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1일 목요일

탈 빈민촌 정책 효과의 증거를 찾아 나선 경제학자들.....

1. 배경

스타 중의 스타 경제학자라고 할 Raj Chetty의 빈민촌에 대한 이웃 효과 분석 프로젝트는 작년에 미국의 언론을 떠들석하게 한 바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연구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사실 빈민촌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나중에 가난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관찰연구에서 발견되지만, 이런 관찰로는 이것이 이웃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의 효과에 대한 정책적 도전과 그 정책의 인과적 증거를 찾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길고도 창의적인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해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 써먹을 때를 위해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2. Moving to Opportunity

이번에 알게된 것인데, 미국에서 정책 효과의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 Randomize Controlled Trials를 시도한 역사가 상당하다. 빈민촌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토부에 해당하는 미국 주택 및 도시개발부(U.S.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HUD))는 "기회를 찾아 이사가기 Moving to Opportunity (MTO)"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아 국회 언저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은 <주택 및 공동체 개발법 Housing and Community Development Act of 1992 (H.R. 5334 (102nd))>의 152조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 선례를 남긴 미국 국회에 경의를.

이 프로젝트에 따라 1994~1998년간에 미국 5개 도시(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LA, 뉴욕) 빈민촌의 낙후된 공공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였다. 여기에 당첨된 한그룹은 빈민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Experiment 그룹), 당첨된 또 한그룹은 이사 지역에 대한 조건 없이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Section 8 그룹), 탈락한 마지막 그룹에게는 바우처를 포함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Control 그룹).


3.  중간평가(4~7년)

MTO에 대한 첫 분석은 여러 팀에서 수행되었는데, 그 중에서 경제적 성과와 관련해서는 NBER이 맡았고, 하버드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들인 Lawrence F. Katz, Jeffrey R. Kling 및 Jeffrey B. Liebman이 담당하였다. 아래 표에서 보듯 다양한 항목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견되었지만,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게도 성인들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표의 출처는 Kats-Kling-Liebman (2001), “Moving to Opportunity in Boston: Early Results of a Randomized Mobility Experime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16, pp. 607-654. 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로 다운 가능)



이것은 이들의 다른 논문에 등장하는 그래프로도 확인이 된다. 각 시기별로 비교해 보아도 세 그룹 사이에 고용율의 뚜렷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는 Kling-Liebman-Katz (2007), "Experimental Analysis of Neighborhood Effects," Econometrica, vol. 75, pp. 83–119. 이 것 역시 공개된 버젼은 NBER에서)


4.  최종평가(10~15년)

최종평가 역시 NBER에서 맡았는데, 이들이 HUD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성인그룹은 10~15년의 장기적 효과로도 소득이나, 고용율에서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Sanbonmatsu et al. (2011), Moving to Opportunity for Fair Housing Demonstration Program: Final Impacts Evaluation,
U.S. HUD)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들(15~20세) 역시 이제 10여년이 경과하여 성인이 되어 경제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차트로 보면 더 뚜렷한데, MOT 프로그램으로 추첨을 한 후 43분기가 경과하는 동안 고용율을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였지만, 각 그룹의 모습은 서로 거의 흡사하였다.


5.  It Ain't Over 'til It's Over

첫 MTO가 1994년에 도입되어, 14년이 경과된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이용한 최종보고서가 나왔지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호프 체티가 나시 나섰다. 이번에는 2012년까지 데이터를 확장하여 최종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청소년 이전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긴 시점간 효과를 구하기 위해 체티의 장기인 소득세 자료를 MTO와 링크시켜서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Chetty-Hendren-Katz (forthcoming), "The Effects of Exposure to Better Neighborhoods on Children:
New Evidence from the Moving to Opportunity Experiment," American Economic Review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

결국 이들이 밝혀낸 MTO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는 이사 시기에 13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에 있어서는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통적인 Section 8 그룹보다, Experiment 그룹에서 더욱 강하였다.



6.  발상의 전환 

며칠 전 뉴욕타임즈에 "나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해롭다 Growing Up in a Bad Neighborhood Does More Harm Than We Thought"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자 Justin Wolfers가 자신이 지도한 대학원생 Eric Chyn의 박사논문을 소개한 것인데, 또 하나의 스타탄생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Chyn은 'MTO는 교과서적인 형태로 RCT가 진행되었지만,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바우처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큰 그룹 아닐까? 그래서 추첨에서 떨어져서 Control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도 빈민촌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가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러한 환경개선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덜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Chyn에게는 다행히도(?) 1995~98년간에 시카고 주택청은 빈민들이 집중 거주하는 고층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택 바우처를 주었다. 그래서 자연실험에 의해 빈민촌을 떠나 이주한 그룹과 빈민촌에 머무른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 두 그룹은 각 구성원들이 어떤 종류로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훌륭한 실험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고용율과 소득 모두 콘트롤 그룹에 비해 실험그룹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푸른색은 Chyn이 분석한 자연실험의 결과이고, 오른쪽 두개는 Sanbonmatsu et al의 MTO 최종보고서에 나타난 Section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녹색)와 실험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노란색) 결과이다. 그리고 왼쪽에서 두번째 와인색은 MTO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카고 주택공사가 진행한 Section 8그룹과 통제그룹 사이의 비교이다.  



7. 부러움과 배울 것

일단 무엇보다도 정책효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참 부럽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무려 이십여년 전에 주택정책에 RCT 방식을 도입한 것도 놀랍고, 관련된 법에 해당 정책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명시한 것도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일이고, 그 보고서의 작성주체가 세계적인 학자들이고, 또 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서 '이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명시하는 것도 용감한 일이고, 그리고 학자들이 끝없이 자료를 파헤치면서 새로운 해석을 추가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

여기에서 빈민촌으로 문제가 되는 주택은 대도시에 환경이 안좋은 지역에 위치한 낡은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은 워낙에 공공임대주택 보급비율이 낮아 이를 높이려는 계획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급량 확대와 더불어 공공임대주택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주민들과 믹스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부실에 의한 노후화, 슬럼화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리고 울퍼스가 뉴욕타임즈 기고문 마지막에 남긴 멘트도 재미있다. 정부의 사회정책 수행능력에 회의적인 보수파는 Chyn의 글을 통해서, '역시 정책에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꼭 정책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리버럴들은 '이런 실험을 통해 사회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지원자가 아닌 전체 모집단에 적용하는 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생각할 것.

