 얘기를 들었다. 섬뜻하더라.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한 논객은 "부당한 부를 축적한 고관대작의 집에 날강도가 들어왔는데 날강도부터 먼저 잡고 그 다음에 고관대작의 ‘상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 나도 소시민의 한 사람인지라, 외국에 나가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도 제도도 없이 성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리고 이 분들은 엘리엇이 만약 외국계 펀드가 아니고, 국내 펀드라면 판단이 달라졌을까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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