8. 기타 

체티가 손대는 수많은 영역 중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기회의 평등 프로젝트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인데, 1부가 2014년초에 큰 화제가 되었던 "세대간 이동가능성 Intergenerational Mobility"이였고, 이것은 내가 간략하게 정리해 둔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한 "이웃의 효과 Causal Effects of Neighborhoods"는 그 2부에 해당.

아 그리고 내 블로그에 보니, Eric Chyn의 또 다른 연구를 흥미롭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BP가 2010 멕시코만에서 대형 사고로 해안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 또 어떤 멋진 작품을 낼지 기대가 된다.

2016년 2월 6일 토요일

남재희 선생 장서 대방출에서 건진 몇권의 책

일주일 쯤 전 한겨레신문사에서 남재희 선생의 애장서 2만권을 사옥에 진열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는데, 행사 마지막날 다녀왔다. 아 정말 엄청난 콜렉션이었다..


남선생님이 백과사전적 인물인 것이, 사회과학,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여행을 가리지 않고, 단행본과 학술지, 대중잡지, 화보로 다양했고, 언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온갖 전문 분야별 사전도 있었고, 아 이런 책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다.

도서 판매 마감 직전이어서 이미 좋은 책은 다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 탐사였고, 책 열 몇권을 구입했고 횡재했다는 느낌이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고 간 것이라 더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지만, 에이 나 말고 다른 이한테도 보석을 발견할 기회를 남겨줘야지 하는 생각에 그 정도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느라, 책들이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꺼내서 차분히 살펴보았다.

1. 워싱턴 DC의 추억

20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DC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의회도서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이었다. 그래서 고른 두권.


우선 Treasures of the Library of Congress (1980)는 의회도서관에 근무했던 Charles Goodrum의 작품으로 놀랄만한 화보로 가득찬 318페이지의 의회도서관 소개서로 예컨데 아래 사진은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Petrus Apianus가 1540년에 쓴 천제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Astronomicum Caesareum으로 저 페이지는 6층의 레이어로 돌아가는 서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아래 사진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책 옆면에 금박으로 그림을 새긴 책으로 왼쪽은 Illustrations of Baptismal Fonts (1844)이고, 오른쪽은 The Life and Remains of Henry Kirke White (1825).


다음으로 Hail to the Candiate는 1992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편찬한 미국 대통령 선거 홍보물의 역사로 이것도 기본적으로 화보집에 가깝다.


예를 들면 위 그림에서 제일 왼편부터 보면 데디 루스벨트 지지자들이 1912년 대선에서 옷에 달던 핀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루스벨트의 유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상징한다고. 두번째 것은 링컨이 1864년 재선에 나서면서 사용한 포스터로 공화당이 아닌 National Union Party 소속임이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50년대 TV 중계가 보급되자 민주당 측에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적어 나눠준 팜플렛. 내용이 재미있다: 시간에 맞춰 일찍오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너무 TV 카메라 주목하지 말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은 공화당의 쿨리지 후보가 너무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사진을 시가에 부착했다고.

2. 위대한 언론

다음 세권은 각각 워싱턴 포스트 100주년 기념, 더 타임즈 200주년 기념 및 포린 어페어스 75주년 기념과 관련된 것들이다.


먼저 The Washington Post: The First 100 Years (1977)은 포스트에 23년간 근무했던 Chalmers M. Roberts의 역사서로, 500쪽에 가까워서 아마도 읽을 기회가 없겠지만 그저 샀다. 여기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왼쪽 페이지는 1971년 대법원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의 손을 들어준 기념비적인 판결보도와 그것을 Katharine Graham과 Benjamin C. Bradlee가 보면서 웃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미국사에서 언론이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유일한 사례인, 워터게이트 사건. 제일 위의 두 남자가 Bob Woodward와 Carl Bernstein이고, 아래는 닉슨대통령과 녹음테이프를 연결하는 절묘한 삽화.

위대한 언론은 인물을 바꿔 가면서 끝없이 발전해왔는데, 150주년에 다시 역사서가 나온다면 Jeff Bezos의 실험은 어떻게 묘사될지.

다음은 The Times, Past Present Future: To Celerbrate Two Hundred Years of Publication (1985), 이것은 앞의 포스트 역사서보다 훨씬 가볍다 (분량도 형식도). 더 타임즈는 1785년에 처음 발간되었는데, 사진이 실린 것은 1922년에 이르러서였다. 아래는 첫 사진 페이지.



또 지난 200년간 타임즈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재밌는 것은 1820년 캐롤라인 여왕에 대한 재판 즈음하여 등장한 그림인데, 왼편은 곰으로 표현된 여왕의 정부이고, 오른편은 여왕의 변호사 Henry Brougham인데 그의 방패의 문양이 바로 더 타임즈.


마지막 Foreign Affaris(Sep/Oct 1997)는 그 자체 75주년 기념호이다. 일단 다른 것은 모르겠고, 기념호에 기고한 필자들의 명성만 봐도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 슐레진저, 헌팅튼, 크루그만, 브레진스키, 드러커, 슬로터.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75년간 발행된 가장 중요한 책 소개하는 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남재희 선생이 뜯어낸듯 (그리고 조금 있다 이렇게 뜯겨진 서평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읽었던 책들

아래 세권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예전에 한글판으로 다 읽었던 책들이다.


우선 Herbert Stein의 책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그래도 닉슨과 포드 시절 CEA 의장이었던 이의 <대통령의 경제학 (김영사)>이여서, 그리고 워터게이트의 주인공 Bob Woodward의 또하나의 걸작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 손)>는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 그리고 남재희 선생이 골프 책도 읽는구나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Jack Nicklaus의 <골프 마이 웨이 (팩컴북스)>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그래서 샀다.

그런데 Woodward의 책에 몇장의 종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내가 짐작하건데, 남선생은 1994년 12월 Economist의 올해의 책 기사를 통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샀고, 그후 2015년에 The Guardian과 <한겨레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오려서 책에 끼워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앞에 말한 Foreign Affairs에서 사라진 75년간의 명서 소개는 이런 방식으로 다 분해되서 각각의 책에 끼워져 있지 않을까 추측.

4. 미국 경제사

이번에 구입한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The History of American Business & Industry (1972). 딱딱한 경제사 책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내 처지에 그냥 그때 그때 이리저리 넘겨가며 짧은 아티클들과 화보들을 보면 재미있을 듯.


한 장면만 소개하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 골드러시 시대에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포스터(1849), 대륙횡단열차로 서부로 가는 노동자들(1869), 헨리 포드의 자동쟁기(automobile plow, 1908), 우라늄탄광(1940년대후반), 그리고 달에 도착한 인류.


이 책에는 또한 현대경제학을 만든 Paul Samuelson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몇 구절만 보면 "경제사 없는 미국사는, 햄릿이 등장하지 않는 햄릿과 마찬가지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볼수 있는, 공장의 단순한 나사에 지나지 않는 작은 노동자, 그가 조립라인에서 볼트 999를 평생 돌리는 잊을 수 없는 이미지는 노동자의 '소외'에 대해서 허버트 마루쿠제나 청년 맑스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만은, 세일즈맨 일생의 공허함에 대한 슬픈 사례이다.... 때때로 시스템의 역사적 잘못을 인식하는 것은 이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5. 아내를 위하여

끝으로 아래의 네권의 책은 내가 보려고 산 것은 아니고, 디자인과 영국사에 관심있는 토론토 출신 내 아내를 위한 것들.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Illustrated Guide to Britain (2nd ed. 1976), Treasures of Canada (1995, 책 속의 건물은 내 아내의 모교인 토론토 대학이다), The Tower of London in the History of the Nation (1972), The Elements of Style: A Practical Encyclopedia of Interior Architectural Details, From 1485 to the Present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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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다보니, 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대개가 서재에서 읽을 책들이라기 보다는 소파나 침대 옆 테이블에 두고 뒤적일 책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와 아내의 책읽는 취향이 많이 달라서, 내가 산 책에 아내가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데, 이번에는 여러 권 같이 볼 수 있을 듯.

끝으로 남재희 선생께 경의와 감사를!!!

2015년 12월 5일 토요일

OECD Revenue Statistics 2015

지난 12월 3일 (목) OECD Revenue Statistics 1965~2014 가 발간되었다.

아래 몇가지 통계만 정리해 둔다. 이하에서 총세수는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는 총부담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1. OECD Average Tax-to-GDP ratio


국제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34.1%에서 2009년 32.7%로 하락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4년 34.4%로 최고치였던 2000년의 34.2%를 넘어섰음 (이는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임).

2. 고부담국, 저부담국


2014년 한국의 부담율은 24.6%로 멕시코, 칠레와 더불어 저부담3국이었다. 고부담국은 덴마크가 50.9%로 1위였고 그 뒤를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가 차지.

3. 세목별 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게 여러 표에 쪼개져 있어서 정리하는데 애먹었는데, OECD의 경우 2007년 경제위기 이후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OECD 조세정책센터장인 파스칼 생-아망은 “2007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부담 증가의 대부분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소득세의 증가를 통해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기업으로 하여금 공정한 몫의 세부담을 하게 할 필요성이 크다”라고 입장을 천명.

반면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법인세수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이것으 워낙에 한국의 기업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또 법인의 총부담은 법인세 외에도 사회보험료 중 법인기여분, 페이롤 텍스에서의 법인기여분(통상 50%)를 고려하면 그 차이는 대폭 축소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Source: OECD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와 관련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본문은 비회원의 경우 온라인으로만 읽을 수 있으면, PDF 파일을 다운받으려면 억세스 권한이 있어야 한다. (주요대학 도서관 멤버쉽이 있으면 그걸 통해서 구하면 됨).

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금융위기의 정치적 귀결 (차트 읽기)

금융위기는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독일 학자들의 최근 연구 결과를 살펴봤다. 흥미롭고 또 불안하고...

1. 데이터

1870~2014년까지 20개 선진민주국가에서의 800여건의 선거를 분석, 이 기간동안 100건 이상의 금융위기가 발생.

2. 극우파의 부상

이 차트는 금융위기 직전 5년간의 극좌파와 극우파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인데, 검은색의 극우파는 위기전에 비해 위기후 두배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흰색의 극좌파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두번째 차트는 2004, 2009, 2014년 세차례에 걸쳐 유럽 주요국가의 극우파와 우파파퓰리스트의 득표율을 정리한 것으로 2007~8년 위기 전후를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크게 상승해서 2004년에 비해 2014년에는 평균 세배가 되었다.





이번 차트는 금융위기 이후 5년간에 걸친 극우파의 득표율의 추이 (붉은선은 평균치, 회색은 90%신뢰구간).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차대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봐도 대차 없음.








3. 정치의 파편화 또는 정부활동의 난관 심화

금융위기는 전반적으로 정치를 파편화시키고, 정부활동(governing)을 어렵게 만들었다. 위기 이후 특성을 보면 집권당의 득표율은 낮아지고(차트 1행), 집권하지 않은 정당의 득표율은 상승하고(2행),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3행), 의회에 진출한 정당의 개수는 늘어난다(4행).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2차대전 이전보다는 2차대전 이후 기간에 더 뚜렷하였다.

(참고로 3행의 정칙적 양극화(fractionalization)은 다른 당에 속한 의원이 다른 방향으로 투표하는 것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현대정치학에서 많이 분석하는 것)



정부활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또 하나의 증거는 당연하게도 위기 전에 비해 위기 이후에, 총파업(하늘색), 폭동(흑색), 시위(흰색)가 모두 크게 늘어났다는 것, 전체적으로 장외 저항활동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다음 자료는 이상의 장외 저항활동을 위기후 5년간에 걸쳐 추이를 본 것인데, 4년차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특히 2차대전 이후 기간동안에는 이러한 증가가 뚜렸했다.




마지막 차트는 이러한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본 것인데, 대략 10년이 경과하면 금융위기의 정치적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4. 금융위기의 특성

또 금융위기를 수반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수반하지 않은 경기침체의 경우 전자가 후자에 비해 뚜렷하게 더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들은 그 이유로 두가지를 제시.


  1. 대중들은 금융위기는 정책실패, 도덕적 해이, 정실주의 등 내생적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비금융위기는 유가나 전쟁처럼 외생적이고 회피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2. 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이 비금융위기 이후의 사건들에 비해 사회적 파장이 더 크다는 것, 예컨데 채권자와 채무자의 분쟁격화,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금융부문의 구제금융 등.


5. 함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사후적 극복의 정치적 과정도 매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보면, 예컨데 보수정당 하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위기 발생시점의 집권당에게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동하겠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거리의 소요가 심화되어 위기극복과 관리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라는 .......

* 원 논문은 유료자료로, Funke, M, M Schularick and C Trebesch (2015) “Going to extremes: Politics after financial crises, 1870-2014”, CEPR, Discussion Paper No. 10884. 대중적인 소개는 같은 저자들이 VoxEu에 올린 것 : The political aftermath of financial crises: Going to extremes 참조.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 최저임금과 알란 크루거

며칠 전 미국 CBS에서 개최한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예상대로 최저임금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특이한 것은 사회자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 알란 크루거의 주장에 대해 후보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이었다. 크루거는 두달전 뉴욕타임즈의 기고문 <최저임금: 얼마나 높으면 지나치게 높은 것인가?>라는 글에서 시급 12달러는 저소득노동자들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이 더 크지만, 15달러는 세계적으로도 전례없는 일로서, 일부 소득이 높은 도시나 주에서는 고용감소없이 흡수할 수 있겠지만, 전 미국에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바람직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샌더스와 오맬리는 크루거에 대한 언급없이 15달러 생활임금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쭉 얘기했고, 클린튼은 크루거를 인용하면서 정확히 그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맬리가 갑자기 클린튼의 말을 가로채면서 발생했다.

오맬리: 더 이상 월스트리트 경제학자의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클린튼: 월스트리 경제학자가 아니...
오맬리: 우리가 경청해야 할 것은 ...
클린튼: 옳지 않아요. 크루거는 진보적 경제학자예요.
O’Malley: I think we need to stop taking our advice from economists on Wall Street …
Clinton: He’s not Wall Street.
O’Malley: … And start taking advice …
Clinton: That’s not fair. He’s a progressive economist.

내가 노동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저임금에 관해서 미국 또는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업적을 꼽으라면 크루거가 데이빗 카드와 함께 발표한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와 펜실바니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사례 연구 (1994, A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이듬해 확장되어 <신화와 측정: 최저임금의 새로운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프린스턴대에서 단행본 출판되었다)


며칠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알란 매닝은 최저임금과 실업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관념이 90년대에 변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를 들 정도였다.


나야 전문가가 아니니 이 연구와 그 후 촉발된 수많은 논쟁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더 엄청난 전환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마일드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면서 괜히 쭈뼜쭈뼜해지는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랄까.

그리고 크루거는 쭉 학교에 있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경제정책실장 (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for economic policy)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chairman of the White Hous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바도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말실수였겠지만) 오맬리는 크루거를 '월스트리트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우리식 용법이라면, '재벌하수인' 정도의 표현이겠지). 클린트의 표현대로 이것 정말 '옳지 않다'.

아참, 그리고 토론회 직후 최저임금에 대해 가장 민감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2백만 조합원의 서비스산업노조(Service Employment International Union)의 공식 지지선언을 끌어냈다. SEIU는 집행부 투표 후 성명서에서,

“힐러리 클린튼은 노동자 가족을 위해 싸우고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입증된 후보이다. 전미국의 SEIU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은 노동자 가족의 보다 낳은 미래를 건설하는 운동의 주체이며, 힐러리 클린튼은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할 것이다." (Hillary Clinton has proven she will fight, deliver and win for working families,” said SEIU President Mary Kay Henry in a statement. “SEIU members and working families across America are part of a growing movement to build a better future for their families, and Hillary Clinton will support and stand with them.)"

라고 밝혔다.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엘리엇 메모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추진 및 엘리엇측의 반대 주장에 대해서 개인적 정리를 위해 메모를 해둔다.

진행 중인 이슈라 그냥 이 페이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형식으로 할 계획. 평이하게 쓸 생각인데 그래도 기업금융, 회사법, 재무회계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최대한 답해보겠다.

1. 합병 방식

-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형식이며, 합병시점에 삼성물산은 해체되고 삼성물산의 자산과 부채는 모두 제일모직에 승계되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는 새롭게 발행된 제일모직의 주식이 그 댓가로 교부된다.

- 이 때, 제일모직의 신주를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얼마나 교부할 것인가하는 것이 합병비율이다. 알려진 바 1:0.35라고 하는 것은 제일모직 주식 한주의 가치가 1이라면 삼성물산 한주의 가치는 0.35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합병 시점에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받게 된다.

- 덩치가 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가끔 눈에 띄는데, 법률적 의미에서 제일모직이 흡수하느냐, 삼성물산이 흡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형태로 하면, 합병시점에 제일모직이 법적으로 소멸되고 삼성물산의 신주가 제일모직 주주에게 교부되는데, 이 때는 제일모직 주식 35주를 갖고 있는 주주에게 삼성물산 신주 100주가 부여된다. 최종적으로는 주주 입장에서 그게 그거다.

- 합병 대상 중 한 회사가 비상장회사이고, 다른 한 회사가 상장회사라면, 이때는 어떤 회사가 법적으로 남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통상 상장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상장회사가 법적으로 존속회사가 되어 비상장회사를 흡수하는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소멸되는 회사가 더 큰 경우 뒷문상장이라고 한다. 여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둘 다 상장된 회사이므로 이런 이슈는 없다.

- 좀 곁가지인데 회계적으로는 법적으로 누가 누구를 합병했느냐와 무관하게, 덩치나 등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인수회사와 피인수회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한다고 하더라도 회계적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인수한 것으로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도 있다.

2. 합병 비율의 산정

- 합병 비율에 따라 제일모직의 주주와 삼성물산의 주주가 합병 이후 존속회사의 지분을 얼마나 갖게되는가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이것은 핵심 이슈일 수밖에 없다.

-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합병 등의 특례) 제2항은, "주권상장법인은 합병 등을 하는 경우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합병 등의 가액 (...)에 관한 평가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그리고 <동법시행령> 제176조의5(합병의 요건ㆍ방법 등) 제1항 제1호에서, 계열사인 두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에는 기산일 전 일정기간 주식의 종가를 기준으로 1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합병비율이란 두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고, 측정의 방식은 수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상장법인의 경우 그 회사의 주가에 기반한 시가총액에서 출발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 보도에서는 주가는 기복이 심하므로 두 회사의 순자산가치(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차감한 것)에 기반하여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마치 국제적인 관행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내 판단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주가가 기본이고 순자산가치가 보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회계적으로는 자산으로 처리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 예컨데 SNS 기업의 경우 가입자 수가 회사의 가치에 결정적이겠지만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등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장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가입자수에 대한 가치평가를 별도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주가에 기반한 것보다 더 정확할까?

3. 합병 비율의 적법성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외부의 전문평가기관(삼정KPMG)을 통하여 자본시장법(및 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니, 이 자체야 완전히 적법하다.

- 그런 이유로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법적 최소 요건은 충족했고, 다만 주주들의 정서와 이익보호에 대한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 시사인 이종태 기자도 이 합병건에 대한 기사를 예고하면서 법적으로는 문제없고, 엘리엇이 문제삼고 있는 자본시장법 만만한 법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우며 우리 언론들 착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 한겨레신문도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예컨데 황회장의 주장을 좀 더 보자.

"합병안이 발표될 때 여의도 바닥(증권가)에서도 ‘아! 그래서 주가를 낮췄던건가’라는 불만이 나왔다.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해온 것도 사실이다. 의혹을 살만한 일이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 만약 일부러 주가를 조작했다면 그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 예컨데 삼성물산이 주가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안했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닌가? 삼성물산의 경영진(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사 주주 일반이 아닌,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는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주가를 낮게 관리했다면 그게 배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달리 표현해서 이사의 의무 해태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니까 황영기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물산이 특정인을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게 관리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또는 특별히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합병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통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된다.

4. 이재용부회장의 특수한 위치

- 독립적인 두 회사 사이의 합병이라면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A사의 대주주가 김씨이고 소수주주가 이씨이며, B사의 대주주가 박씨이고 소수주주가 최씨라고 하자. 합병을 할 때 수많은 복잡한 이슈가 있겠지만, 그래도 A사의 주주 (및 그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진)는 한사코 A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B사의 주주는 한사코 B사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A사든 B사든 각사의 주주들 사이에 이해가 다르지 않다.

-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많은 보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동의 한복판에 특정인이 관련되어 있다. 이재용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이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전혀 없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삼성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지배구조 때문에 이재용부회장은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한다.

- 이 상황에서 제일모직 주주로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고, 삼성물산의 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두 회사 모두에 대해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재용부회장의 이익을 위해서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손상시키면서 합병을 추진했다고 충분히 의심을 할 만하다.

-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합병과 관련되어 불법적 요소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라고도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고, 삼성의 지배구조와 이부회장 승계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 재판부라면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현실의 재판에서 불법으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다)

5. ISDS

- 며칠전에는 갑자기 엘리엇이 ISDS를 통해서 합병비율의 불합리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익명의 M&A 전문가의 발언을 빌린 것.

-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엘리엇 대 삼성물산 경영진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엘리엇 대 (불합리한 법규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다툼이 된다.

- 나는 위의 2에서도 상장사 합병시 가치평가에서 주가가 기본이 된다는 법규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는 엉터리 법이라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엘리엇이 이런 바보같은 주장을 할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 오히려 ISDS를 활용한 일종의 애국주의 심리 캠페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며, 그렇든 저렇든 이런 중요한 주장을 익명의 전문가 발언으로 보도하는 것은, 그리고 크로스 체크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보도 태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6. 백기사 KCC

- 이 와중에 난데없이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 899만557주(5.79%)를 KCC에 매각한다고 발표하였다.

- 자기주식에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주주인 KCC는 의결도 할 수 있고, 배당도 받게 된다.

- 그리고 여러 언론에서 KCC가 삼성물산의 특정주주의 이익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백기사를 확보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과연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할까? 백기사를 확보했다고 할까?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주주일반의 이해가 아닌 특정인을 위해 매각했다면 그 의사결정은 합법적인 것일까?

- 앞의 '의도적으로 낮게 관리된 삼성물산 주가'의 배임혐의보다 이것은 훨씬 더 입증하기 쉬울 것 같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몹시 궁금하다.

- 나아가 삼성물산의 주주 KCC는 삼성물산 경영진의 주장대로 의결권을 행사할텐데, 이것은 KCC 주주의 이해에 맞는 것일까? 이러한 의결권 행사가 이번에는 KCC내에서 배임으로 불거질 가능성은 없을까?

- 위험이 관리되기는 커녕, 일파만파로 확대재생산되는 느낌이다.

7. 자기주식

-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주식은 말 그대로 회사가 자신이 발행하여 유통되고 있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법률적의 의미야 좀 다르지만, 경제적 실질에 있어서 자기주식의 취득은 유상감자에 다름아니다. 감자가 별것인가. 회사가 주주에게 돈을 주고 주식을 회수해서 불태우는 것. 자기주식의 취득은 다만 회수한 주식을 불태우지 않고 회사 금고에 넣어두는 것 (그래서 일본어로 자기주식은 금고주라고 하고 영어로는 treasury stock이라고 한다)

- 그래서 회계적으로는 자기주식은 자산계정이 아닌 자본의 차감으로 분개처리한다. 또 자기주식을 외부에 매각하는 것의 실질은 유상증자이다. 신주를 발행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대신에 금고속의 자기주식을 매각해서 댓가로 현금을 받는 것.

- 굳이 유상 감자, 증자와 구분되는 자기주식의 취득, 매각을 허용하는 것은 유상감자와 증자가 절차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조금 용이하게 회사의 주가관리 등에 활용하라는 취지인데,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입, 매각하지 않고 특정인을 지명해서 매입하거나 매각하게 되면 거래대금의 정당성이라든지 거래 목적이 주주이익에 반하는지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

- 그래서 자기주식에 대해서 우리의 회사법이 너무 느슨하게 관리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는데, 이번 삼성물산 건을 계기로 이 이슈도 더 불거질 것 같다.

7. 결론 (임시)

-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보완하기로 하고....

- 오늘 상법개정에 관한 한 토론회에 갔다 왔는데, 감사의 분리선출에 대한 논의에서 한 토론자가 "적들을 회사의 심장에 심는 것 (운운)"하는 얘기를 들었다. 섬뜻하더라.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한 논객은 "부당한 부를 축적한 고관대작의 집에 날강도가 들어왔는데 날강도부터 먼저 잡고 그 다음에 고관대작의 ‘상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 나도 소시민의 한 사람인지라, 외국에 나가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도 제도도 없이 성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리고 이 분들은 엘리엇이 만약 외국계 펀드가 아니고, 국내 펀드라면 판단이 달라졌을까도 궁금하다.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역계급투표에 대한 메모

1. 지난 대선의 추억.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당시에 SNS에서 광범위하게 돌아다디던 표가 하나 있었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 시달리던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했던 이들이 이 표를 돌리면서 하고 싶었던 내심은 뭐 이런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는 못배우고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그런 부류들이다. 야당후보야말로 이들 99%를 위한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이들은 1%를 위하는 후보를 지지하였다. 황당하다. 그리고 당해도 싸다. $&%(&()^&^))"

물론 건강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뭐 멘붕 상태에서의 일이니 이해하고....









2. Red State and Blue State

미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다. 대선이나 총선 결과를 보면 옆의 그림처럼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와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가 지역적으로 뚜렷이 갈린다.

양 해안가의 소득수준이 높은 주들이 주로 민주당성향이 강하고 (blue state), 중간 부분의 소위 미국의 심장(heartland)으로 불리우는 소득수준이 낮은 주들이 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red state).



3.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미국 얘기를 좀 더하자. 미국의 이러한 역계급투표에 대한 수많은 분석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저널리스트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가 캔사스를 둘러보고 쓴 르포르타쥬 형식의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2004)이다.

이 책은 출판 직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38주나 올랐다. 뉴욕타임즈 컬러미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가 "올해 최고의 정치학 책"으로 추천했고 수많은 신문잡지에 센세이션이라고 할 만큼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한국에는 대선 직전인 2012년 봄에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서 꽤 화제가 되었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남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이 종교의 영향을 받아 경제적 이슈보다 동성애나 낙태와 같은 문화적 이슈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책은 문학적(?) 성취가 풍부한 책이라, 이렇게 핵심내용 위주로 요약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디테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꽤 여럿있다. 이것은 아쉽지만 다음에 별로 기회에 정리할 계획이다.)


4. What's the Matter with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프랭크에 대한 비판의 선봉은 밴더빌트 대학의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Larry M. Bartels)였다.

그는 2005년에 "캔자스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What's the matter with What's the Matter with Kansas?"라는 제목으로 프랭크의 핵심메시지 전체를 비판하는 글을 미국정치학회 연례총회에서 발표하였다.

후에 프랭크가 반론을 펴고, 그 후에 최종적으로 같은 제목의 논문으로 업데이트해서 2006년 Quarterly Journal of Political Science에 게재하였다.

그리고 Unequal Democracy: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 (2008)의 제3장에 확장되어 실렸는데, 이 책도 2012년 봄 한국에 <불평등 민주주의 - 자유에 가려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이하에서 이를 좀 더 살펴보겠다. (옮겨진 차트와 표는 모두 영어판에서 가져온 것이다.)


4-1. 백인 노동자는 민주당을 버렸는가?


첫번째 그림은 백인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학력별 대선 후보 상대지지율의 추이이다. 고졸이하 유권자는 대졸이상 유권자에 비해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높았는데 격차가 점차 줄어들다가 혼란된 양상 또는 미약하나마 역전되는 것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것을 백인노동자가 민주당을 버렸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우선 격차 역전이 발생한 것은 고졸이하 유권자의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하락해서가 아니라, 대졸이상 유권자의 지지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0년대의 대졸 비율과 2000년대의 대졸비율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학력을 계급구분의 기준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두번째 그림은 학력이 아닌, 소득기준으로 계급을 구분해서 살펴본 것이다. 70년대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민주당후보 지지율이 약간 높은 정도였지만, 70년대 이후에는 이 격차가 뚜렸해졌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지지율은 절대적으로도 하락하지 않았다.

세번째 그림은 대선후보 지지율이 아닌, 매년 수행된 정당지지율로 본 것인데, 이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시기에 저소득층의 민주당지지율이 고소득층에 비해 일관되게 높았으며, 추세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이었다.

따라서 소득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어 보면 노동자계급이 민주당을 버렸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4-2. 남부의 백인 노동자는 민주당을 버렸는가?


그림은 저소득 백인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지역별 민주당 상대지지율의 추이이다. 비남부지역의 경우 지지율 변화가 발견되지 않지만, 남부의 경우 지지율 하락이 뚜렸하다. 그렇다면 남부에 국한시켜 보면 노동자계급은 민주당을 버린 것일까?

남부지역 저소득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했지만,  비남부지역 밑으로 간 것이 아니고 80년대에 이르러 비남부지역과 차별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80년대 이전에 남부의 저소득층이 비남부의 저소득층에 비해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던 것이 예외적인 것 아니었을까?

위쪽의 표를 보면 남부 백인의 경우 민주당 상대지지율이 급락했는데 (-65.7), 계층별로 보면 고소득층 (-83.3), 중소득층 (-75.7), 저소득층(-42.8)로 소득이 낮을수록 하락정도가 낮았다. 아래쪽 표는 정당지지율이 아니라 대선 후보 지지율로 본 것인데, 비슷한 양상이다.

이렇게 남부의 백인 전체가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에 대해서, 바텔스는 50년대에 남북전쟁과 노예제의 영향으로 남부 백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했던 것이 정상화되는 것으로 추측한다.


4-3. 경제적 이슈와 문화적 이슈



두 그림은 백인을 대상으로 소득계층별로 '일자리 마련과 소득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할' (경제적 이슈, 첫번째 그림)과 '낙태할수 있는 권리'(문화적 이슈, 두번째 그림)에 대한 시기별 지지도 변화를 그린 것이다.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진보적 입장이 일관되게 높았고, 문화적 이슈는 반대였다. 그리고 저소득층은 1990년대 중반까지 문화적 이슈에 대해서 진보화되다가 그 이후 보수화되었지만, 이것이 저소득층에 고유한 것도 아니고 하락폭도 상승폭에 비해 작아서 7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중반을 비교해보면 저소득층에 한정해도 어느정도는 진보적 입장이 강해졌다.

오른쪽 표의 윗부분은 1984~2004년기간까지의 각 이슈의 중요도 변화를 측정한 것이고, 아래 절반은 2004년 현재의 각 이슈별 중요도를 측정한 것이다. 낙태는 이 기간동안 중요도가 가장 커진 영역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고소득층에서 일어난 일이지 저소득층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고소득층 +0.64, 중소득층 +0.44, 저소득층 +0.03).

그리고 낙태는 중요도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모든 계층에서 2004년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정부지출(및 여타 경제적 인 것들)이었다.


4-4. 종교의 영향?



그렇다면 혹시 종교인들로 국한하면 문화적 이슈가 경제적 이슈를 압도할까? 그림에서 보면 백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매주 교회에 가는 집단과 한달에 한번 이하 교회를 가는 집단으로 구분해서 민주당 대선후보 상대적 지지율 변화를 그린 것인데, 모든 시기에 교회에 열심히 가는 사람들의 민주당 지지율이 낮았고, 특히 90년대부터는 격차가 커졌다.

표는 앞의 4-3에서 등장했던 표와 유사한 것인데, 이번에는 소득계층별이 아니라 교회가는 빈도별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1984~2004 기간에 낙태 이슈는 중요도가 가장 커진 이슈이고, 특히 매우 독실한 그룹(Highly Religious)에서 가장 뚜렸하였다 (+0.40). 하지만 모든 집단에서 여전히 경제적 이슈가 더 중요하였고, 이것은 독실한 그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5. 프랭크 v. 바텔스

요약하면 바텔스는 프랭크와는 달리, 백인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떠난 것도 아니고 (남부 백인 노동자로 국한해도 그렇고), 문화적 이슈가 경제적 이슈를 압도한 것도 아니고 (종교인으로 국한해도 그렇고), 뭐 그렇다는 것.

프랭크진영과 바텔스진영은 뚜렷이 구분되었는데, 흥미롭게도 프랭크진영은 주로 언론인들로, 바텔스진영은 주로 정치학자들로 구분되었다. 진지한 정치학 논문에서 프랭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뉴욕타임즈나 애틀랜틱 먼쓸리 같은 곳에 기고를 하는 저널리스트들이 '고학력, 고소득, 낙태등 문화적으로 민감한' 부류여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실과 다르게) 저소득층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5.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미국의 저소득주의 공화당 지지경향과 고소득주의 민주당 지지경향을 역계급투표의 증거로 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콜럼비아 대학의 통계학자 앤드류 겔만(Andrew Gelman)이 대표적이다. 이것을 집대성하여 출판한 것이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Why Amreicans Vote the Way They Do (2009)인데, 아쉽게도 이책은 번역되어 있지 않다 (내가 몇몇 사회과학 출판사에 번역하라고 찔러봤는데 썰렁).

이책에는 2008년 대선 분석까지만 실려있어서, 차트는 2012년 대선까지 포함하여 분석한 The Forum 발표문 "Red State/Blue State Divisions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에서 가져왔다.

첫번째 그림의 가로축은 주별 1인당소득이고 세로축은 2012년 공화당 후보였던 롬니의 주별 득표율이다. 점선은 주별 분포의 회귀선인데 우하향한다. 그러니까 1인당 소득이 높은 주일수록 롬니의 득표율은 높아진다.

두번째 그림은 미국 전체로 보아 각 소득계층별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다. 2000년 이후 네차레에 걸친 대선에서 모두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공화당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다 (우상향하는 선들).

세번째 그림을 보면  주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소득계층별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을 보아도 대부분의 주에서 소득이 높은 계층의 공화당 후보 지지가 컸다. 예컨데 대표적인 레드 스테이트인 미시시피(MS)도, 블루 스테이트인 코네티컷(CT)도 그리고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OH)도 다 마찬가지로 우상향. 다만 저소득층에서 봐도 미시시피가 오하이오보다, 오하이오가 코네티컷보다 더 공화당 지지율이 높았을 뿐이다. 중소득층, 고소득층 다 마찬가지.


6. 한국의 역계급투표 (1)
이제 한국 데이터를 보자. 왼쪽 그림은 서울대 강원택 교수가 2013년 <한국정당학회보>에 발표한 "한국 선거에서의 계급 배반 투표와 사회 계층"의 자료이고, 오른쪽 그림은 한겨레의 한귀영 박사가 2013년 <동향과전망>에 발표한 "2012년 대선,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정당을 지지했는가"의 자료이다.


우선 2012년의 대선의 경우 강원택의 자료로도 한귀영의 자료로도 모두 중소득자와 고소득자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저소득자의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뚜렷이 높았다. 또 후보가 난립했던 2007년의 경우, 보수후보군(이명박+이회창)과 진보후보군(정동영+문국현+권영길)으로 구분해서 보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보수후보군의 지지율은 낮아졌다. 끝으로 2002년의 경우에도 저소득층의 경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뚜렷이 높았다.

결국 요약하면,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세차례에 걸친 대선에서 계급배반투표의 양태가 나타났다(적어도 저소득층과 중소득 층 사이의 구간에서는).


7. 한국의 역계급투표 (2)


이것은 한신대 전병유교수와 중앙대 신진욱 교수가 2014년 <동향과전망>에 발표한 "저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에서 가져온 그림이다.

첫번째 그림 연도별 정당지지도인데, 2008년 이후에는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낮았다. 두번째 그림은 대선시기 유권자 조사인데 이것은 앞의 강원택, 한귀영의 자료와 마찬가지로 2002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다. 세번째 그림은 총선 유권자 조사인데 이것은 앞의 그림들과 패턴이 다르지만 2012년 마지막 총선에서는 저소득층의 중도+진보 정당 후보 지지율이 낮았다.

요약하면 이 자료로 보더라도 (최소한 최근에는) 역계급투표가 발견된다.


8. 한국의 연령별 역(?)계급투표 (1)


이 그림들은 연령별로 구분해서 소득별 지지율을 정리한 것이다. 오른쪽 것은 한귀영박사의 자료인데,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두그룹으로 나눠서 2012년 대선을 보면 흥미롭게도 40대 이하에서는 약하지만 소득이 높아질수록 박근혜후보 지지율이 높아지는 계급투표 현상이 발견된다. 50대 이상 그룹에서는 지지율이 소득수준과 무관해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강원택의 자료인데, 위의 것은 2012년 대선의 경우 지지율은 50대이하 그룹에 대해서 보면 소득수준과 무관해 보이고, 2007년 대선의 경우에는 약한 역계급투표성향이 발견된다. (강원택의 자료를 40대 이하그룹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여하튼 연령별로 구분하면 최소한 역계급투표현상은 사라지고, 미약하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계급투표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기미가 있다.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볼 때와, 연령그룹별로 구분해서 볼 때, 계층별 지지도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보수후보 지지율이 높은 노인세대가 압도적으로 보수후보 지지율이 높기 때문이다. 


9. 한국의 연령별 역(?)계급투표 (2)


너무 길어졌는데 전병유-신진욱의 자료 하나만 더 보자. 첫번째 표는 민주진보정당 (보수정당 뺀 나머지 다)에 대한 지지율을 소득계층별로 회귀분석한 것인데, 모형1에서 저소득층 변수의 회귀계수가 -0.407로 상당한 역계급투표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모형2에서는 추가로 연령변수를 포함시켰는데, 이렇게 연령효과를 통제하면 저소득측변수의 회귀계수는 -0.010으로 역계급투표현상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번째 표는 앞의 표와 거의 유사한데 소득으로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각 유권자들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소속계층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할 겨우 모형1에서 하위계층변수의 회귀계수는 -0.-028로 역계급투표현상이 매우 미미하며, 모형2에서처럼 연령을 통제하면 하위계층변수의 회귀계수가 0.323으로 오히려 계급투표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발견되는 역계급투표현상은 연령효과 및 자산효과 (노인세대는 대표적으로 소득에 비해 자산이 많은 계층)의 중첩이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10. 마무리....

얼마전에 동료들끼리 모임에서 위의 내용과 약간의 내용을 더해서 발표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어서, 간단하게 블로그에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대충 이 정도에서 장하성 교수의 <한국자본주의>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 한국에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 '투표'가 '돈'을 이겨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할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계급투표'와 '기억투표'를 한다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있다."

갈길이 멀다....



PS> 조만간 기회가 있으면 관련된 주제를 좀 더 정리해 볼 생각인데, 그 리스트만 여기에 남기면,

1) 노인들의 압도적 보수정당 지지의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반공 경험, 빈곤의 경험?
2) (역)계급투표 현상의 미래예측을 위해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도 고려해야 함.
3) 문화적측면에서 태도의 문제는 경제적 요인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을텐데, 조너선 하이트(Johnathan Haidt)의 <바른 마음 Righteous Mind>과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없는 진보> 정리
4) 미디어 효과 (미국의 Fox News Effect, 한국의 종편 효과)
5) 연령별, 계층별 투표율 격차...
6) 금권정치 효과
7) 단기평가 효과

등등.....